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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해양의 기원》에서 밝힌 대륙 이동의 놀라운 증거들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 1880. 11. 1. ~ 193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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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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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 그림 신로아   

 1930년 11월 1일 아침, 동료들로부터 조촐한 생일 축하를 받은 탐험대장 베게너는 아이스미테 얼음 기지(Station Eismitte)를 떠났다. 14명의 동료대원들과 함께 영하 50도씨 이하로 내려가는 그린란드의 내륙에서 겨울을 나려면 연료와 식량이 부족했다. 서해안의 보급기지까지는 4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였지만, 그가 개척한 최적의 루트를 따라 이동하면 한 달이면 갈 것이었다. 이누이트(사람, ᐃᓄᐃᑦ 이누크티투트어) 동료인 빌룸센(Rasmus Villumsen)이 개썰매를 끌고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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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베게너와 빌룸센의 마지막 사진 ]
출처: Alfred Wegener Institute.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듬해인 1931년 5월 12일 수색대가 아이스미테와 서해안 보급기지의 중간 지점에서 베게너의 무덤을 발견했다. 동료 빌룸센이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도록 십자가를 세워두었다. 빌룸센도 얼음 평원 어디엔가, 눈보라에 파묻혀 잠들어 있겠지만 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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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베게너의 무덤, (우) 아이스미테 기지 ]
출처: Alfred Wegener Institute.

 알프레드 베게너는 1880년 베를린에서 리하르트(Richart Wegener)와 안나(Anna Schwarz)의 다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리하르트 박사는 그레이 수도원의 목사였고, 문법학교에서 고대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다.

 1899년 쾰리히(Köllich)고등학교를 졸업한 베게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인스부르크 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천문학, 대기학,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1904년에 천문학 박사로 공인학위를 받았다. 1902~1903년 사이에는 우라니아 천문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05년 베게너는 그의 형 쿠르트(Kurt Wegener)가 근무하는 프로이센 항공 관측소에 들어가 형의 기술조수가 되었고, 1906년 4월 초 수준계 성능 실험을 위해 형과 함께 풍선 기구를 타고 52.5시간 동안 무중단 비행하여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덴마크 국가탐험대에 기상학자로 참여한 그는 그린란드 북동해안에서 극지 이동 기술을 익히며 기상관측 임무를 수행했다.

 1908~1912년에는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의 강사로 천문학과 기상학을 가르치면서 교과서 ≪대기권의 열역학, Thermodynamik der Atmosphäre≫을 출간했다.

 1912년 1월 베게너는 독일지질학회와 자연과학진흥회에서 대륙의 수평 이동(Continental Drift)에 대한 가설을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두 종의 학술지에 게재되었고, 그해에 덴마크의 지리학자 코흐(Johan Peter Koch, 1870~1928)가 이끄는 그린란드 탐험(1912~1913)에 참가했다.

 1913년 33세가 된 베게너는 기상학자 쾨펜(Wladimir Peter Köppen, 1846~1940)의 딸 엘제(Else)와 결혼했다. 쾨펜은 식생분포를 기준으로 기후구(열대, 건조, 온대, 냉대, 한대)를 구분한 기후학의 권위자였다.

 1914년에 첫 딸을 얻은 베게너는 그해 여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근위연대 예비역 중위로 징집되어 전장에 투입되었다. 벨기에로 진격하는 도중 팔에 관통상을 입었고 14일 후에는 목에 총알이 박히는 부상도 입었다. 연이은 부상으로 장기휴가를 얻게 된 베게너는 대륙 이동설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여 1915년 ≪대륙과 해양의 기원,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 초판을 출간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약 2억 5천만 년 전 세상의 모든 대륙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었지만, 중생대부터 갈라져서 이동하여 오늘날의 해양과 대륙 분포가 되었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이 담긴 것이었다. 이른바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Continental Drift)’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혼란한 시대였으므로 대륙 이동설에 대한 초기 반응은 비교적 조용했다.
 
  1919년 39세에 독일 해양 관측소에 들어간 베게너는 함부르크 북쪽의 소도시 그로스보르스텔(Grossborstel)에 위치한 기상연구소장을 맡았고 함부르크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이때 그의 대륙 이동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젊은 과학자들이 그로스보르스텔을 방문하였고, 베게너는 이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어 대륙 이동에 관한 증거들을 보강했다. 그리고 1920년에 ≪대륙과 해양의 기원≫ 2판, 1922년에는 3판을 출간했다. 3판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스웨덴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대륙 이동설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4년 베게너는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 대학의 정교수로 부임하여 기상학과 지구물리학을 강의했고, 장인 쾨펜과 함께 집필한 ≪과거 지질시대의 기후, Die Klimate der Geologischen Vorzeit≫를 출간했다.

