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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준영을 닮은 음악가, 하이든 이토록 성실한 직장인이었다니!
입력 : 2020.09.29
*참고 문헌 :《하이든의 세상》 제임스 R.노튼 저, 더 로즌 퍼블리싱 그룹 펴냄(2008)

가을이 아름답게 무르익어가는 밤, 안방극장을 그 어느 때보다 클래식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요즘 sbs에서 방영 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인데요.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의 삼각관계를 모티브로 애틋한 사랑을 그리며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만. 결혼 10년차, 연애와 사랑에 흥미를 잃은 제게 주인공들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는 그저 먼 나라의 일만 같습니다. 솔직히 심드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매주 이 작품을 챙겨보는 까닭은 작가가 따라주는 달콤한 사이다 한 잔을 마시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음대 교수들이 논문 제출 대신 개최하는 연주회의 티켓 판매 문화를 내리 적폐라고 하거나, 음대 교수가 30년 정년을 채우고 퇴임한다는 것은 30년 동안 연습하지 않았다는 말이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아! 실제로 그런 일이 클래식 음악계에 있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요. 그러나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라면 아마 저와 같은 마음으로 웃으셨지 않았나 짐작해봅니다.    

또한 이 작품에는 클래식 음악계의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합니다. 전문 연주자, 문화재단 공연기획팀 직원, 악기 공방 사장 등인데요.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보여줍니다.

실제 클래식 음악계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은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굉장히 힘겨운 과정인데요. 가령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해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로그라인까지 이러한 이면을 잘 담아냈습니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더 위로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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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 음악학도들의 삶과 경쟁, 그리고 사랑이 애틋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말은 클래식 음악계의 구조적 병폐를 떠올리게 합니다. ‘더 위로 받고 싶었다’는 말은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저는 극중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음악 공부를 포기하려 했던 김민재(피아니스트 박준영 역)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코끝이 찡했는데요. 눈물도 났어요. 늘 도박 빚을 지던 아버지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던 김민재가 강박적으로 국제 콩쿠르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 콩쿠르 우승 상금으로 아버지 빚도 갚고, 자신의 생활비로도 써야했던 어린 피아니스트가 기업의 후원을 받아 세계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그때마다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저도 힘들 때 종종 음악을 듣는데요. 이러 저러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음악은 분명 우리 마음을 달래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모차르트의 <레퀴엠>, 그 중에서도 ‘눈물의 날’은 제게 쉼을 주는 음악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달래는 음악은 어떤 곡인지 궁금해지네요. 


눈칫밥 먹으며 음악 배웠던 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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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여섯 살에 집을 떠나,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위키피디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천재 피아니스트 박준영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클래식 음악가가 있습니다. 완전히 닮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음악 공부를 정말 고단하게 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 똑같습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국민 음악가인 요제프 하이든 (1732~1809)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동부의 작은 마을 로라우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12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부잣집에서도 열 두 명의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면,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안타깝게도 그의 가정 형편은 가난했습니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그의 부모는 아이들의 재능이나 학업을 이끌 여력이 없었습니다. 마차 수리공으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와 귀족 저택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그의 어머니 덕분에 온 가족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악보를 읽을 줄 몰랐지만, 작은 하프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던 하이든의 아버지는 어느 날 우연히 어린 하이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어린 하이든의 노랫소리에서 뛰어난 음악성을 찾지 않았을까 헤아려봅니다. 하이든의 집에 악기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또 악보 읽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정답은 노래겠지요!

그때부터 하이든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습니다. 비록 하이든의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이것이 하이든이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더 이상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한 음악 선생의 집으로 보냅니다. 아마 자신처럼 악보도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보다 그것이 나은 일이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어린 자식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음악 교육을 시켜주는 조건으로 여섯 살 된 어린 하이든을 음악 선생 집의 일꾼으로 보낸 셈인데요. 정말 눈물겨운 일화입니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음악 선생이었다고 해도, 어린 하이든이 눈칫밥을 먹었던 날은 적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도 장난꾸러기 8살 아이의 엄마인데요.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란, 종잡을 수 없는 도깨비 같거든요. 하이든은 그런 시기를 묵묵히 보내야 했던 겁니다. 오직 음악 공부를 위해서요.

