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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교통약자', 너의 이름은? 탐험대원 '하릅'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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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10

 

오늘 하루도 무수히 많은 사람이 타고 내렸을 지하철. 그 구석에는 ‘교통약자석’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탐험에서 오늘날의 ‘교통약자석’의 진정한 이용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대부분의 이용자가 고령자임을 떠올리면서 그 이유를 톺아보기 위해 ‘경로석’과 ‘노약자석’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오늘날의 ‘교통약자석’은 누구의 자리인지 다시금 돌아보며 탐험을 끝냈다.  

오늘도 교통약자석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지난 번과 달리 ‘교통약자석’ 그 자체에 주목하여 또 다른 탐험의 길로 향하고자 한다. 다양한 나라를 넘나들며 탐험을 떠날 예정이니, 기대를 잔뜩 해도 좋다.  

지하철과 같은 교통 수단을 보면 교통약자석이 마련되어 있다. 이는 일부 사람들이 교통을 이용함에 있어 불편을 겪을 수 있기에 마련된 것이다. 교통약자석과 같은 배려석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각기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교통약자석(交通弱者席)’을 그대로 풀이해보면, ‘교통을 이용함에 있어 취약한 사람들이 앉는 자리’가 된다.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승객, 몸이 불편한 사람, 고령자 등과 같은 사람들이 교통을 이용할 때 ‘취약’하다는 것에 중점을 둔 이름이다.

 

영미권에서는 교통약자석과 같은 배려석을 뭐라고 부를까? ‘priority seat’ 또는 ‘reversed seat’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각각 ‘우선석’, ‘지정석’ 정도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이용 대상은 우리나라와 차이가 없지만, 우선권을 가졌다고 표현한 것과 지정된 자리가 있다고 표현한 것이 인상 깊다.  

일본에서는 배려석을 ‘우선석(優先席)’이라고 부른다. 이 역시 배려석 이용 대상이 ‘우선적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일본의 우선석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워 둘 의무가 없다. 우선석에 앉을 권리를 판단하는 것은 개인이며, 해당 사항이 없더라도 양보 대상이 오면 그때 비워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우선석에 앉아야 하는 상황인지 자유롭게 판단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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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하철의 우선석>

 

이번에는 중국으로 떠나보자. 중국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우선 중국의 수도 베이징부터 탐험하려고 한다. 베이징 버스에는 배려석을 일컫는 특정 명칭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배려석을 그냥 ‘노란색 좌석은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를 위한 전용 좌석입니다’와 같이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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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배려석 표시(출처: 네이버블로그 '길벗이지톡')>

한편 대만에서는 배려석을 ‘박애석(博愛席)’이라고 부른다. 이는 묵자의 사상을 계승한 쑨원의 ‘박애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평등하게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각 나라마다 교통약자를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나라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것을 넘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서로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에, 그 대상의 특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통약자석’이라는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교통약자들이 교통 이용에 취약하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교통약자들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또는 그들이 사랑을 나누어 주는 대상이라는 것을 되새기고 있다.  

우리의 ‘교통약자석’ 역시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 탄생한 이름이다. 그러나 교통약자석에 앉는 누군가는 교통에 취약하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 앉을 권리를 지닌 사람이며, 때로는 사랑을 나누어 주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교통약자’라는 명칭을 조금만 바꾸면, 그들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지하철을 타게 된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관심을 기울여보자. 교통약자석에 앉는 그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 되었으면 좋을지 생각해보자. 내가 만약 교통약자석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나의 어떤 특징을 되새기면 좋겠는가? ‘교통약자석’에 앉을 또 다른 우리를 부를, 또 다른 이름은 없을까?

 

하릅(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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