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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 노래, 서른 즈음에 서른 즈음에 떠난 김광석, 그리고 서른의 임영웅
입력 : 2020.07.09

김광석이라는 음유시인이 있었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하모니카를 목에 걸고 전국의 소극장을 돌며 거칠 것 없이 뻗어 나오는 목소리로 인생과 음악을 노래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한국 대중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한 채 육년간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만 해도 나는 김광석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다. 귀국 직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초봄 우연히 친구를 따라 갔던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서 잊지 못할 두 곡의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와 안치환이 부른 <소금인형>이었다. 군대에 가서 훈련 도중 사망한 형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 <이등병의 노래>는 곧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내가 귀국한 그 해 우리나라 군대에 인원이 차고 넘쳤는지 군 소집영장이 나오지 않아 그 후로도 한 일년 직장 생활을 하다 방위병 생활을 시작했다. 고참 중 한명이 김광석의 열렬한 팬이었다. 매일 내무반에 김광석 노래를 틀어놓아 그 기간 중에 김광석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몇 년 전 《응답하라 1988》에도 삽입되었던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특히 좋았다. 이등병 시절이라 대놓고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안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모두 외웠다. 단전의 심층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솟구쳐 올라 비강의 울림통을 통해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갑갑한 내 이등병 생활과 상반되는 자유 그 자체였다.

내가 복무를 마칠 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발표했다. 그는 <서른 즈음에>를 일년여 부르더니 서른두 살이 되기 전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만개하려던 찰라 떨어져버린 꽃같이 떠난 김광석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개인의 이야기 같은 가사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라서 그럴까?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에 내가 가장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가가 되었다.

분명 서른을 노래했는데 나이 들수록 좋아지고 인생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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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이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그 자신도 막 서른이 됐을까 한 때였으니, 그보다 나이가 아래인 나는 당연히 생각 없이 즐거운 이십대였다. 남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군복무 말년이었던지라 온 세상이 나의 전역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는 김광석처럼 조숙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이 될 때 그래도 내 나이 뒤에 0이 붙는 해니까 ‘나도 서른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으나, 나에게는 앞으로 뻗어나갈 날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 할 겨를이 없었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내게 다가온 것은 마흔이 넘은 뒤였다. 어느 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

어려서는 매일이 똑 같았다. 학교 다녀와 숙제하고, 저녁 먹고, 시험 틀린 것 가지고 혼나고, 자고 또 학교로 향했다. 조금 자라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그 뒤에 가을이 오고 손을 호호 불며 나가 노는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똑같은 계절이 계속 반복하는 걸로만 알았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똑같은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실은 똑같은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나는 그 속에서 매순간 나이 먹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의 마지막 날은 언제였을까?’

언제가 끝이었는지도 확실치 않게 청춘은 그렇게 스르륵 사라져 버리고 불혹의 내가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다고.

 

인생이 당신에게 커브볼을 던질지라도

영어에 ‘Life throws you a curveball’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 당신에게 커브볼을 던진다는 뜻이다. 인생에는 직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 커브볼 즉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 인생의 방향이 뜻하지 않게 바뀐다. 뭔가 해보려던 차 인생이 나에게 연속해 커브볼을 던지며 선택을 강요할 때가 있다.

나의 사십대는 유난히도 커브볼이 많이 들어온 십년이었다. 사십대 시절 어려운 결정을 많이 해야 했기에 때로 ‘그때 그 결정이 옳았던가?’라고 자문해 보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돌아볼 때면 세상을 내 손 안에 쥐고 있던 듯 생각하던 내 청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래서 내 사십대는 ‘머물러 있는 청춘인데’라는 부분만 들으면 가슴이 시렸다.

쉰이 되면서 처음 ‘아, 나도 늙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51회 생일이 되기 2개월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가 어려서부터 가장 두려워하던 부모님의 죽음이 처음 현실로 닥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모님은 돌아가셔도 나의 부모님은 영원히 살 것 같은 것이 자식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과 또 다르다. 일종의 가림막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는 날엔 난 고아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에서 쉰한 살이 되는 일년 동안 나는 ‘아, 이렇게 늙는 거구나’와 ‘아, 이렇게 우리 모두 죽는 거구나’ 그리고 늙고 죽는 사이의 모든 것을 체험했다.

