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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 리전 매니저로, 전세계 커뮤니티 리더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2000여 명의 소프트웨어 인재와 소통하며 그들의 커뮤니티 리더십을 알리는 일을 합니다. 이 경험을 녹여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를 펴냈고, 각계각층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전략과 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750명 중 700등 영욱님, 어떻게 MS 최고 IT전문가가 됐을까? 마이크로소프트 김영욱 부장의 인생역전
입력 : 2020.11.26

6남매 중 막내로 부산에서 태어나 현재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공부문 기술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김영욱 부장. 그는 어려운 기술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능력과 특유의 재치로 각종 언론에서 IT 기술에 관한 인터뷰를 도맡아 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War of IT》, 《가장 빨리 만나는 챗봇 프로그래밍》이라는 테크 분야의 스테디셀러를 출간하는 등 쉼없이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전문가적인 모습만 보면, 그가 학창 시절에 750명 중 700등을 달리며 부산지역 소위 일진들과 어울리던 문제아였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심지어 중학교 때는 입학할 고등학교가 없다는 통보도 받았다고 한다. 겨우 입학한 부산전자공고, 동의과학전문대학(현 동의과학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학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그가 어떻게 40대 중반에 글로벌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최신의 기술을 전파하는 전문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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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부장은 AI(인공지능), 클라우드 기술, 각종 IT정보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 '영욱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김영욱 본인 제공

 

 "당신이 진학할 고등학교는 없습니다"

김영욱 부장은 어릴 때 많은 형제자매와 일 때문에 바쁜 부모님 때문에 사랑과 관심을 별로 못 받고 자랐다. 하지만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맘껏 뛰어 놀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어김없이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때는 모든 게 하찮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학교는 가는 둥 마는 둥 하고 책만 읽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등은 평생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업을 소홀히 한 탓에 고등학교 진학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때 부모님께서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불가 판정으로 부모님의 실망하는 모습에 낙담한 15살의 김영욱. 좋은 과외 선생님을 찾을 형편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그래서 그는 늘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을 모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했다. 

“사실, 공부를 못하거나 안하는 청소년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거든요. 그냥 공부가 너무 어렵고 재미도 없는데 죽어라 앉아 있는 게 싫은 거죠.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 하거나 인생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놀 땐 놀더라도 일단 고등학교는 입학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지자 불량스럽던 친구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이미 많이 뒤쳐져 있던 터라 국‧영‧수 등은 포기하고 암기과목 위주로 전략을 짰다. 나름 책을 많이 읽은 김영욱 부장이 먼저 공부하여 시험에 나올 만한 부분 위주로 가르치며 함께 공부해 나갔다. 결국 같이 공부하던 동네 노는 친구들과 함께 부산전자공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방 전문대 출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서도 학업보다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다는 김영욱 부장은 공고 졸업 후에 장림공단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해도 대학 나온 공고 출신이 직급이 높은 것을 알고는 대학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주경야독하여 동의과학전문대학에 입학한 그는 대학 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할 무렵, 첫사랑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때는 그냥 부산을 무작정 떠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서울 쪽으로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도 졸업생이 많은데 지방 전문대 출신에게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1991년에 설립된 솔루션 전문 기업인 유진데이터에서 인터뷰 연락을 받게 되었다. 막상 인터뷰 장소에 가보니 김영욱 부장 말고도 250명이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서울까지 왔는데 괜히 차비만 날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딱딱한 표정의 면접관이 서류를 넘기며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장점을 설명해 보세요.”

“잘 웃깁니다.”

그때까지 김영욱 부장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심각한 얼굴로 서류만 쳐다보던 임원들이 피식 웃으며 쳐다보았다. 일단 좋은 분위기가 형성이 되자 그의 다소 독특한 성장 스토리가 면접관들에게 흥미를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경로로 터득한 인간관계 능력, 틈틈이 활동했던 부산소프트웨어 모임에서의 배움, 그리고 장림공단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기술 등, 다른 지원자들과는 차별되는 생생한 이력에 면접관들이 주목한 것이다. 이렇게 김영욱 부장은 높은 점수로 입사가 결정되었다.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 이제부터 진짜 공부!

유진데이터 입사 이후에도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하여 공부하고 일과 후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노는 친구들을 모아 함께 공부하고, 대학 시절에도 부산소프트웨어 모임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공부해 가던 습관을 계속 이어간 것이다. 공부를 통해 실력이 늘어가는 만큼 상여금도 늘어나 본봉보다 700%나 더 많이 받기도 했다. 

