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pp 로고
칼럼진
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맘보 바지에 곱슬머리...가수 이상은을 추억하며 이상은 上 <담다디>
입력 : 2020.11.16

<대학가요제>보다 몇 년 늦게 시작한 <강변가요제>는 MBC의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이었다. 나의 초중고 시절은 1975년 연예계 대마초 파동 이후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포크송 계열의 가수들이 전멸하다시피 해 가요가 대부분 성인 취향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은 주로 팝송을 듣고, ‘떡 삶은 물에 풀한다’고 기왕에 듣는 김에 영어 공부도 했다.

방송계가 총체적으로 열악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방송국이 소장한 거기서 거기인 음반으로 만족하지 않고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힘든 미국의 최신 오리지널 음반 (당시 용어로 원판)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자비로 구입해 자신의 방송에서 틀었다.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과 진행자들은 요즘의 K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신청곡은 엽서에 사연과 함께 적어 보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엽서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연말에는 방송국마다 애청자들의 엽서를 모아 엽서 전시회도 열었다.

아침 시간대 대세는 MBC-FM의 전설의 임국희 아나운서였다. 노래 틀고 전주 나갈 동안 그날의 전국 날씨와 주요 도시 최고, 최저 기온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을 만큼 정확한 발음과 속사포같이 빠른 말투를 자랑했다. 게다가 ‘멸치와 남편은 볶을수록 맛이 난다’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말들도 잘했다. 나중에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린나이 가스레인지 광고에 출연도 했는데 거기서 임국희식 발음으로 ‘아프터서비스(애프터서비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영어 발음이 상당히 좋았다.

오후로 가면 MBC에는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가 인기였다. 하지만 TBC도 당시 드문 팝 전문가(그 당시 명칭은 팝 칼럼니스트였다) 김광한을 스카우트해서 오후 시간대에 맞섰다. 저녁 시간대 내가 즐겨 듣던 TBC의 김제건에 대항한 MBC의 DJ는 박원웅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말해 저녁 시간도 MBC-FM이 쥐고 있었다. 박원웅은 음악프로 진행만 한 것이 아니라 MBC 내에서 기획자로도 활약했다. 그가 기획한 것이 <강변가요제>이다. 

 

이선희·주현미·장윤정 모두 강변가요제 출신 

gang.jpg

<강변가요제>는 우리 가요계의 큰 획을 긋는 가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1회와 2회에는 대상 없이 금상이 최고였다. 1회 대회 금상은 홍삼트리오라고, 형제 둘과 사촌 한 명으로 구성된 홍씨 세 명이 <기도>라는 노래를 불러 차지했다. 우렁찬 남성 하모니가 기가 막히게 멋있어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노래이다.

이선희는 1984년 대회에서 4막 5장이라는 남녀 혼성 듀엣의 일원으로 출전해 'J에게'로 대상을 차지했다. 빅마마의 신연아, 장윤정 등이 모두 <강변가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현미도 1981년 중앙대학교 약대생들로 구성된 그룹 인삼뿌리의 일원으로 참가해 장려상을 탔다. 그때는 그룹 이름도 논뚜렁 밭뚜렁, 한마음, 송골매, 노고지리, 인삼뿌리 등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어느 해는 봄, 어느 해는 겨울 일정치 않게 열리던 <대학가요제>와 달리 <강변가요제>는 이름이 강변이라 강가에서 개최하려니 여름철에 청평유원지 등에서 열렸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도 여름방학에 서울에 와서 <강변가요제>를 매년 생방송으로 봤다. 1988년 잊을 수 없는 그해 <강변가요제> 대상곡 광경도 생방송으로 봤다.

 

뽀글머리 이상은의 첫인상...‘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common9WUNCADZ.jpg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상은. 오른쪽은 당시 가요제 사회를 본 이수만 현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의 모습이다. 방송 화면 캡처

내가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 주택가에는 꼭 대중목욕탕들이 있었다. 낮에 그 앞을 지나다니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노란 대야에 목욕 용구를 담고 타월로 덮어 그것을 옆구리에 끼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때로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아주머니들을 보노라면 모두 비슷한 생김새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탓에 얼굴은 불그스레하고 짧게 자른 파마머리는 라면보다 더 뽀글거렸다.

나는 늘 그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원래 저렇게 뽀글거리는 파마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머리가 물에 젖어 뽀글거리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나의 머리는 곱슬머리이기 때문에 늘 물에 젖으면 더 꼬불거려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에 나온 이상은이 맘보바지에 무릎을 덮을 듯 긴 블라우스인지 코트인지 모를 웃옷을 입고 탬버린을 흔들며 막춤을 출 때의 짧은 곱슬머리가 그 목욕탕 머리를 연상시켰다. 물에 젖으면 목욕탕에서 나오는 아주머니들 머리처럼 뽀글거릴 것 같았다.

심수봉이 <대학가요제>에 나와서 <그때 그사람>을 불렀을 때는 그 당시 <대학가요제> 분위기와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했지만 노래는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상은을 보면서는 노래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할 생각도 못했다. 그냥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라며 넋을 잃고 멍하니 화면을 쳐다봤다.

commonDDSOB15W.jpg commonA1WPJZFM.jpg

대부분 이상우의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이 대상을 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금상을 타고 대상은 막춤의 이상은에게 돌아갔다.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고 노래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의외였다. 그다음 날인가 그녀가 <강변가요제> 우승자로서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했을 때는 또 한 번 놀랐다. 가요제 때 선머슴 같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모자를 쓰고 단정히 앉아 이야기하는 어린 숙녀였다. 그녀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술은 그때 이미 알아봤다.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몇 번 그녀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출연하는 모습 등을 비디오로 봤다. 남자보다 여학생들이 더 열광하는 여자 가수로 꽤 인기가 있는 듯 보였지만, 나는 결국 이상우가 더 오래 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 후 이상은, 이상우 둘 다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의 음악 취향이 점점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에 편중되면서 아이돌 그룹과 댄스뮤직 중심으로 바뀌어 가던 가요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