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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다.
알아두면 의미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① 소프라노 제시 노먼 아름답고 강한 오페라 스타 제시 노먼의 의미
입력 : 2020.11.07

지난해 10월의 마지막 날, 소프라노 제시 노먼이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5년부터 앓아 온 척수 손상의 합병증으로 뉴욕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요. 40년간 무대안팎에서 성실했던 그의 삶은 떠올리면, 따듯함이 느껴집니다.

그는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스스로 쌓은 사회적 지위를 선용할 줄 알았고, 자신을 둘러싼 편견에 맞서 싸우는 대신,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조용히 들려주던 사람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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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오페라 스타, ‘검은 진주’로 불렸던 제시 노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스타 중 한 명이자, ‘검은 진주’ 때로는 ‘여자 파바로티’라고 불렸던 제시 노먼. 노래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했던 그의 이야기를 글로 소개하려고 하니,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저는 제시 노먼을 꽤 늦게 알았거든요. 불과 2~3년 전에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제시 노먼이 설립한 제시 노먼 예술 학교(Jessye Norman School of the Arts)에 대한 소식을 접했는데, 그것이 시작이 되어 지금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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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미국 조지아 주의 오거스틴에 개교한 제시 노먼 예술 학교(Jessye Norman School of the Arts).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무료 예술 수업을 여는 학교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공연 등에 재주가 있지만 형편 상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수업을 해줍니다. ©제시 노먼 예술 학교(jessyenormanschool.org)

그동안 저도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하고 살았고, 아는 연주자도 국내외로 상당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시 노먼을 너무 늦게 알아  부끄러웠어요. 그때부터 종종 제시 노먼에 대한 글을 검색해보기도 했고요. 유투브 등에서 연주 실황 등을 찾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놀랐던 점은 그의 노래였어요. 제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소프라노의 음색과 분명 달랐거든요. 아직 제시 노먼의 노래를 듣지 못하셨다면, 지금 한 번 들어보세요. 

 

1987년 마흔 둘의 제시 노먼이 슈베르트의 가곡 <전능하신 분, D.852>을 부릅니다. 한 번 눈을 감고 들어보세요. 그녀의 음성이 우리 마음 한 구석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 울려 퍼질 테니까요.  

 

어떠신가요? 그의 목소리는 흔히 소프라노하면 연상되는 얇고 예민하며 뾰족한 음색이 아닙니다. 그의 노랫소리는 어딘가 묵직해요. 그렇다고 무겁다는 느낌은 아니고요. 오히려메조소프라노에 어울릴 법도 한 음성인데요. 20세기 후반 오페라 스타로 종횡 무진하던 그는 소프라노 중에서도 기교적으로 가장 어려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도 거뜬히 소화하는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 

종종 성악가들은 자신들의 몸이 악기라는 말을 하죠. 제시 노먼도 그의 음색과 신체 조건이 무관하지 않았던 경우에요. 그는 신장 180cm, 몸무게 130kg 정도가 나갔는데요. 폭넓고 깊은 음량 표현을 하기에 결코 나쁜 신체 조건은 아니거든요. 단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고 해서 음량이나 음색이 약한 것도 아니고요. 성악가와 그들의 몸인 악기, 참 알쏭달쏭한 관계 같죠? 

여하튼 그는 소프라노로 낼 수 있는 방대한 표현이 가능했던 연주자에요. 때문에 그가 소화할 수 있었던 장르도 많았고요. 어느 무대에서는 오페라를 부르고, 또 다른 무대에서는 재즈나 찬송가도 불렀어요. 노래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었으니까요. 여러 음역과 특성을 잘 표현한 그가 오페라 스타의 전설로 남은 것은 예정된 결론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어떤 분야이든 하나만 잘 하기도 어려운데 말이죠! 


130kg 거구, 소프라노 세계의 스타로

제시 노먼은 1945년 미국 조지아주의 오거스타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미국은 흑백 분리 정책이 당연시되던 시기였어요. 그가 살던 때는 지금과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차별이 존재했는데요. 사실 이러한 문제는 지금까지도 온전히 해결되지 못한 인류사의 아픔 중 하나고요. 아무쪼록 세계 곳곳에 만연한 인종차별의 벽이 하루 빨리 허물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보험 중개인으로 일하던 제시 노먼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의 9번째 생일선물로 라디오를 사주었습니다. 이 때부터 제시 노먼은 음악과 사랑에 빠졌고 매일같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웠어요. 특히 그는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이였어요. 동네 교회의 성가대원 활동을 시작으로, 피바디 음악학교와 미시간 대학교에서 전문적인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의 음악 인생은 스물 넷, 콩쿠르 스타가 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969년 뮌헨 ARD 국제음악콩쿠르의 성악 부문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당시 콩쿠르 우승자에게 주어졌던 데뷔 공연 무대에서 지금껏 쌓아왔던 모든 매력을 발산하는 데 성공했거든요. 당시 그가 맡았던 역할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엘리자베트였는데요. 이 무대 이후 그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1985년 영국오페라가수협회 연주 무대에서 제시 노먼이 다시 한 번 엘리자베트로 변신해 부르는 <탄호이저>의 한 부분입니다. 이 역할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 또한 이 노래를 부르며 무언가 뿌듯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때부터 그는 전설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 바그너 등 시대를 넘나드는 레퍼토리를 무대에서 선보였고 오페라, 독일 가곡, 프랑스 가곡 등 다양한 작품을 부지런히 노래했어요. 결코 쉽게 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인 이탈리아의 라스칼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등에서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카르멘>, <아이다> 등의 멋진 역할을 맡았고요. 평생 단 한 번도 서기 어렵다고 알려진 미국 맨해튼의 카네기홀에서 40회 의 공연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요. 

또한 그는 53세에 1997년 미국 캐네디센터 공로상을 수상했는데요.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영예로운 기록까지 남겼어요. 그는 음반 활동에도 무척 열심이었어요. 약 90장에 가까운 음반 작업을 했고요. 덕분에 무려 15회나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그 중 4회는 상을 받았어요. 또 2010년에는 오버마 대통령에게 국가예술훈장도 받았고요. 앞서 잠깐 소개해드렸던 제시 노먼 예술 학교를 설립해, 청소년의 문화 교육에도 앞장서온 진정한 음악가에요. 


똑바로 서서, 노래하며 나가자! 

백인 연주자가 중심이던 1960년대의 오페라 무대에 당당하게 입장했던 검은 피부의 소프라노 제시 노먼. 오직 실력 하나로 청중을 사로잡았고, 그 후에는 다채로운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자신을 둘러싼 편견을 깨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요.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했던 모든 차별을 부드럽게 녹여낸 분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더 더욱 그의 삶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제시 노먼은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랄 청소년을 위해 통 큰 마음을 쓰기도 했는데요. 앞서 소개했던 제시 노면 예술학교에서 예술 공부를 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 무료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거죠. 이 또한 차별과 편견을 잊게 만드는 손길 아니었을까 헤아려봅니다. 

“똑바로 서서, 노래하며 나가자!” 이 말은 제시 노먼이 힘든 시기마다 외쳤던 말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날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노래를 잘 하지 못하지만, 왠지 신나는 노래라도 흥얼거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씩씩하게 걷는 겁니다. 어디에 가든 나와 다른 사람들만 있었던 곳에서 당당하게, 꼿꼿하게 자신만의 노래를 불러왔던 제시 노먼처럼요!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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