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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대한민국 명문고의 조건 서울대 휴학 및 자퇴생이 30%에 달하는 이유
입력 :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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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DB

우리나라에는 ‘명문고’라고 일컫는 고등학교들이 제법 있는데 일반적으로 영재학교, 과학고, 유명 자립형사립고 등이 거론된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 명문고를 이야기하고, 명문고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훌륭한 교육철학, 우수한 교사진, 최신 시설, 쟁쟁한 선배들과 오랜 역사…. 과연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명문고를 판가름하는 조건들일까?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한때 입학처장을 역임했던 대학교수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명문고를 결정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한가지 밖에 없는데, 바로 의과대학과 서울대 합격생 숫자이다. (참고로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경우에는 KAIST 합격생 숫자도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어 필자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고등학교는 의과대학과 서울대 합격생 수를 늘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그러한 모든 노력들을 우리 사회는 ‘교육’ 혹은 ‘입시지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란?

명문고 정의와 맞물려 훌륭한 교장 선생님도 비슷하게 정의될 수 있는데, 부임 후 서울대와 의과대학 합격생 수를 크게 늘리면 그 분은 훌륭한 교장 선생님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필자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시되는 이러한 교육 현실에 답답한 심정을 갖고 있었을 때 우연히 신문에서 김응용 야구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읽게 되었다. 김응용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1567승을 한 우리나라 최고의 야구 감독이다. “아마추어 야구에 뭐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응용 감독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선수들은 열심히 해야 하고 지도자들은 사명감을 가져야 해요. 학교 체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지. 우리는 교장실에 우승기를 많이 갖다 놓으면 명문고라고 해요. 아마추어 야구를 하는데 우승이 목표인 게 말이 돼요? 이런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미국 학교에 가 보세요. 그 학교 출신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진을 걸어놔요. 학교가 몇 번 우승을 했느냐는 것보다 그 학교에서 훗날 메이저리거가 몇 명 나오느냐가 중요합니다. 학생 야구는 결과보다 과정이 우선시 돼야죠. 그래야 학생들에게 무리 안 시킵니다. 생각이 싹 바뀌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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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의 목표가 우승이 되어선 안 돼

한때 우리나라에서 고교 야구의 인기가 매우 높았던 시절이 있었고, 전국 각지에는 야구 명문고등학교들이 즐비했었다. 김응용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읽기 전까지 고등학교 야구부의 목표는 당연히 전국대회 우승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필자에게 인터뷰 내용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너무 반가웠다. 공부 건 운동이건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교육의 목적은 똑같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살아있는 전설인 이회택 축구 감독의 인터뷰 내용도 읽게 되었는데, 그가 유독 후배 지도자들에게 강조하는 게 하나 있다고 한다. “열 번의 우승보다 한 명의 대표선수를 만드는 데 치중해라, 눈앞의 열매보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하라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야구부와 축구부의 목표가 우승이 아니고, 미래의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문고의 목표도 서울대, 의과대학, KAIST에 더 많은 합격생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는 것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눈앞의 우승이나 대학진학을 목표로 할 때와 미래의 메이저리거와 훌륭한 인재 양성을 목표할 때는 교육과 훈련 방법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명문고가 더 이상 입시성적에 매달리지 않고, 우수한 교육, 훌륭한 선배, 그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고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더 이상 서울대, 의대, 혹은 KAIST에 더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교육당국은 입시가 끝난 후에는 일선 고등학교에 당해년도 서울대, 의과대학 합격생 숫자를 요구하기도 한다는데, 이로 인해 일선 고등학교들이 받을 수 있는 쓸데없는 부담감과 함께 자칫 교육당국의 평가방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초래할까 걱정된다.

 

대학생 4명 중 1명이 대학입시를 다시 하는 나라

몇 년 전 신문에 반수(대학교를 다니면서 하는 재수)와 관련되어 신입생 중 휴학 및 자퇴 비율이 높은 대학교 순위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내용 자체도 조심스럽고 통계를 잡기도 어려웠으리란 생각이지만 국정감사장에서 발표된 교육부 자료라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어 보이는데, 서울대가 전국 120여 개 대학 가운데에서 4등으로 27.3%의 신입생들이 휴학 및 자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일단 서울대에 입학을 한 후에 더 좋은 학과, 혹은 다른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 나라 최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가운데 4명 중 1명 꼴로 대학입시 준비를 다시 한다는 사실이 다소 당혹스런 현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전략 상 나쁘지 않는 전략일 수 있다. 일단 서울대에 학적을 걸어놓고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노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당시 뉴스를 처음 접해 놀란 필자가 가까운 과학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 왈, 그 학생이 반수를 해서 서울대 혹은 의과대학에 합격할 경우, 해당 고등학교는 한 번 더 통계에 포함시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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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접하면서 필자가 대학교수로서 더욱 안타깝게 느낀 점은 서울대 합격생 가운데 전공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의 비율이 최소 27.3%, 더 나아가 40~50%까지도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동안 필자는 본 칼럼을 통해 가장 강조한 것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서울대 간판을 따기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꿈과 관계없는 전공을 선택한 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가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필자를 더욱 답답하게 하였다. 어쩌면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구조적으로 서울대는 물론 많은 대학교 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상위권 대학들로 올라갈수록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좋아하지 않는 전공, 정략결혼과 같다

‘사랑은 없고 조건만 보고 하는 결혼’ 혹은 ‘정략결혼’ 등과 같은 경우들이 대부분 행복한 결혼 생활로 이어지지 힘든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부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 시작부터 빠져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 후 함께 살아가면서 ‘사랑’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쉽지는 않다.

한 평생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직업에 있어 전공은 결혼생활에서의 사랑과 같다. 좋아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고, 그로 인해 사회에 나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자신의 꿈 그리고 행복한 삶에서 멀어지게 된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를 낮추고 그로 인해 대학에서 더 이상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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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장동훈   ( 2020-04-11 )    수정   삭제 찬성 : 7 반대 : 0
정말 좋은 글이다. 71년생이고 90학번인데 어떻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하나도 없냐? 서글픈 현상이고 안타까운 시대의 모습이다. 교육을 통째로 바꾸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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