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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을 통합한 사람上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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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10

 noname01.jpg그림 신로아

  전기력과 자기력은 겉보기에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전기는 헝겊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만들 수 있지만, 자석은 그처럼 손쉽게 만들 수가 없다. 전기에 감전된 사람은 있지만, 자석에 감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와 빛을 하나로 통합하는 논문을 냈을 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해를 못했고 심지어 그가 미쳤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빛은 전기나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맥스웰은 보이지 않는 실재를 수학으로 묘사하여 그 정체를 알린 사람이다. 그는 전기장, 자기장과 같은 장(場, field) 개념을 만들었고, 처음으로 통계 수학을 이용하여 기체의 운동과 열 이론을 전개했다. 그의 이론들은 아이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이끌어내는 데 커다란 영감을 주었고,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견하도록 동기를 부여했고, 플랑크가 양자(量子, Quantum) 개념을 만드는 데에도 기여했다.

 맥스웰의 생애를 연구한 학자들은 전자기 문명이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21세기 물리학자들이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3인의 한 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전기를 쓴 메이헌의 표현을 빌면, 맥스웰은 ‘너무 커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거인’이다. 
 
 영국 에든버러의 변호사였던 존(John Clerk Maxwell)은 삼십 대 후반에 친구의 여동생 프랜시스(Francis Cay)와 결혼하고, 상속받은 영지에 저택을 짓고 이사했다. 그곳은 에든버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 남서부 갤러웨이(Galloway)주의 미들비(Middlebie)라고 불리는 시골이었다. 부부는 저택에 글렌레어(Glenlair house)라는 이름을 붙이고 평화로운 시골의 삶을 시작했다.

 부부가 낳은 첫 여자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아내가 마흔이 다 되었을 때 가진 둘째 아이는 대도시 에든버러에서 출산했다. 이 아이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다. 맥스웰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성경 암송도 잘하는 영특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여덟 살이던 해에 커다란 슬픔이 찾아왔다. 엄마 프랜시스가 복부 암에 걸려 수술을 받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존은 재혼하지 않았고, 아들의 교육을 16세의 남학생 가정교사에게 맡겼다. 그러나 가정교사가 암기를 강요하고 체벌도 했기 때문에 참다못한 제임스가 집을 뛰쳐나가는 일이 생겼다. 결국 맥스웰은 고모와 이모가 살고 있는 에든버러로 보내졌고, 11세에 에든버러 아카데미(Edinburgh Academy) 2학년에 편입했다. 

 갤러웨이에서 온 시골뜨기 소년은 학교에 편입하자마자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편입한 첫 날에 옷이 거의 다 찢어져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담임교사는 엄하게 수업하는 교사였기 때문에 맥스웰은 발표를 두려워했고 성적도 한 해 동안 꼴찌를 맴돌았다. 괴롭히는 애들은 그를 얼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맥스웰은 차차 새 환경에 적응하면서 3학년이 되자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특히 기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평생의 벗이 되는 친구들도 사귀었다. 

 14세에 맥스웰은 계란 모양, 찐빵 모양 등의 여러 가지 타원체를 그리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썼다. 아버지 존은 아들의 논문을 에든버러대학 자연철학 교수인 친구 제임스 포보스(James David Forbes, 1809–1868)에게 보여주었다. 포보스는 어린 소년이 쓴 논문이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쓴 것보다 더 창의적이고 쉽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왕립학회에 이 논문1)을 소개했다.

1) ≪복수의 초점과 여러 비율의 반지름을 지닌 외접 도형에 관한 관찰, Observations on circumscribed figures having a plurality of foci, and radii of various proportions≫ 

2.-AP+2BP=c로-구성된-타원.jpg

맥스웰의 설명에 따라, 고정 핀 2개에 실을 묶고 연필을 회전시켜 그린 계란 모양의 타원체

 

3.-AP+BP+CP=c로-구성된-타원.jpg

맥스웰의 설명에 따라, 고정 핀 3개에 실을 묶고 연필을 회전시켜 그린 타원체

 

 맥스웰은 16세에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했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포브스와 동료 교수가 그의 아버지를 설득했고, 19세에 맥스웰은 과학교육의 산실인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에 입학했다. 기대했던 대로 맥스웰은 케임브리지에서도 최상위의 학업 성취를 보이며 활동적인 대학생활을 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전통적으로 트라이포스 수학 시험(Mathematical Tripos)을 통과해야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 시험은 기본적으로 사흘 동안 치러지며, 랭글러(wraglers, 수학 일급 학위자)로 졸업하고 싶은 학생은 나흘 동안 추가 시험을 치러야했다. 트라이포스 시험의 시니어(1) 랭글러는 수학자인 E. J. 라우스가 차지했고, 맥스웰은 차석이었다. 또한 고급 수학 문제를 겨뤄 케임브리지 스미스 상(Smith's Prize)이 주어지는 시험에서는 라우스와 맥스웰이 공동 수상했다.