 그의 대륙 이동설은 제3세력이라 불리는 지구물리학자들에게 지지를 받았으나, 1920년대 중반부터 보수적인 지질학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헤럴드 제프리스(Sir Harold Jeffreys, FRS, 1891~1989)는 대륙 이동을 일으킬 수 있는 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이의를 제기했다.

 베게너는 대륙 이동을 일으키는 힘의 근원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달이 일으키는 조석 마찰력, 이극력1), 세차 운동2), 지구 회전축 이동에 의한 힘, 지구 내부 시마(Sima)3)의 대류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아마도 복합적인 힘이 작용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제프리스는 조석 마찰에 의해 대륙이 밀릴 정도라면 산맥들은 무너져 내릴 것이며 지구는 일 년 이내에 자전을 멈출 것이라고 비웃었다.

1) 이극력(離極力, Polfluchtkraft): 대륙에 작용하는 중력과 부력의 합력이 적도를 향하므로 대륙이 극을 이탈하여 적도 쪽으로 밀릴 것이라고 가정한 힘
2) 세차 운동(歲差運動, Precession): 회전하는 팽이의 축이 지면에 대해 비스듬한 상태일 때 팽이의 축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맴돌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자전축도 천구북극에 대해 2만 6천 년 주기로 맴돌이 운동을 한다. 이를 세차운동이라고 한다.
3) 시마(Sima)와 시알(Sial): 해양지각과 맨틀의 암석은 규소(Si)와 마그네슘(Mg) 성분이 많기 때문에 시마(Sima)라고 칭하고, 대륙의 암석은 규소(Si)와 알루미늄(Al) 성분이 많기 때문에 시알(Sial)이라고 칭한다. 

 

 1928년 미국석유지질학회(AAPG) 심포지엄에서 “베게너는 아무런 규칙이나 명확한 행동의 법칙도 없이 우리의 지구를 가지고 함부로 놀았으며, 제멋대로 이리저리 뜯어 고쳤다.”, “베게너의 가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과거 70년 동안 배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고 비난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해 베게너는 최근 연구 자료들을 더 보강하여 ≪대륙과 해양의 기원,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 4판(1928)을 출간했다.

 ≪대륙과 해양의 기원≫ 서문에서 베게너는 ‘1910년, 세계 지도를 바라보다가 양쪽 대륙 해안선의 모양이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륙 이동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가능한 완벽하게 지질학적 증거를 따라야 한다.’라고 언급한 후, 기존의 육교설이나 지구 수축설은 옳지 않으며 대륙은 수평 이동한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육교설은 과거에 남미와 아프리카 사이에 육교가 있었다는 가설로서 두 대륙에 동일한 종류의 생물 화석이 출토되는 것을 해석하기 위해 나온 추측이었고, 지구 수축설은 뜨거웠던 지구가 식으면서 쭈글쭈글 주름이 잡히는 바람에 산맥과 같은 요철이 생기게 되었다는 설이었다.

 베게너는 이에 대해서 육교나 대륙이 바다 밑으로 잠수하는 일은 지각 평형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지구 내부는 라돈과 같은 물질이 붕괴하면서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차갑지 않다고 반론했다. 그리고 대륙 수평 이동의 근거로 측지학적 증거, 지구물리학적 증거, 지질학적 증거, 생물학적 증거, 고기후학적 증거 등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대륙과 해양의 기원,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 4판의 주요 논증

 베게너는 고생대 석탄기말에 모든 대륙이 한 덩어리4)로 붙어 있었는데, 그것이 차차 분리되어 오늘날의 대륙 분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4) 고생대 석탄기말에 형성된 초대륙의 이름이 판게아(pangea)’라고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 중반 보도 기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게너의 대륙과 해양의 기원,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에는 독일어 3(1922)‘Pangäa’라는 단어가 한 차례 등장(p120)할 뿐이다. 2, 4판에서는 이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판게아(Pangaea, 또는 Pangea)는 고대 그리스어 판(πν, 전체)Gaia(Γαα, 어머니, )에서 따온 용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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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게너가 제시한 고생대말, 신생대 고제3기 에오세, 신생대 4기초 대륙의 분포 ]
출처: ≪The Origin of Continents and Oceans≫(1961영판) fig

 

 베게너는 대륙 이동의 측지학적(Geodetic) 증거로 덴마크 측지연구소가 제공한 경도 자료를 제시했다. 자료에는 지구 지표면 여러 지점들의 위치가 수십 미터 이상 변화된 기록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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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도 측정에 의한 그린란드의 이동 ]
 Ⅰ. 북동 그린란드 사비네(Sabine) 섬의 위치 이동, Ⅱ. 서 그린란드 고트호프(Godthaab)의 위치 이동
코흐(Koch)와 옌센(Jensen)의 측정치를 이용하여 제시된 자료
출처: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6. 

