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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유슬기의 스타의 사소한 습관
인터뷰를 좋아해 기자인 게 감사합니다. 귀로는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행간을 읽으려 애씁니다.
아주 사소한 습관에 마음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믿어서요.
그런 찰나를 만나면 보물을 발견한 듯 심장이 두근!
비밀로 간직한 보물 이야기, 토프를 대나무숲 삼아 털어봅니다.
#1. 배우 정유미의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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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9

 

만나기 전에 긴장했다. 그와의 날카로운 첫 기억 때문이다. 초보기자 시절, 여성지 에디터로 시작한 나에게 배당된 꼭지는 <촬영 현장을 가다> 였다. 당시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예능의 촬영장을 찾아 현장의 모습을 담아오는 게 임무. 현장의 스태프는 연기자의 매니저를 포함해 적어도 50명 정도는 됐는데, 그 모두에게 미리 연락을 하고 현장에서는 눈치를 살펴야 했다카메라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해, “거기 누구에요!! 나와요!!”라는 통제를 당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눈치껏 카메라를 피했지만 정적 속에서 울린 사진기자의 셔터 소리에 소리 없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아무튼, <촬영 현장을 가다>는 취재 기자도 사진 기자도 제일 막내가 맡았다. 대기 시간이 하염없이 길고 눈칫밥을 꾸역꾸역 먹어 배가 부른 날들이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바야흐로 2012년 홍대의 한 카페,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 2>의 촬영 현장이었다. 워낙에 좋아했던 드라마인데다 촬영현장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터라, 시청자처럼 설레는 마음을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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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2 모두 '로필 열풍'을 일으키며 로맨스 장인에 등극한 배우 정유미

   

잠시만요. (드라마 촬영 중단 후) 어디서 오신 분들인데, 저를 찍으시는 거죠?”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방에 날리는 날선 소리였다. 모두의 눈길이 우리의 사진 기자에게 쏠렸다. 사진 기자는 의욕에 넘쳐 연기자의 달달한 호흡을 줌~인해 찍고 있던 중이었다. 그동안 호통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대놓고 촬영이 중단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스태프 사이에서 빠져 나와, “오늘 <촬영현장을 가다> 취재를 나온 아무개 기자라고 소개했다. 연기자의 매니저가 황급히 달려와, “오늘 매거진 촬영이 있다고 미리 전달을 못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연기자는 얼굴을 풀고, “(매니저에게) 그걸 이제 말해주면 어떡해요. (취재진을 보며) 죄송합니다. 저희 쪽 불찰이었네요.” 라며 고개를 숙였다.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다시 드라마 촬영이 시작됐다. 그 전의 해프닝은 60초 짜리 중간광고 였던 것처럼 금새 사라지고 로맨틱한 드라마가 이어졌다.

   

배우는 수많은 스태프가 지켜보는 중에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해야 한다. 단 둘 밖에 없다고 믿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그 민감한 상황에, 낯선 누군가의 시선과 동선이 예민하게 느껴졌으리라. 시간이 흐를수록 당시의 무안함보다 미안함이 커졌다. 그리고 4년 뒤, 정식 인터뷰로 그를 만나게 됐다.그는 기억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선연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비온 뒤 맑은 여름날이었고, 카페 안은 청량했다. 하얀 순면의 박스티를 입고, 화장기 없이 맑은 얼굴로 정유미가 기자들을 맞았다. 영화 <부산행>을 마친 뒤 인터뷰였다. 그의 탁자 앞에는 포도맛 구미 젤리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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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몸으로 끝까지 살아 남은, 영화 <부산행>

인터뷰를 마치고 그런데 젤리를 좋아하느냐물었다. 촬영할 때는 늘 끼고 산다고 했다. 연기를 할 때는 배가 부른 느낌이 방해가 된다고. 적당한 허기가 절실한 느낌을 준다고 말이다. 그런데 너무 공복으로 있다 보면 체력이 떨어지니, 젤리를 먹으면서 급한 허기를 잠재운다고 했다. 젤리의 말캉한 저작 작용도, 현장의 긴장감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웃었다. ‘푸히히라는 소리가 날 듯한 개구진 웃음이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또 동료 배우과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정유미는 정다웠다. 현장에 온 기자들에게도 그랬다. 그에게는 마음을 연 모두가 동지고, 동료였다. 그러니까 그는 기자를 경계하는 게 아니라, 약속되지 않은 상황과 집중할 수 없는 현장을 경계하는 거였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와 내가 동갑이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됐고 그는 함께 파이팅 하자며 눈을 찡긋 하기도 했다. 만나기 전의 긴장되던 어깨와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작품에서 그를 보면 카메라 바깥 어딘가에 놓여있을 포도맛 젤리가 떠오른다. 그렇게 허기진 상태로, 현장에 집중할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연기가 지닌 탄성과, 과즙미도 함께 포개진다. 한편으로는 이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나이인데..’라는 염려도 든다. 살벌했던 첫 기억은 이토록 달콤하게 남았다.

정유미4.jpg

서른..읍읍, 이제 건강을 생각할 나이, 화이팅!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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