  대학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사연구원을 거쳐 2년 후 펠로우(Fellow: 무료 숙식, 수업, 경영 참여 등의 권한을 갖는다.)가 된 맥스웰은 유체정역학과 광학을 강의했고, 빛의 3원색에 대해 연구했다.  

 그림물감은 빛을 흡수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색깔을 혼합할수록 점점 검은색으로 변한다. 우리가 보는 물감의 색은 물감이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한 빛의 색깔이다.

 빛의 혼합은 물감의 경우와 다르다. 빛은 색을 느끼게 하는 본질체이다. 따라서 빨주노초파남보 여러 광선이 동시에 눈으로 들어오면 눈부신 흰색으로 느끼게 된다.

 맥스웰은 빛이 가산 혼합(可算混合), 물감은 감산 혼합(減算混合)의 성질을 가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는 색팽이를 만들어 실험을 거듭하여 빛의 삼원색은 RGB, 즉 적색(Red), 녹색(Green), 청색(Blue)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RGB 혼합 비율2)에 따라 어떤 색상으로 보이게 되는지를 연구하여 1855년 에든버러 왕립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noname03.jpg

2)빛의 삼원색 R(적색), G(녹색), B(청색) 비율 값은, 오늘날 컴퓨터 색상 도표에서 RGB(255, 255, 255)와 같은 형식으로 표현된다. 아래한글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글자색을 바꾸려고 클릭하면 RGB 숫자 값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RGB(255, 0, 0)는 빨강, RGB(0, 255, 0)은 초록, RGB(0, 0, 255)는 파랑이고, RGB 최솟값 (0, 0, 0)은 검정, RGB 최댓값 (255, 255, 255)는 흰색이다  

6. RGB색상-혼합.jpg

➡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RGB 색상 값을 기입하고 구현한 색깔이다. 빨강, 초록, 파랑 빛의 조명을 벽에 쏘면 이와 같은 색상을 볼 수 있다.

 같은 해 맥스웰은 전기력과 자기력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페러데이의 역선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패러데이의 역선 개념이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고 무시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맥스웰은 전기장을 유체의 흐름(flux)으로 가정하여 수학적 모델을 세웠고, 논문 패러데이의 역선에 관하여, On Faraday's Lines of Force를 집필한 후 1, 2부로 나누어 1855년과 1856년에 케임브리지 철학 학회지에 발표했다.

 1856년 폐질환을 앓고 회복한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맥스웰은 25세에 부모형제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애버딘에 위치한 매리셜 칼리지(Marischal College)의 자연철학 교수로 채용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존 카우치 애덤스(John Couch Adams, 1819~1892)가 수학적으로 해왕성의 존재를 예견³한 것을 기념하여 2년에 한 번 수학 문제를 출제하고 애덤스 상을 시상했다.

3) 해왕성은, 천왕성의 공전 경로가 수학적으로 분석한 경로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예견된 후 발견되었다. 그러나 해왕성의 위치를 누가 먼저 정확하게 예측했는지에 대해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논쟁을 벌였다. 일반적으로는 프랑스의 르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 Verrier, 1811~1877)가 먼저 정확하게 예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55년 애덤스 상을 걸고 출제된 문제는 ‘토성의 고리가 고체일까, 유체일까, 아니면 별개의 물질 덩어리일까?’ 하는 수학적 증명 문제였다. 

