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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떠날 임이 불러 준 노래 윤시내 '열애'
입력 : 2020.08.10

 ‘MBC 문화방송’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대학가요제이고 또 하나는 서울 국제가요제이다. 새벽까지 학원을 전전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집에 가봐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가요제나 서울 국제가요제가 있는 날은 군대에서 삼겹살 회식하기로 한 날처럼 하루 종일 뭔가 들뜬 분위기가 교실에 감돌았다. 국제가요제는 그때만 해도 실황으로 보기 힘든 해외 연예인들을 본다는 기대로 하루 종일 설렜다. 

 요즘은 뜸한 것 같은데 1970~1980년대 국제가요제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동경가요제, 야마하가요제, 칠레가요제 등 우리 가수들이 나가 상을 타온 가요제만도 부지기수였다. 서울국제가요제는 국내 방송사가 최초로 주최한 국제가요제였다. 1977년 서울가요제란 이름으로 국내 가수들만 모아 한 번 개최해 보더니 그다음 해부터 그 경험을 살려 국제가요제로 이름을 바꾸고 외국 가수들도 초청했다. 참가자가 얼마 없었는지 18명의 참가자 가운데 국내 가수가 9명이었다. 한국 가수와 외국 가수가 한 번씩 번갈아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 이색적인 가수 하나를 처음 봤다. 바지 위에 한쪽 어깨가 완전히 드러나는 긴 치마를 입고, 스핑크스 머리처럼 자른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이집트 벽화 속의 여자들처럼 팔찌를 팔목과 이두박근에 여러 개 차고, 무언가를 주렁주렁 걸치고 걸어 나온 그녀는 갑자기 언뜻 보면 막춤 갖기도 하지만 뭔가 아방가르드(Avant-Garde) 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 춤을 추던 그녀가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공여언히 내가 먼저 말 했나부아!’

 그녀의 철심이 박힌 듯 껄쭉한 목소리와 ‘했나봐’를 ‘했나부아’ 하고 홧김에 성질부리듯 하는 창법에 어린 우리 형제들은 그만 주체할 수 없이 웃기 시작했다. 그녀가 윤시내였다. 그날 부른 노래는 최종혁 작곡의 <공연히>라는 노래였다. 웅얼웅얼 나오던 전주 끝에 갑자기 다짜고짜 ‘공여언히’ 하고 시작했던 노래는 하다 만 듯 어색하게 끝났고, 그녀는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30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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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전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공연히>를 검색했더니 그녀가 2015년 《EBS 페이스공감》에서 <공연히>를 부른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녀의 율동도, 노래 멜로디도 내가 기억하던 것과 같았고, 그녀의 의상도 그때만큼이나 아방가르드 했지만 나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이 노래가 이렇게 멋지고 세련된 노래였나?’ 윤시내는 그런 가수이다. 1978년에는 괴이했을지 몰라도, 2015년 아니 2020년이 되어도 퇴색하지 않는 음악을 하는 가수이다.

 1978년 국제가요제에 출전했다가 입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잊힌 가수가 되는 듯했던 윤시내는 그다음 해 본격적으로 떴다. 1979년 가을부터 그녀의 신곡 <열애>가 방송을 탔다. 이번에는 <열애>를 가지고 TBC 세계가요제에 출전했다. 당시 우리나라 방송사는 KBS, TBC, MBC 단 세 개뿐이었는데 그중 KBS는 다른 이름이 ‘재미없는 방송’이었다. 오락, 쇼, 드라마는 TBC와 MBC의 싸움이었다.

