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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 콘텐츠에 한글 자막이 달린 이유 탐험대원 '로운'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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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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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2’의 예고편에 한글 자막이 달린 적이 있다. 한국 드라마에 한글 자막이 나오는 것을 본 경험이 없었기에 눈에 띄었다. 생소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청각 장애인들에게 이런 자막은 외국 콘텐츠의 한글 자막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국 콘텐츠의 한글 자막이 이렇게 생소해서는 안 되는데라고 느꼈다.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작품을 보기 위해 잔뜩 기대하며 영화관에 갔는데 자막이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자막을 달지 않은 문제에 대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면, 보지 않는 것만 못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콘텐츠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루어져 있을 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막이 필요하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볼 때 우리는 당연히 한글 자막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기대는 보통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혹은 TV에서 방영되는 외국 콘텐츠의 경우 한글 자막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 콘텐츠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 콘텐츠에 한글 자막이 달린 경우는 예능에서의 자막을 제외한다면 보기 어렵다. 그마저도 출연자의 말을 모두 자막 처리한 것이 아니라 핵심만 요약하거나 제작진의 의견 등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내용 이해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흥미 유발을 위한 자막인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청각 장애인들은 한국인임에도 자막이 없는 한국 콘텐츠를 편하게 이용할 수 없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 사이트 등에서 자막을 제공하기도 하고, ‘배리어프리(barrier free)’제도를 통해 영화관에서 한글 자막이 달린 한국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지만, 모든 콘텐츠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최근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기생충을 한글자막의 부재로 인해 청각 장애인들이 볼 수 없어 문제가 되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자막이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야 하며 여기저기 문의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만 제공하는 것은 그냥 이해하지 말라는 의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방송에 한글 자막이 달리는 것이 청각 장애인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비장애인에게도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주변의 소음 때문에, 혹은 누군가가 말을 걸어서 중요한 대사를 놓쳐 아쉬워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 자막은 방금 뭐라고 한 거야?”라고 옆 사람에게 묻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도록 시청자들을 도울 수 있다. 또한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를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글 자막은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국민이나 외국인 주민 뿐 아니라 한국어를 학습하기 위해 한국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방송 제작에 있어 일이 늘어난다는 것 외에도 한국 콘텐츠에 한글 자막 달기는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외국 콘텐츠에 자막을 달 듯, 노력을 더해서 수용자 중심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차별을 줄이는 일일 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용자들을 배려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선택적으로 자막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면 자막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자막을 원하는 사람도 큰 불편 없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꼭 모든 한국 콘텐츠에 한글 자막이 달리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운(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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