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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패티김下- <이별>
입력 : 2020.09.23
내가 태어났을 때 패티김은 이미 대스타였다. 언제 처음 그녀의 모습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패티김을 발음하지 못해 패트김이라고 할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다. 사람의 얼굴은 흰색, 나머지 모든 것들이 다 검거나 회색인 흑백 상자 속에서도 그녀는 <플레전트빌>의 주인공들처럼 색깔로 빛났다.

패티김의 공연 중 내가 꼭 보고 싶었는데 놓친 것이 있다. 1985년 여름 서울 시립교향악단과 팝스 콘서트를 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대중가수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가 크로스오버 공연을 하는 일이 드물어 보고 싶었는데 그해 여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지 못했다. 인터넷이 없었으니 그 소식을 어디서 찾아 볼 수도 없었다.

1986년 여름 패티김과 서울시향이 다시 한 번 팝스 콘서트를 한다는 기사를 읽고 1985년 공연이 성공적이었구나 짐작만 했다. 그런데 패티김이 은퇴하기 전 그 팝스 콘서트를 회상하면서 매우 불쾌했다고 이야기를 해서 의외였다.

서울 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자신들이 대중가수의 반주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 첫 리허설부터 분위기가 좋지 못 했다고 했다. 하지만 팬들의 열광 덕에 신나게 공연을 했다고 술회했다. 그 당시만 해도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크로스오버를 하는 것이 일종의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패티김·길옥윤  

길옥윤을 위한 콘서트 무대에서 <이별>을 열창하는 패티김. ⓒ천CheonColor 유튜브

 

TV에서 봤던 패티김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94년 SBS에서 방송한 《길옥윤 이별 콘서트》이다. 길옥윤은 이혼 후 혜은이를 발굴해 또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1994년 당시에는 사업 실패로 10여년 일본에 도피 생활 중이었다.

그가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패티김은 이혼 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와 함께 무대에 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출연자들을 직접 섭외하고 길옥윤의 채권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정하고 설득해서 길옥윤의 귀국을 성사시켰다.

느지막한 일요일 저녁, 그 당시 이 시간에 방송하던 고두심 주연의 《박봉숙 변호사》라는 시추에이션 드라마 대신 임시 편성한 《길옥윤 이별 콘서트》가 열렸다. 그날 낮에 길을 가면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오늘, 패티김, 길옥윤, 20년 만에”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드디어 콘서트가 시작되고 길옥윤과 예전부터 인연이 있던 현미, 남진, 정훈희 등이 나와 길옥윤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불렀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패티김이 등장했다. 등장부터 남달랐다. 트레이드마크인 뒤로 곱게 빗은 머리에 몸에 딱 달라붙는 까만 드레스를 입고 당당히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 TV를 시청하던 어머니가 “야, 역시 멋있다”라고 하셨다.

그녀는 길옥윤이 그녀에게 청혼 대신 불러주었다는 <사월이 가면>을 불렀다. 두 달 휴가를 받아 2월에 귀국했던 사람에게 ‘4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5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하고 노래를 부른다면 굳이 말로 ‘결혼해 달라’ 하지 않아도 그건 청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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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가요사의 명콤비 패티김·길옥윤. 유튜브 화면 캡처

노래를 다 부른 패티김은 무대 맞은편 휠체어에 앉아 있던 길옥윤에게 “이 노래가 저에게 청혼한 노래가 맞느냐?”는 등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그녀만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만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곡을 부를 시간이 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그날의 피날레는 그들의 대표곡 <이별>이었다.

그녀가 노래 시작 전 길옥윤에게 “뭐 병 같은 거 앓고 그러십니까?”라고 말해 모두 한바탕 웃었다. 전주가 끝나고 첫 소절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라고 노래를 하는데 그녀는 ‘어쩌다’를 마치 한숨을 내뱉듯 불렀다. 그 한숨 속에 긴 세월의 애증이 모두 들어 있었다. 부부의 일은 부부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 순간 패티김과 길옥윤의 눈앞에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가 흘러갔으리라.

간주가 나오는 사이 그녀는 길옥윤에게 “얼른 회복해서 길 선생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시라”고 했다. 간주가 끝나고 다시 노래를 시작하면서 그녀의 노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그녀의 눈물을 잡으려는 듯 작심하고 들이대기 시작하고,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상기되었다. 목이 메는지 가사가 흐려지기도 했다. 마지막에 ‘잊을 수는 없을 거야’를 세 번 반복하며 노래를 끝냈다.  

두 번째 반복에서 목이 메어 얼버무리며 ‘잊을 수는 없을 거야’를 불렀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세 번째 반복에서 천하의 패티김이 박자를 놓쳤다. 오케스트라가 빵~~ 하고 나오면 천천히 ‘잊을 수는 없을 거야’ 하고 불러야 하는데 그 빵~~이 다 끝날 때까지 노래를 시작하지 못했다. 울컥해 제 박자에 시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고 노래를 끝냈다.

오케스트라 반주를 다 흘려보내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마지막 ‘잊을 수는 없을 거야’를 불렀다. 카메라 쪽을 응시하며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미소와 달리 눈은 촉촉이 젖어 조명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녀는 그 눈물마저 보이기 싫었는지 노래가 끝나자 곧바로 뒤로 돌아서 양팔을 벌리고 걸어갔다. 그걸 보며 어머니가 또 한마디 하셨다. “저 능숙한 무대 매너를 누가 당하겠니?”