어린 하이든은 서러운 시간도 참 많았겠구나 싶더라고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할 시기에 음악 선생님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으니까요. 실제로 하이든의 체구는 굉장히 작고 외소 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잘 먹고 잘 자라야 할 유년기에 힘든 가사 노동을 한 결과는 아닌가 합니다. 

 

에스테르하치 가문에서 30년 간 봉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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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성실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에스테르하치 가문의 소속 음악가로 약 30년간 일하면서, 수많은 음악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위키피디아

하이든은 스물아홉에 인생 최고의 직장에 취직했습니다. 그간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얻은 쾌거인데요. 헝가리의 귀족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 집안의 음악가로 고용되었습니다. 당시 권력과 부를 자랑하던 귀족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음악가를 고용하곤 했거든요. 음악적으로 뛰어난 명성을 떨치던 청년 하이든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정적인 직장에 몸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에스테르하치 가문을 위해 30년 간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임기를 채운 셈인데요. 이 기간 동안 무려 106곡의 교향곡과 68곡의 현악4중주곡 등 무척 많은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아무리 고용된 음악가라고 해도, 작곡을 그렇게나 많이 했다는 것은 분명 하이든의 근무 태도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 고용주가 시키는 최소한의 일만 했다면, 하이든의 작품 목록은 지금보다 적었을 것입니다.

그는 에스테르하치 가문과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잠시 프리랜스 음악가의 길을 걷기도 했는데요. 결국 다시 오랜 직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고용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아마 에스테르하치 가문이 극진히 하이든을 대접했던 태도도 한 몫 했을 것 같아요. 내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람 마음이기도 하니까요.

대표적으로 직장 생활을 못 견뎠던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가 직장 생활에 전혀 맞지 않았던 유형이라면, 하이든은 전형적으로 직장 생활이 체질인 사람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누군가를 위해 음악을 만드는 일 자체를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에 온 세상 사람들이 영재로 추켜세운 영향도 적지 않을 거고요. 그가 잘츠부르크의 대주교를 저주한 일화는 정말 유명하지요.

물론 그는 일도 건성건성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주교는 더 많은 양의 일을 모차르트에게 주었고요. 악순환이 계속된 거죠. 어쨌거나 모차르트는 퇴사 후 프리랜스로 성공했고, 하이든은 정년퇴직을 했으니, 두 분 다 잘 하셨습니다!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박수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하이든도 분명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을 텐데요. 그는 영국에서 귀화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성공한 음악가였으니까요. ‘영국 귀화 선배’인 헨델처럼 영국의 상류층으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오직 오스트리아를 위해 남겠다고 했었죠.

이때의 애국적 결단으로 인해 그가 얻은 것도 많습니다.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의 존경받는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고요. 또한 하이든 사후 145년까지 계속되었던 두개골 반환 소송을 오스트리아의 대통령까지 발 벗고 나서 해결해주었으니까요! 
 
하이든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다가 문득 제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고요.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셨고, 평생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는데요. 가족을 위해 매일같이 일터로 향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지 감히 헤아려봅니다. 늦잠을 주무시고 싶었던 날도 계셨을 거고요. 몸이 아파서 출근하기 싫었던 날도 분명 계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주셨던 아버지에게 또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려야겠습니다. 매번 찾아오는 명절이든 평범한 어느 날이든 뵐 때마다 주름이 깊어지시는 부모님에게, 우리가 보여드릴 수 있는 마음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거든요. 

 

하이든이 정년퇴직 후 런던 데뷔를 위해 작곡했던 <교향곡 104번> ‘런던 교향곡’입니다.
 1958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필의 연주입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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