 

 지구물리학적(Geophysical) 증거로, 베게너는 수학자 가우스의 오차곡선을 이용하여 지각이 애초에 만들어질 때부터 두 개의 층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지구 수축설의 이론대로 지각이 한 개의 층에서 시작하여 융기한 곳은 산맥이 되고 침강한 곳은 바다가 되었다면, 가우스의 오차 곡선 이론에 따라 수심 2450미터 깊이가 최빈치 지형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두 지점(약 100미터 높이의 대륙과 수심 4700미터 깊이의 해저)에서 최빈치가 나타나므로 지각이 태초에 생겨날 때부터 2개의 층으로 출발했다는 논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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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7. Abb 8. 재구성 그림.

 

 베게너는 지각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중력 측정과 지각 평형, 지진파 관측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유라시아와 북미 대륙은 지하 50~60킬로미터에 지각과 맨틀의 경계부가 있으나, 태평양의 지각에는 그와 같은 경계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지구가 여러 개의 층으로 되어 있어서 지하 30~40킬로미터까지는 화강암(Granite), 그 이하 60킬로미터까지는 현무암(Basalt), 60킬로미터 이하는 초염기성암인 더나이트(dunite: 감람석이 90% 이상인 암석)로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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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60.

 그는 지진처럼 짧은 시간에 작용하는 힘에는 암석이 고체처럼 반응하지만, 오랫동안 서서히 작용하는 힘에 대해서는 유체처럼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하 70킬로미터 부근은 용융되기 쉬우며, 아프리카 지역을 열대류가 일어나는 지역으로 꼽았다.

 베게너는 지질학적(Geological) 증거로, 남아프리카의 지질학자 두 토이(Du Toit)의 연구를 활용하여 대서양 양측의 산맥이 연속되며 암석층이 일치함을 제시했다. 그밖에도 아이슬란드와 대서양 중앙해령도 지각의 균열에 의한 지형이라고 직관적으로 언급했다.(중앙 해령의 균열은 훗날 1960년대에 해저 확장설에서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또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습곡산맥이 지각의 충돌과 압축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아르강(E. Argand)의 연구(≪La tectonic de I'Asie, 1924≫)도 증거로 제시했고, 호주 동부와 뉴질랜드의 습곡 작용, 호상 열도의 활화산 분포, 남극과 안데스 산맥의 연결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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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지질학자 두 토이(Du Toit)에 의한 남미와 아프리카의 암석 일치성 비교도 ]
[(우) 아르강(Argand)에 의한 곤드와나 대륙의 지체 구조도)
출처: ≪The Origin of Continents and Oceans≫(1961영판) fig 18. fig 23. 

 

 베게너는 고생물학적(Paleontological) 및 생물학적(Biological) 증거로 식물화석 글로소프테리스(Glossopteris) 와 파충류 화석 메소사우루스(Mesosaurus)의 분포지가 아프리카와 남미로 연결된다는 점을 제시하였고, 지렁이 룸브리시데(Lumbricidae)와 메가스콜시나(Megascolcina), 정원 달팽이(garden snail)의 분포 또한 대륙 이동설로만 설명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호주와 남미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양 대륙에 서식하는 유대류(有袋類, marsuprals: 캥거루, 주머니쥐)는 같은 종으로 심지어 배 속의 기생충까지도 같다고 서술하면서, 이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대부분 남극과 남미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앵무조개(Nautilus), 트리고니아(Trigonia)처럼 매우 오래된 고대 생물이 태평양 해저에서는 발견되지만 대서양에는 전혀 없다는 우비쉬(Ubisch)의 연구를 토대로, 대서양은 태평양보다 훨씬 나중에 생겼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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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센(Michaelsen) 지렁이 분포 연구를 토대로 한 중생대 쥐라기와 신생대 에오세 대륙 복원도 ]
출처: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30. Abb 31.

 

 고기후학적(Palæoclimatic) 논증에서는 빙하에 의한 퇴적물 빙퇴석(氷堆石), 우림 기후에서 만들어지는 석탄, 건조 기후에서 만들어지는 암염, 석고, 사막 사암, 석회암의 분포를 증거로 제시했다. 그리고 현재 내륙 빙하로 덮여 있는 노르웨이 북쪽의 섬 스피츠베르겐(Spitsbergen)의 기후가 신생대 3기초에는 따뜻했기 때문에 다양한 삼림이 자라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남반구에 위치한 모든 대륙(아프리카, 남미, 호주, 인도)은 석탄기 말에서 페름기 초까지 내륙 빙하였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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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 대륙 분포도에 표시한 페름-석탄기의 내륙 빙하 흔적 ]
굵은 선은 당시의 적도선, 십자(+) 표시는 대륙 분포에 맞춘 남극의 위치
출처: ≪The Origin of Continents and Oceans≫(1961영판) fig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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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탄기의 빙하, 늪지, 사막을 표시한 지도 ]
E: 얼음의 흔적, K: 석탄,  S: 암염, G: 석고, W: 사막 사암, 빗금: 건조한 부분
출처: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36.

