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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짜증나는 현실이 즐거운 환상이 될 때 초6 민서진 양이 그린 거북이 그림
입력 :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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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진 作  <"OH, What a Colorful Road!"> 

“선생님! 선생님!”
아이가 화실에 들어오면서 다급하게 나를 불렀습니다.
“제가요 여기 앞 교차로 횡단 보도를 건너는데요, 차들이 막 엉켜서 못가고 있길래 걸어가면서 내려봤거든요? 그랬더니 그게 갑자기 다 거북이처럼 보이는 거예요.”

키가 커서 중학생처럼 보이는 초교 6학년 서진이. 걸어가며 자기 옆으로 엉켜있는 차들을 보니, 위에서 본 차들의 모양이 거북이처럼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길이 막혀서 차들이 아주 느린 속도로 가는 걸 보니 더 거북이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요, 지금 그걸 그리고 싶어요. 차들을 거북이로 다 바꿔서요.”

아이는 약간 상기된 듯이 말했다.

일주일 전, 아이에게 여러 화가의 그림들을 보여줬었다. 그림에 대한 소질이 많아 보이는데, 그림을 사실적으로만 그리고, 다른 표현의 시도를 아직 해보지 못한 게 아쉬워서 자극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걸 화가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었다. 아이는 그 그림들에 감동하면서 말하길,

“제가 꼭 사실적인 표현을 좋아해서 그렇게 그동안 그렸던 게 아니고요, 저도 이렇게 주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일단 보이는 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거예요. 다음엔 꼭 저도 좀 더 제 생각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본 도시 한 켠의 교통 정체가 이 아이의 창작 스위치를 켜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차들을 거북이로 바꾸어 표현하자니, 차들이 다니는 길도 바닷길처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찻길이 현란하게 뭐가 잔뜩 그려진 바다로 그려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파란색 얼룩 같은 덩어리들이 있는데, 그건 바다를 뜻한다.

“길 전체를 바닷물로 다 색칠해 표현하는 것보다는 중간중간에 패턴처럼 바닷물을 상징하는 푸른 덩어리 이미지를 넣는 게 훨씬 재미날 것 같아서 이렇게 했어요.”

그리고 본인이 장식을 넣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지라 그 푸른 덩어리들에 세필로 여러 무늬를 넣어 주어서 파란 바닷물은 도로 위에 하나의 푸른 패턴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주황색의 이미지를 비롯해 보라나 다른 색채로 된 같은 형태의 이미지는 미역 같은 물풀을 그린 것이다. 그림 왼쪽 아래의 초록 이미지도 그런 풀이나 산호 등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이런 이미지들 사이 사이에는 물결을 나타내는 패턴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색깔의 바다 위를 거북이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초록, 꽃분홍, 빨강 거북이, 또한 형태 선만 그어있는 투명 거북이도 다니고, 그 거북이들 위론 운전자가 운전하는 게 보인다.

차들이 엉켜서 꽉 막힌 도로, 그래서 차들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답답한 도로인데, 그림을 보면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황홀하고 신기하며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즐기려는 관람차들 같다. 관람차 타고 여행하는 것 같다. 그만큼 색채와 패턴들은 화려하고 신나게 입혀졌다.

이런 분위기를 더 고조시키듯이,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 색도 화사하고, 특히 건물에 칠한 색은 남아메리카를 연상시키는 강렬하고 따뜻한 노랑과 오렌지 색으로 되어서 그림 전체의 밝은 느낌을 더 받쳐준다. 특히 노란색은 바다 도로에 많이 있는 파란색과 거북이의 초록색 등과 대비가 되는 색이라, 그림의 색채가 그 대비로 더 화려하게 보인다. 건물과 도로 중간에 있는 인도는 보라색인데, 보라는 노랑과도 잘 어울리고 파랑과도 잘 어울려서 두 대조되는 색채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루하고 답답한 도시 한 켠의 풍경을 이렇게 생동감 있고 즐거운 풍경으로 바꿔놓는 아이의 상상력이 정말 기발하지 않는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이 그림은 아이가 얼마 전 내가 보여주었던 많은 화가 중, 제일 맘에 든다고 한 화가 Jules de Balincourt (쥘 드 발랭쿠르)라는 프랑스계 미국 작가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색채가 아주 밝고 화려하며 대범한 붓질을 쓰는 긍정에너지가 도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현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화려한 색채로 현실 세계를 재해석하고 편집해서, 그가 그린 현실은 환상이나 꿈에서 본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그 그림에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맞아요. 저도 그 사람처럼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정말 재미있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동안의 그림 스타일과 다른 시도를 해본 것도 즐거웠고, 그 결과물이 자기 맘에 들었던 것도 기뻤다고 말이다. 아이의 그림 표현의 폭이 더 넓어지고 그로 인해 현실을 보는 눈 또한 더 넓어진 것이 나도 참 기뻤다.

짜증 나고 답답한 현실 풍경을 이렇게 재미있는 발상으로 완전히 환상 같은 그림을 그려 놓은 아이. 우리가 조금만 창의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런 교통 정체도 바다 여행하는 듯한 환상으로 바꿀 수 있다. 어른들도 가끔은 이런 아이의 발상과 표현으로 꽉 막힌 현실을 바라보고 즐거워해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망상은 문제 있지만, 가끔 뻔한 현실 위에다 재미난 상상을 덧입혀보는 것도 요즘 흔히 말하는 ‘소확행’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화가 Jules de Balincourt(쥘 드 발랭쿠르)의 그림 더보기.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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