“그즈음이었어요. 컴퓨터 기술 관련 세미나에 참석을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떤 분이 기술 강연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많은 청중들이 조용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그 강연자가 너무 부러웠어요. 나중에 그분이 마이크로소트의 MVP인 걸 알게 되었죠.” 

나중에 그 MVP가 이끄는 기술 커뮤니티에 참여해 보니 함께 공부하는 모습도 정말 멋졌다고 한다. 몇 날 며칠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잠을 설치다 그도 '닷넷채널'이란 커뮤니티를 만들고 온라인 잡지도 발행하기에 이른다. 

“회원들과 공부만 한 게 아니라 등산도 하고, 다른 커뮤니티와 연합하여 제법 규모가 큰 세미나도 열고, 정말 신나게 공부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전세자금 대출도 갚아야 했고, 가족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프리랜서로 모 대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기술 분야의 대세였던 Adobe의 Flex(어도비 플래시 플랫폼의 특허에 기반을 둔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의 개발과 배포를 위해 어도비가 발표한 기술을 한 데 모아둔 것)에 결함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대체할 기술이 없을까 연구하던 중에 마이크로소프트의 WPF(Windows Presentation Foundation) 기술이 장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커뮤니티에서 강연도 하고 글도 쓰며 그 기술을 널리 알렸습니다. 관련 기술에 대한 온라인 잡지도 발행했고요.” 

 

커뮤니티 리더십이 인생을 바꾸다

바로 그 무렵, 정부의 디지털 교과서 프로젝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WPF 기술이 채택되었다. 여기저기에서 마이크로소프트 WPF 전문가를 찾느라 혈안이 됐고,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도 해당 기술 전문가를 직원으로 영입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는 이 기술이 대세가 아니었기에 시장에 전문가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그때 온라인으로 관련 기술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공유해 두고 있었기에 인터넷에서 마이크로소프트 WPF 전문가를 검색하면 제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전문대 출신에 영어 실력도 별로였지만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당당히 입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정직원 제안이 왔을 때 처음에는 자신의 배경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여 몇 번 거절했다. 그런데도 계속 제안이 들어와 결국 수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사 이후에도 신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지만 그는 끄떡없었다. 커뮤니티 리더십을 통한 공부 습관이 탄탄히 자리잡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의 기술 영향력은 끝없이 확장되어 갔다. 커뮤니티 리더십이 한 사람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것이다.

그는 지금도 모 대학원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공부를 쉼없이 이어가고 있다. 


◇ 김영욱 부장의 커뮤니티 공부법 성공 키워드 

① 홀로 공부는 이제 그만, 함께 공부하며 레버리지 효과를 높여라 

김영욱 부장은 도서관에서 홀로 책을 읽던 사춘기 시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람을 모아 함께 공부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동네 불량배 친구들을 모아 함께 공부했다. 또한 선망하는 MVP처럼 되려고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았고, 새롭게 알게 된 마이크로소프트 WPF 기술도 사람들을 모아 함께 공부하고 나눴다. 

“여러 레벨의 사람이 모여 함께 공부하면 실제 본인의 실력보다 훨씬 빨리 늡니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다 보면 내 지식이 더 확고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은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커뮤니티 공부는 레버리지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학습효과 외에도 대인 관계를 잘 유지하는 능력도 얻을 수 있다. 그의 대인 관계 능력 덕분에 서울 취업의 관문을 뚫을 수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② 궁금한 게 생기면 끝까지 파고든다

만약 그가 일개 프리랜서로 참여한 LG전자의 프로젝트에서 Adobe의 Flex에 결함이 있는 걸 알고도 그냥 넘겼다면 현재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그가 목표지향형의 사람이었다면 당시의 궁핍한 상황에 몰두하여 더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가 내 가치를 올려 업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자아개발자 유형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시 시장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이크로소프트의 WPF 기술에 시간과 열정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 온 기회도 그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가 커뮤니티 리더였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순수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③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가공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한다 

“내 공부도 중요하지만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커뮤니티 활동을 몇 년간 하면서 축적해 놓은 지식 정보들 덕분에 WPF 관련 분야 전문가를 온라인에서 찾으면 ‘김영욱’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커뮤니티를 통해 김영욱이라는 이름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혹시 소셜미디어에 음식 사진이나 여행 사진, 혹은 그와 관련된 정보만 올리고 있지 않은가? 웹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찾으면 어떤 정보가 나오면 좋을지,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오늘부터라도 노력해 보면 어떨까? 순수하게 관심이 가는 분야, 다른 사람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내가 깊이 파고들어 알게 된 지식을 조금씩 나누는 습관을 기른다면 김영욱 부장의 인생역전도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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