이제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대목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되었다. 이별은 아동기, 청년기 하며 단위별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같은 일상일지라도 어제의 일상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못 올 일분, 일초와 끝없이 이별하며 사는 것이다.

일상의 이별을 깨달으면서 나는 망각의 치유도 알게 되었다. 오래전 내가 대학생 때였을까? 나의 아버지와 나 단 둘이서 어느 여름날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고 누워있던 적이 있다. 그날 아버지는 당신 할머니 즉 나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을 이야기 하면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 겨우 공부를 해 의사가 된 뒤 곧바로 의사가 드문 타지에 가서 개업을 하셨다. 할머니는 당연히 할아버지를 따라가 살림을 하셨고, 아버지의 동생들도 함께 그곳으로 가서 살았다, 경기 중학교에 입학해 집안의 자랑이자 꿈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나의 증조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그런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다시는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할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슬픔도 무뎌졌다. 다시 밥도 넘어가고, 직장 출근도 하고, 살아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웃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나도 망각의 선물을 받았을까?’라고 일말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신은 공평해서 나에게도 망각의 선물을 주셨다. 후에 나도 당해보니 그냥 살아졌다. 죽음 때문이든 결별 때문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도 돌에 맞은 것처럼 아프다. 망각의 치유가 없다면, 우리는 무수한 이별 때문에 사지가 마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지낼지도 모른다.

잊는다는 것은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잊힌다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잃는 아픔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내 마음을 휘저어 놓을 때마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를 떠 올린다. ‘이 돌팔매도 시간이 흐르면 끝나리.’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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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방송화면 캡처

나는 <서른 즈음에>를 나의 노래방 버전을 포함해 여러 버전으로 들었는데 세 명의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첫째는 물론 오리지널 김광석의 노래다. 두 번째는 이은미가 부른 것이다. 이은미는 내가 김광석만큼이나 좋아하는 가수다. 특히 그녀의 5집 《노블레스》에 실린 <내가 있을 거야>와 <길>, 《녹턴》 앨범에 실린 오보에 전주가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는 늘 즐겨 듣는 곡이다. 그녀가 《노스탈지아》라는 앨범에 여러 노래들을 리바이벌해서 실었는데 거기 들어있는 <서른 즈음에>도 상당히 좋아한다.

얼마 전 나는 오랜 세월동안 따라가며 듣고 싶은 <서른 즈음에>를 발견했다. 바로 얼마 전 생일을 지나면서 서른 살이 된 임영웅의 노래다.

미스터트롯 TOP 7이 노래를 불러주는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에서 임영웅이 부르는 것을 봤다. 내가 임영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노래에 과시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감동적인 노래는 가사를 말하듯 들려주는 노래라고 믿는다. 임영웅의 노래가 그렇다. 그의 노래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자신의 목소리를 과시하려 억지로 한 음을 과장하는 일이 없다. 그가 격정적으로 노래할 때는 가사의 문맥상 격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임영웅이 부른 <서른 즈음에>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맨 끝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였다. 임영웅은 그의 장기인 긴 호흡을 바탕으로 어느 한 단어를 일부러 잡아끄는 것 없이 이 구절을 한숨에 담담히 불렀는데, 그래서 더 감동이었다. 서른 즈음에 자신의 삼십년을 돌아보듯 조근조근 들려주는 그의 노래로 인해 그의 삼십년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불행히도 우리는 김광석이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되었을 때 또 지금 이 시점에 이 노래를 어떻게 다르게 불렀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임영웅이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되었을 때 이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지금 그에게 다가오는 구절은 어떤 것이며, 그가 마흔 살, 쉰 살이 되었을 때는 또 어떤 구절이 그의 심금을 울릴까? 나도 그때까지는 살아 있겠지? 꼭 살아서 그때는 어떤 다른 그림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지 경험해보고 싶다. 아니 내 나이가 60, 70, 80이 되면 이 노래의 어느 구절이 나를 사로잡는지도 한 번 알아보고 싶다.

<서른 즈음에>는 인생을 찾아가는 노래인가보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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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또또엄마   ( 2020-07-09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임영웅 담담하게 노래부를때 첫소절부터 추억에 빠지게 합니다. 저도 임영웅 앞으로 부를 노래들 너무 기대됩니다.
 글 잘읽었읍니다.
  애숙   ( 2020-07-09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당신의 잔잔한 이야기가 임영웅씨 노래와
 잘 어우러져 들리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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