 MBC가 서울 국제가요제로 성공을 거두자 1979년 TBC가 자신들의 국제 가요제를 만든 것이 TBC 세계가요제이다. 여자 사회자가 처음 보는 미모의 소유자에 영어까지 유창해 가요제 다음날 학교에서 아침 자습 시간에 아무도 자습을 하지 않고 그 예쁜 누나가 누구냐로 설왕설래했다.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이라는 둥 여러 설이 있었지만 아무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왈츠의 여왕’이라 불리던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와 한국의 슈퍼스타 패티김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요즘은 방송에서 ‘뗑뗑’ ‘기스’ ‘다라이’ 등 일본 말을 거리낌없이 사용하지만, 그 당시는 방송 진행자가 일본 말을 사용하면 제제가 따르고 가수들은 일본어로 노래할 수 없었다. TBC 세계가요제에 일본 대표로 참가한 오하시 준코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Beautiful Me'라는 노래를 불렀다. 한줌이나 될까 말까 한 작은 몸집의 여자 가수가 쥐가 앞머리를 뜯어 먹은 것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나와서 세종문화회관을 집어삼킬 듯 폭발적인 목소리로 ‘Oh~~~ beautiful me, oh~~~ beautiful city’ 하며 노래를 해 대상을 차지했다. 이 1회 대회에서 윤시내의 <열애>는 당당히 은상을 차지했다.

 이미 그해 11월경부터 윤시내의 <열애>를 방송에서 하루에 한 번 이상 듣곤 했다. 우리 집 김장 하던 날에도 빨리 집에 가서 배춧속을 고갱이에 싸서 먹을 생각을 하며 버스에 후다닥 올라타자마자 라디오에서 <열애>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12월 국제가요제에서 은상까지 수상하니 대한민국 내에 <열애>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MBC 스타DJ 배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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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배경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열애> 포스터.

 <열애>는 <공연히>를 작곡한 최종혁의 작품이다. 작사는 배경모이다. 배경모는 부산 MBC의 스타 DJ였다. 내가 80년대 중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부산에서 온 누나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 술파티라도 벌이면 이 사람 저 사람 노래를 했다. 부산에서 온 누나는 음치였지만, 술을 한 모금만 마시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열애>를 듣는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게 불렀다. 그리고 노래 끝에 늘 이렇게 말했다.

 “배경모 세상 뜨던 날 온 부산이 난리가 안 났나?”

 스타 DJ가 암 투병을 하다 아내와 아이를 남기고 37세에 세상을 떴으니 난리가 날 만도 했다. 그가 죽기 전 아내에게 남긴 한 편의 시는 곧바로 노래가 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게 바로 <열애>이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히트곡을 낸 윤시내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수 윤시내를 정의하는 노래는 바로 <열애>이다.

 이 노래는 육신의 불이 꺼져가는 한 사람의 힘겨운 유언과 꺼져가는 육신과 달리 끝없이 뜨겁게 타오르는 그의 열정적인 사랑이 한 곡에 함께 녹아 있다. 노래의 첫 부분은 윤시내가 낭송한다.

 "처음엔 바람을 스치듯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아마도 배경모 부부가 처음 만날 때의 일인가 보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해서 ‘저 사람 다시 보랴’ 했던 사람과 자꾸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이 부부도 그랬을까? 처음엔 다시 보지 않을 사람 같았는데, 어쩌면 서로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자꾸 마주치다 어느 날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그녀를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얼굴에 미소까지 번지면서 말이다. 얼마가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 씩 문득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그리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윤시내의 낭송이 끝나고 처음 노래를 부르는 부분은 마치 병상에 누워 말할 힘조차 없는 배경모가 남은 힘을 다 해 그의 아내에게 하는 말 같다.

 "그대의 그림자에 싸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세상을 곧 떠날 사람은 숨을 거두기 직전 갑자기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에너지를 발산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타티아나 트로야노스(Tatiana Troyanos)는 암 투병을 하며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아침 화장을 하고, 주사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암 병동 복도로 나가 한 30분 오페라 아리아들을 열창하여 환자들과 보호자, 의사, 간호사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날 오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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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배경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열애>의 한 장면.

 배경모도 갑자기 마지막으로 힘이 솟아난 것일까? 그 힘이 자신의 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열정적인 표현으로 이어진 것일까? 갑자기 노래 중간 부분부터 반주에 점점 긴장감이 더해지고 배경모의 시에는 ‘이 생명 다 하도록’ ‘뜨거운’ ‘불꽃’ 등 강렬한 단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듯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사랑을 피우리라’라고 절규한다. 마치 온 힘을 다해 피우지 못한 마지막 꽃 한 송이를 피우고 그만 기운을 소진해 쓰러지는 것 같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의 작가 앨리스 먼로우의 단편 중에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와 엄마의 보이프렌드와 함께 사는 소녀가 일기장에 ‘Love is a futile emotion(사랑은 쓸데없는 감정)’이라고 쓰는 이야기가 있다. 배경모의 아내처럼 열렬한 사랑을 했던 사람은 상대가 세상을 떠나면 너무 힘들어 가끔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사랑이 쓸데없는 감정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듯하다.

