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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학의 원칙을 세우고 결핵균을 발견한 의학자 로베르트 코흐(Robert Heinrich Hermann Koch, 1843~1910)
입력 :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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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신로아

 

 식물에게 발생하는 탄저병(炭疽病, Canker)과 동물이 걸리는 탄저병(炭疽病, Anthrax)은 한자어가 같지만 영어명은 다르며 원인균도 다르다.

 식물 탄저병은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다. 탄저병은 숯을 의미하는 탄(炭), 등창이나 종기를 의미하는 저(疽)를 합성한 말로, 탄저병에 걸린 식물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반점이 생기며 줄기가 말라 죽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물 탄저병은 세균(細菌, Bacteria) 계에 속한 탄저균(Bacillus anthracis)에 의해서 생긴다. 말, 소, 돼지, 양, 염소 등의 가축이 탄저균에 감염되면 수 일 이내에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동물로부터 감염되어 탄저균이 피부 상처로 침입하면 1~3cm 크기의 시커먼 피부 종양이 생기고, 호흡기를 통해서 탄저균에 감염되면 호흡 곤란과 함께 심하면 쇼크사할 수도 있으며, 소화기를 통해 감염되면 복통, 구토, 설사와 함께 위중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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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탄저균(Bacillus anthracis)과 탄저병에 걸린 피부.
출처: (좌)Texas A&M Veterinary Medical Diagnostic Laboratory, 
(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막대기나 몽둥이처럼 생긴 세균을 간균(桿菌, Bacillus)이라고 한다. 탄저균도 간균의 일종이다. 막대기처럼 생긴 미생물이 탄저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코흐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생물체에서 같은 종류의 미생물이 다량 검출되어야 한다.
 둘째,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생물체에서 미생물을 순수 분리해야 하며, 순수 배양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순수 배양한 미생물을 건강하고 감염이 가능한 생물체에게 접종했을 때 동일한 병이 발생해야 한다.
 넷째, 배양된 미생물이 접종된 생물체로부터 다시 분리되어야 하며, 그 미생물이 처음 발견한 것과 동일한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위의 네 가지 원칙을 ‘코흐의 공리’라고 한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지켜지는 세균학의 원리이다.

 로베르트 코흐는 1843년 독일 클라우스탈(Clausthal-Zellerfeld)에서 광산 기사 헤르만(Hermann Koch)과 마틸드(Mathilde Julie Henriette)의 자녀 13남매 중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862년 자연철학을 전공하기 위해 괴팅겐 대학(Georg-August-Universität Göttingen)에 입학하였으나, 두 학기가 지난 후에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었다. 1866년 의대를 졸업한 그는 1867년 에미 프랏츠(Emmy Adolfine Josephine Fraatz)와 결혼하였고, 종합병원과 개인 병원에서 진료를 하다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 1870)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지원하여 부상병들을 치료하였다.

 1872년 코흐는 지역의료담당관 시험에 합격하여 작은 도시 볼슈타인(Wollstein)의 공의(公醫)가 되었다. 그의 세균 연구는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볼슈타인에서는 탄저병이 유행하여 수만 마리의 가축과 수백 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코흐는 아내가 스물여덟 살 생일 선물로 사준 현미경을 이용하여 탄저병으로 죽은 소의 혈액을 관찰했다. 혈액 속에는 막대기처럼 생긴 미생물이 실 뭉치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과학자 다벤느(Casimir Davaine,1812~1882)와 라예르(Pierre Rayer, 1793~1867)가 죽은 양에서 발견하여 간균(桿菌; 막대균)이라고 이름 붙인 탄저균들의 집합체였다. 그러나 막대 모양의 미생물이 탄저병을 일으킨다고 확실히 증명된 적은 없었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코흐는 살아있는 흰쥐의 꼬리 끝을 칼로 절단한 후, 탄저병으로 죽은 양의 혈액을 뾰족한 가시 끝에 묻혀 주입하였다. 흰쥐는 탄저병에 걸렸고 하루 만에 뻣뻣해진 채로 죽었다. 한 방울의 혈액 속에 들어 있는 수백 개의 탄저균이 하루 사이에 동안 수십 억 개로 늘어나 흰쥐를 죽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탄저균이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니므로 이를 관찰하려면 별도의 배지에서 길러내야만 했다. 코흐는 소의 눈알에서 액체를 뽑아 배양액을 만들고 탄저병으로 죽은 흰쥐의 비장을 잘라 집어넣었다. 그리고 기름 램프로 가열하여 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가 되도록 유지시켰다. 다음날 관찰한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배양액 속에는 잡균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탄저균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였다. 코흐는 잡균들에 의한 오염을 막기 위해 실험 방식을 바꾸었다. 두꺼운 유리판에 오목한 홈을 파고 얇은 유리를 덮어 가장자리에 바셀린을 발라 밀봉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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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판 속에서 탄저균은 빠른 속도로 증식했고 코흐는 이 모습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했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배양한 탄저균을 흰쥐, 기니피그, 토끼, 양에게 주입했다. 실험 대상이 된 동물들은 예외 없이 탄저병에 걸려 죽었다. 코흐는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탄저균은 산소가 부족해지면 구슬 덩어리 형태로 보호막을 만들며 포자 덩어리로 변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건조하고 추운 들판에서도 몇 개월 이상 소멸하지 않는 포자 덩어리는 가축들이 풀을 뜯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물체의 몸으로 이동할 기회를 맞게 된다. 포자가 생물체의 몸으로 들어가게 되면 막대기 형태의 탄저균으로 풀어지면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래서 탄저균이 생물체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면 생물은 죽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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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저균 포자 ]
출처: share-ng.sandia.gov