 

길옥윤 인생 최고의 예술적 동반자, 패티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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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김이 <이별>을 열창하고 난 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른 길옥윤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얼마 전 어느 고마운 분이 그날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주셨다. 그걸 다시 보니 당시에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렸다. <이별>이 모두 끝나고 길옥윤이 휠체어를 타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날 출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인사를 하는데 그 무리의 뒤에서 패티김이 눈물을 훔치는 현미를 보고 “괜찮아, 괜찮아”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길옥윤이 건강을 회복하리라 믿었나 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노래를 하는 중에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더 보이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방송 후 쏟아져 나온 후일담 기사에 따르면 그날 패티김은 결국 콘서트를 마치고 분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한참을 울었다.

《길옥윤 이별 콘서트》는 《박봉숙 변호사》의 평균 시청률을 훨씬 상회하는 대성공이었다. 다음 날 길을 가면 사람들이 또다시 삼삼오오 모여 “어제, 패티김, 길옥윤, 눈물”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하지만 패티김이 눈물을 눌러 참으며 노래한 보람도 없이 길옥윤은 이듬해 결국 세상을 떠났다. 패티김이 길옥윤의 신곡들을 모아 신보 녹음을 시작하던 날이었다.

결국 그 신보는 《길옥윤 유작집》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패티김은 길옥윤의 장례식에서 조가를 불렀다. 사람들은 <이별>이나 <사랑은 영원히>를 부르라고 했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그를 보내겠다며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그녀도 울음을 참지 못해 노래 중에 많이 울었다. 그들의 부부의 연은 몇 년 가지 못했지만, 패티김은 끝까지 길옥윤의 인생 최고의 예술적 동반자였다.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과 함께했던 가수 패티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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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과 함께했던 가수 패티김이 지난 2013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고별공연 '굿 바이 패티’를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이제 무대를 떠나지만 여러분 곁에 항상 제 노래가 남아 있길 바란다”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조선DB(PK프로덕션 제공)

 

내가 좋아하는 패티김의 노래들은 위에 언급한 노래 외에도 손으로 일일이 꼽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은 좋아했는데 하도 들어 좀 질렸다. 반면 <9월의 노래>는 좋아했는데 겁도 없이 노래방에 가서 불렀다 망신을 당한 이후 한동안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패티김이 은퇴하면서 자신의 애창곡이 <9월의 노래>라고 해서 요즘 다시 듣는다.

패티김의 노래 중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랑은 멀어지고 이별은 가까이> <밤에 쓰는 편지> <인생은 작은 배> 등도 좋다. 특히 <인생은 작은 배>는 ‘구름은 바람 없이 못 가네 천 년을 산다 하여도. 인생은 사랑 없이 못 가네 하루를 산다 하여도’라는 가사가 아름답다.

<사랑의 맹세>는 패티김 자신도 좋아하는지 음원이 여러 종류 있다. 패티김의 영어 발음은 젊은 시절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나이 들어 이 노래를 부를 때 들어보면 발음이 초창기보다 훨씬 더 좋아진 것을 느낀다. 그만큼 평생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는 뜻일 것이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패티김이 영어로 부른 노래들이 많다. 노래도 잘 부르거니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발음이 인상적이다. 어차피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이니 발음이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가사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가사의 발음과 억양을 멜로디와 잘 엮어 부르는 노래는 더 맛이 난다. 특히 ‘Even Now’, ‘Blue Is My Love’ 등의 유명한 곡들을 자기만의 색깔로 잘 부른다.

1973년 미8군 클럽인 엠버시 클럽에서 패티김 특별 쇼를 한 실황도 유튜브에 있는데 그 실황 초반부에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가 있다. 아무리 들어도 로버타 플랙보다 더 잘 부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영어 딕션, 호흡, 목소리, 감정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마지막에 피아노 반주에 맞춰 ‘Your face (당신의 얼굴)’라고 세 번 노래를 하며 사라질 때는 마치 이제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놓지 못해 힘들어하면서도 그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멕시코 노래로 스페인어 가사가 붙은 ‘Adoro’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녹음을 들어 봤는데 임병수와 패티김이 최고이다. 

 

 “패티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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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4년간 격이 다른 가창력과 당당한 무대 매너로 한국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수 패티김. 2012년 2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는 6월부터 1년간 국내외에서 진행될 고별 공연을 끝으로 가수를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조선DB

 

패티김은 2012년 은퇴를 선언하고 1년간 고별 투어를 마친 뒤 은퇴해 이제 그림자도 볼 수 없다. 하와이 여행 중 강렬한 열대의 일몰을 본 후 ‘나는 가수로서 사라질 때도 저렇게 화려하게 사라지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아쉽지만 화려하게 박수칠 때 큰 족적을 남기고 사라진 그녀의 결단이 아름답다.

다행히 유튜브에 과거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 그걸 보며 그녀의 전성기를 회상한다. 요즘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 출전했다 준결승에서 탈락한 나태주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나만의 무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패티김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가창력에 더해 이국적인 외모, 세련된 매너 그리고 그런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감각 등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독보적인 자신만의 무기를 갖고 있었다.

또 하나 그녀의 프로 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절대로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다든지,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밥을 먹지 못하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아예 굶는다든지 하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녀는 무대 욕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항상 출연료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요구했다. 왜 그렇게 받아야 하냐고 반문 하면 대답은 “패티김이니까”였다. 그녀는 그 출연료에 자신의 돈을 보태 무대와 오케스트라를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패티만의 무대를 선보이는데 전력했다.

연예인들이 모이는 곳에 잘 가지도 않고 오로지 노래만 생각하고 노래를 하기 위해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다. 오죽하면 은퇴할 때 “이제 패티를 위해 희생한 김혜자를 위해 살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수많은 스타가 명멸해 간 한국 가요계이지만, 패티김 만한 가수가 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은 김혜자로 행복하겠지. 팬의 입장에서는 늘 패티가 그립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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