  <열애>에는 가사가 1절밖에 없다. 세계가요제에 출전했을 때는 간주를 만들어 넣어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부터 한 번 더 불렀지만, 원 녹음에는 간주도 없고 ‘사랑을 피우리라’라고 단 한 번 절규하고 노래가 끝난다. 마치 배경모의 짧고 간절했던 삶처럼.

 작곡가 최종혁은 윤시내의 목소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나 보다. 윤시내의 목소리는 그 어느 로커(Rocker)의 목소리에 뒤지지 않는 강렬한 목소리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잘 뽑은 카페라테의 우유 거품처럼 잘고 미묘하고 섬세한 바이브레이션을 지녔다. 한없이 약해지는 육신과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을 표현하기에 그보다 좋은 목소리가 없다.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사랑을 피우겠노라.’ 영혼을 불사르듯 노래할 때 파르르 떠는 그녀의 바이브레이션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하늘하늘 흔들리지만 결코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을 보는 것 같다. 노래와 시와 목소리가 혼연일체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세상의 그 어떤 가수가 불러도 윤시내만큼 감동이 와 닿지 않는다. 

 

시대를 앞선 위대한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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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시내는 <열애> 이후 10년여 한국 가요계를 평정했다. <고목> <천년> <공부합시다> 등 부르는 곡마다 히트였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TBC 방송국이 없어지고 자연히 TBC 세계가요제도 없어졌지만, 서울국제가요제는 1988년 올림픽 때까지 계속되었다.

 윤시내는 1983년 당대 최고의 히트곡 제조기였던 이범희 작곡의 <연민>이란 곡을 들고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전영록과 듀엣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 출전해 또다시 은상을 수상했다. 나는 처음 듣던 순간부터 이 노래를 좋아해서 그들이 따로 녹음을 하길 간절히 원했는데 그 후로 몇 십년간 단 한 차례도 녹음하지 않고, 텔레비전에 나와 함께 부르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유튜브가 생긴 후에도 생각 날 때마다 찾아봤는데 늘 허탕을 치다 한 3~4년 전에야 어느 고마운 분이 서울 국제가요제의 실황 앨범을 유튜브에 올려 줘서 요즘은 종종 감상한다. 근래에 윤시내, 전영록이 팬들의 성화에 드디어 녹음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왜 둘 다 전성기였을 때 한번 녹음하지 않았나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한다니 고맙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1985년 이전에 나온 윤시내의 노래들은 거의 다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를 정도로 좋아했지만, 그 중에서도 <마리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는 노래이다. 마이클 잭슨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정동원 같은 존재였던 1972년 발표한 노래를 번안해 부른 곡이다. 이 노래를 권할 때면 긴 말 하지 않는다. “들어보시오”라고 한다. 들어보고 마이클 잭슨의 원곡도 들어보길 권한다. 누가 더 잘 부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예술가가 시대를 앞서 간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아무리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이 위대해도 대중의 호응 없이 마냥 혼자 앞서 나가기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윤시내도 가수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 <열애>라는 대중성 있는 노래를 부르면서부터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은 대중적인 듯하면서 한 발작 앞서 나가는 노래를 불렀다.

 <고목>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어떤 사람들은 팝의 한 장르인 소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민요풍의 트롯이라고도 했지만, 그녀의 창법에는 록적인 요소도 많다. 그녀는 어느 한 장르로 정의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녹아든 그녀만의 독특한 노래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노래마다 헤어스타일이라든지 의상, 율동 등 시대를 앞서가는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시키는 묘수를 두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 의미에서 윤시내는 상업성과 실험성을 절묘히 조합해 성공을 거둔 가수 중 하나라 하겠다.

 1978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윤시내의 노래는 이상했지만, 40여 년이 흐른 2020년 내가 그날 들었던 노래 중에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그 당시 무명이었던 윤시내의 <공연히> 하나뿐이다. 그만큼 윤시내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가수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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