 코흐는 1876년 봄에 은사였던 식물학자 콘(Ferdinand Julius Cohn, 1828〜1898)과 병리학자 콘하임(Julius Friedrich Cohnheim, 1839〜1884)을 비롯한 여러 의사들 앞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시연해 보였다. 그리고 탄저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탄저병에 걸려 죽은 동물을 태워버리거나 땅속 깊이 묻어야 한다고 말했다. 콘과 콘하임은 코흐가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칭찬했고 후원자가 되었다. 탄저균에 대한 코흐의 논문은 1876년 ≪탄저병의 원인, Die Aetiologie der Milzbrandkrankheit≫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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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병의 원인≫ tafelⅠ.
Fig1: 기니피그 혈액에서 나온 탄저균, Fig2: 수액 한 방울에서 3시간 배양한 탄저균, Fig3: 배양 10시간 후, 실 모양으로 자란 탄저균, Fig4: 배양 24시간 후, 둥근 포자가 진주목걸이처럼 길게 발달, Fig5: 포자의 발아, 2개 이상으로 분해, Fig6: 맷돌 모양의 배지, Fig7: 탄저균 군집, 탄저균 나선, 접힌 세포막 등
Fig1~7은 650배율, Fig9~11은 1650배율로 확대한 모습.
출처: Robert Koch ≪Die Aetiologie der Milzbrandkrankheit(1876)≫ p25


 1880년 코흐는 정부로부터 보건국의 특별연구원으로 발탁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베를린으로 이사하여 두 명의 조수까지 딸린 훌륭한 실험실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우뭇가사리를 삶아 식혀서 만든 한천(寒天)을 이용하여 고체 배지를 개발했다. 고체 배지는 액체처럼 빨리 증발하거나 쏟아질 염려가 없었으므로 세균의 배양과 보관에 유리한 장점이 있었다. 또한 세균 관찰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염색법도 개발했다.

 코흐에게 가장 큰 영광과 좌절을 함께 선사한 연구 업적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의 발견이었다. 당시 유럽은 네 명 중에 한 명이 결핵(結核, Tuberculosis)으로 사망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결핵이 만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핵을 세균에 의한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유전이나 영양 결핍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코흐는 결핵으로 죽은 사람의 장기에 좁쌀처럼 돋아난 결절을 채취하여 깨끗한 유리판에 문지른 후 메틸렌 블루로 염색하여 관찰했다. 결핵균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순수 배양이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혈장1) 젤리를 개발함으로써 결핵균 배양에 성공했다.

1) 혈장(血漿, Blood plasma): 혈액의 액체 성분으로 92%가 물이며, 나머지는 알부민(albumin), 글로불린(Globulin), 피브리노겐(Fibrinogen)과 같은 단백질과 포도당, 나트륨, 칼륨 등의 이온이 들어 있다.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혈구(적혈구, 백혈구, 혈소판)를 분리한 혈장은 노란색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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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핵균 Tuberculosis bacillus ] Author : Saravanan ]

 코흐는 소의 결핵균에서 추출한 물질을 기니피그에 주사하여 치료제로 쓰는 실험을 했다. 추출한 물질은 나중에 글리세린 성분이란 것이 밝혀져 ‘투베르쿨린(Tuberculi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투베르쿨린은 결핵을 치료할 수 없는 항원2)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코흐는 투베르쿨린을 치료제라고 믿었고 치료에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논문 ≪코흐의 결핵 치료제, Robert Koch’s Heilmittel gegen die≫에는 50개의 임상 치료 보고서가 수록되어 있다. 그는 서두에서 자신이 추출한 액체(투베르쿨린)의 주사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그 효과를 긍정적으로 기술했다. 그러나 치료를 받던 환자의 병세가 더 악화되어 사망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투베르쿨린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코흐의 명성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결핵균을 보유한 사람에게 투베르쿨린을 주사하면 국부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특징이 있으므로, 의사들에 의해서 ‘투베르쿨린 반응 검사’3)가 개발된 것은 커다란 소득이었다.