 

 베게너가 ≪대륙과 해양의 기원≫에서 대륙 이동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거나 언급한 학자의 수는 2백 명이 넘는다. 그는 자력과 극이동에 대한 논쟁도 소개했다. 자기극의 위치는 매년 조금씩 이동한다. 그 원인에 대해서 지구물리학자들은 ‘대륙이 이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보수적인 지질학자들은 ‘자전축 자체가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의 암석을 기준으로 측정한 자기남극의 이동과 아프리카의 암석을 기준으로 측정한 자기남극의 이동 경로가 다른 것은 대륙이 이동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남극이 두 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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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기 이후 자기남극의 이동 경로 ]
 왼쪽은 남아메리카에서 측정한 경로, 오른쪽은 아프리카에서 측정한 경로
(자기남극의 이동 경로 측정 결과가 두 대륙에서 다르게 나온 것은 대륙 이동의 증거가 된다.)
출처: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38.

 

 베게너는 대륙을 이동시키는 힘의 근원으로 이극력, 조석력을 우선적으로 서술했지만, 슈빈너(R. Schwinner)와 키르쉬(G. Kirsch)가 제기한 시마(SIMA)의 대류 운동4)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베게너는 시마의 대류가 대륙 이동과 대서양의 형성을 잘 설명하지만, 아직 이론적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4) 시마(SIMA)의 대류는 곧 맨틀의 대류를 의미한다. 맨틀의 대류는 영국의 아서 홈스(Arthur Holmes, 1890~1965)에 의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맨틀 대류에 관한 홈스의 연구가 공개된 시기는 1931년으로, 글라스고 지질학회(Geological Society of Glasgow)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 ≪방사능과 지구 운동, Radioactivity and Earth Movement≫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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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스의 맨틀 대류설 ]
출처: 글라스고 지질학회지 p579

 

 베게너는 대륙 해안선의 모양이 대륙붕과 대륙사면을 기준으로 할 때 더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동아프리카 열곡대와 동아시아의 호상열도, 샌프란시스코의 지진 단층을 대륙 이동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소개했다. 아울러 해구가 발달한 태평양과 해구가 발달하지 않은 대서양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진정한 심해 퇴적물인 적색 점토(red clay)와 방산충 연니(軟泥, radiolarian ooze: 딱딱해지지 않은 석회질 또는 규질의 퇴적물)는 대서양에 없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이는 대서양이 태평양에 비해서 매우 젊은 바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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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동아프리카 열곡대 (우) 캘리포니아 지도와 샌프란시스코의 지진 단층]
출처: ≪The Origin of Continents and Oceans≫(1961영판) fig 50,
 ≪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1929≫ Abb 53.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Continental drift)'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촉진된 해저 지형에 대한 연구와 고지구자기학인 증거들이 수집되면서 1960년대 ‘해저 확장설(sea-floor spreading theory)’을 거쳐 1968년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으로 확립되었다.

 베게너는 그린란드의 얼음이 2700미터 두께에 이른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린란드 서해안에서 중심부 내륙 빙하에 이르는 최적의 루트를 개척했다. 그는 1930년 4월 1일에 14명의 독일 그린란드 원정대를 이끌고 코펜하겐 항구를 떠나 그린란드로 출발했고, 그해 11월 중순 그린란드의 평원에서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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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란드 원정 탐험선 ]
출처: Alfred Wegener Institute.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은 대륙 이동의 원동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당시 학계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기상학자가 지질학의 이론을 무너뜨리려 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외면당한 측면이 있다. 그는 대륙 이동의 힘으로 조석력, 이극력, 맨틀의 대류 등을 열거했을 뿐 정확이 무엇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다.

 또한 훗날 판(plate)의 발산 경계가 되는 해령과 열곡, 충돌 경계인 습곡 산맥과 호상 열도, 해구, 보존 경계(변환 경계)인 샌프란시스코 단층대에 대해서도 설명했으며, 자기극의 이동과 대륙 이동의 연관성, 해양의 퇴적 구조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제언했다.

 이러한 제시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지질학자들은 베게너의 약점만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베게너가 제시한 대륙 이동설의 논증들은 그 후 30년 동안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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