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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흑인 선수' 표현을 둘러싼 댓글 싸움 탐험대원 '하릅'의 언어탐험
입력 : 2020.08.04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이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말했을 때와 저렇게 말했을 때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예를 들어 ‘정말 죄송합니다’와 ‘뭐, 죄송하게 됐네요’라는 두 문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사과의 표현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전자는 진실한 사과로, 후자는 거짓 사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인터넷 세상을 들여다보면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속담이 다른 곳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유튜브 채널 ‘수현 티비’의 영상 댓글창을 보고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이 영상은 일본 피겨 대회에서 수준급 실력을 선보였음에도 금메달을 수상하지 못한 피겨 선수 ‘수리야 보날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상의 댓글창에는 많은 사람이 보날리 선수에 대한 댓글을 달았는데, 이때 좋아요 수 1.1만 회를 자랑하는 베스트 댓글에서 ‘흑인 선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흑인'은 무조건 차별어일까?

이 댓글에 ‘흑인도 차별적 표현이니 사용을 자제하라’라는 내용의 답글이 달렸고 이를 기점으로 400개를 육박하는 답글들의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흑인은 차별적 단어인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의견을 다투었다.

사실 이는 ‘흑인도 차별적 표현이다’라는 말을 각자 ‘어 해 다르고 아 해 다르’게 받아들인 결과다. 비아냥거리기 위한 의도로 ‘흑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이는 차별적 표현이 된다. 그러나 ‘백인’, ‘황인’과 동등하게 인종을 구별하기 위해 ‘흑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차별적 표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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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채널 '수현 티비'.

 

일부 답글에서는 ‘흑인’이 ‘검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차별적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흑인 인권 운동 슬로건인 ‘Black lives matter’에서도 ‘black’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 ‘黑(검을 흑)’이 인종 차별적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처음 논점을 던진 답글의 설명이 불충분하자 사람들은 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하나의 글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낳았고, 감정이 격해지자 처음 논점을 던진 사람도 격하게 반응했다. 결국 이 논쟁은 거친 말이 오가는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흑인을 차별하는 또 다른 표현이 등장하였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언어폭력이 오고 갔다.

인터넷상의 대화는 말의 억양이나, 사람의 제스처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동반할 수 없다. 따라서 내용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된 해석을 낳기 쉽다. 이때 말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속담을 인터넷상의 대화에 적용하면 ‘이렇게 읽혀 다르고 저렇게 읽혀 다르다’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댓글창에서 왜곡된 해석이 난무하기 이전에, 누군가 댓글 작성자에게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물었다면 어땠을까. 처음 논점을 던진 사람이 ‘흑인’이 어떤 경우에 차별적 언어로 쓰이는지 구체적으로 밝혔다면,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주는 다툼은 없었을 것이다. 혹은 차별적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논하는 진지하고 차분한 자리가 마련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탐험을 통해 우리는 인터넷 언어가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만큼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인터넷에서 대화하게 된다면 조금 더 정확하게, 나의 말을 전달해보자. 혹은 상대방에게 어떤 의도로 말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묻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매서운 싸움의 도화선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릅(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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