2) 항원과 항체
항원(抗原, antigen): 체내에서 이물질로 간주되는 병원성 세균이나 바이러스, 기타 물질.
항체(抗體, antibody): 항원과 결합하여 항원을 무력화시키는 물질, 면역 글로불린(immunoglobu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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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체의 기본 구조 ]
heavy chain: 중(重) 사슬, light chain: 경(輕) 사슬.
항체의 기본 구조는 Y자형으로 2개 경사슬 끝 부분(바인딩 사이트)이 항원에 부착한다.
그림 출처: Rockland, antibodies & as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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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체가 항원에 달라붙는 방법 ]
A: 항체,   B: 항원
항체가 항원에 달라붙는 방법은 일부만 결합하거나, 포위하거나, 세트로 묶는 방법 등 여러 가지이다. 3, 4번은 체내의 대식세포(大食細胞)가 항체를 이용하여 항원을 먹어버리는 과정을 나타낸다.

 
3) 투베르쿨린 검사는 결핵균의 배양액으로 정제한 투베르쿨린(PPD)을 피부에 주사한 뒤, 48~72시간 후에 피부 병변의 크기로 결핵의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이다. 팔뚝에 주사를 맞았을 때 붉게 부풀어 오르는 경결의 정도를 측정하여 10 mm 이상이거나 BCG를 접종하지 않은 신생아에서 5 mm 이상인 경우 양성으로, 결핵균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한다.(출처: 서울 아산 병원) 

 1883년에는 콜레라가 창궐하여 인도를 거쳐 이집트까지 번졌다. 코흐는 독일 콜레라위원회의 단장으로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콤마 모양으로 생긴 세균을 채취했다. 그리고 그 세균이 콜레라의 원인균임을 입증하기 위해 콜레라가 최초 발생한 인도로 갔고, 콜레라균이 사람의 장이나 오염이 심하게 된 물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콜레라가 위생 관리를 잘 하면 예방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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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레라 균 Vibrio cholerae ]
Credit: M. Stephen Trent, University of Georgia

 1885년 코흐는 베를린 대학 위생학 교수가 되었고, 1891년 독일 정부가 세운 베를린 전염병 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무렵 초상화가의 화실에서 공부하던 19세 소녀 헤트윅(Hedwig Freiberg, 1872~1945)을 알게 된 코흐는 점차 그녀와 관계가 깊어졌고 1893년에 부인 에미와 이혼했다. 그리고 29세 연하인 그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여 커다란 스캔들의 장본인이 되었다. 그 후 코흐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남아프리카와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말라리아, 수면병, 회귀열, 흑수열 등의 열대성 질병에 대해 연구했다.

 1905년 로베르트 코흐는 결핵균을 발견한 업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열대성 질병에 관한 연구로 1906년 프로이센 공로 훈장을 받았으며, 1908년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로베르트 코흐 메달을 받았다. 그는 1910년 6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사망했다.

 결핵 예방 백신 BCG는 1908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세균학자 알베르 칼메트(Albert Calmette, 1863~1933)와 수의사 카미유 게렝(Camille Guérin, 1872~1961)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BCG는 간균(Bacillus), 칼메트(Calmette), 게렝(Guérin)의 머리글자에서 딴 이름이다. BCG 균주는 글리세린 감자 배지에서 13년 동안 239회 계대 배양(繼代培養, 증식된 세포나 세균을 새로운 배지에 이식하여 대를 계속해서 배양하는 방법)하여 독성을 상실한 균으로 만들어졌고, 1921년 인간에게 처음 접종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최초의 결핵 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은 1943년 왁스만(Selman A. Waksman, 1888~1973) 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단백질 합성 억제제로 광범위한 항생 효과를 가지고 있다. 왁스만은 결핵치료제 발명의 공로로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코흐가 결핵균 발견을 발표(1882년 5월 24일)하고 1세기가 지난 후(1982년), 국제 항결핵 및 폐질환 연맹(IUATLD)은 세계보건기구(WHO)와 협의하여 매년 5월 24일을 ‘세계 결핵의 날’로 제정했다. 대한결핵협회(KNTA)는 1989년부터 세계 결핵 예방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였고, 결핵예방법(2011. 1. 26. 시행)에 따라 결핵 예방과 퇴치에 힘쓰고 있다. 대한결핵협회의 정보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1분당 3명꼴로 에이즈나 말라리아로 숨지는 사람보다 더 많다고 한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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