 맥스웰은 토성의 고리가 수많은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을 때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수학적 계산을 이끌어내고 논문을 제출하여 애덤스 상을 수상했다. 이에 관한 내용은 ≪토성 고리 운동의 안정성, On the stability of the motion of saturn's rings≫이란 제목으로 1859년 케임브리지에서 출간되었다. (20세기의 우주 탐사선들은 토성 근접 촬영을 통해 맥스웰의 추론이 옳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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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니시 우주선(Cassini spacecraft)이 촬영한 토성과 고리(2019.9.20.)] 출처: NASA

  1858년 26세의 맥스웰은 매리셜 칼리지 학장의 딸 캐서린 드워(Katherine Mary Dewar, 1824~1886)와 결혼했다. -캐서린은 맥스웰보다 7년 연상이었고, 부부 사이에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다. 캐서린은 남편 맥스웰의 색 상자 관찰과 기체의 점도 실험 등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결혼 후 맥스웰은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4)가 쓴 기체 확산에 관한 논문을 접했다. 공기 분자는 초당 수백 미터씩 움직이지만 수없이 충돌하기 때문에 향수 냄새가 방 하나를 가로질러 가는 데 수 초가 걸린다는 설명이 담긴 논문이었다. 맥스웰은 통계수학을 이용하여 공기 분자의 속도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종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 형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발견은 훗날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에 의해서 더욱 정밀하게 연구되어 통계역학을 이용한 분자 운동론으로 발전한다.(상세 내용은 볼츠만 편에서 다룸)

 

4)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1822~1888):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열역학 제 2법칙(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일정하거나 증가할 뿐 감소하지 않는다.)을 발견하였고, 엔트로피, 엔탈피와 같은 개념을 창안했다.

  1860년 맥스웰은 기체의 역학에 대한 논문 및 색의 혼합과 스펙트럼 빛깔에 대한 논문을 각각 발표했다. 그러나 마리셜 칼리지와 킹스 칼리지가 합병되면서 교수직을 잃었다. 그해 그는 말 시장에 가서 아내에게 선물할 조랑말을 구입하여 돌아왔는데, 아마도 시장에서 옮은 듯 천연두에 걸려 생사의 기로를 헤매야 했다. 병마를 힘겹게 이겨낸 그는 런던대학교 자연철학 교수로 부임하여 1860년 시월에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1861년 5월 왕립연구소의 강연에서 그는 빨강, 녹색, 파랑 필터를 통해 각각 촬영한 사진을 세 대의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투영하여 최초의 컬러사진을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1864년에는 논문 ≪전자기장의 역학적 이론, A Dynamic Theory of Electromagnetic Field≫을 썼고, 이 논문은 일곱 부분으로 나뉘어 이듬해 1월부터 왕립학회지에 게재되었다.

 1865년에는 말을 타다가 나뭇가지에 부딪혀 생긴 염증으로 심하게 앓았다. 이에 맥스웰은 런던대학교를 사직하고 어릴 때 살던 고향집 글렌레어로 돌아왔고, 5년 동안 고향에 기거하며 집필 활동에 몰두했다. 그 기간 동안 십여 편의 논문을 왕립학회에 발표하고, ≪열 이론, Theory of Heat(1872)≫과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고; A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1873≫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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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Oxford Clarendon Press. 1873.

 맥스웰 최고의 역작이라 일컬어지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고≫는 선대 과학자들이 알아낸 전기와 자기에 관한 법칙과 이론들을 수학 방정식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이 책에는 빛이 전자기파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가장 유명한 ‘맥스웰 4방정식’은 별도의 꼭지로 다룸)

 맥스웰 이전의 전기, 자기에 관한 법칙이나 발견들은 다음과 같다.

 • 1785년 쿨롱(Charles-Augustin de Coulomb, 1736~1806) 법칙: 전하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함.

 • 1800년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 묽은 황산에 구리판과 아연판을 번갈아 쌓아 화학 전지 볼타 파일을 제작함.

 • 1820년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 1777~1851):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서 자석 바늘이 회전하는 현상을 발견함.

 • 1820년 비오-사바르(Jean-Baptiste Biot, 1774~1862, Félix Savart, 1791~1841) 법칙: 자기장은 전류 흐름 방향에 수직이고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함.

 • 1820년 앙페르(André-Marie Ampère, 1775~1836) 회로 법칙(오른나사 법칙): 자기장의 크기는 전류 밀도에 비례하며, 도선의 전류가 엄지손가락 방향으로 전류가 흐를 때 자기장은 나머지 네 손가락을 말아 쥔 방향으로 형성됨.

 • 1821년 패러데이(Michael Faraday,1791~1867) 전자기 유도 법칙 : 자기력선속(磁氣力線束; 자기력선 다발)의 변화가 기전력을 발생시킴.

 

  몇 년 동안 고향에서 집필 활동을 하던 맥스웰은 1871년 3월에 케임브리지 대학 실험물리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 오자마자 ‘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 건립의 세부 설계를 맡게 되었다.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 FRS, 1731~1810)는 수소를 발견하고, 지구의 밀도를 정확하게 측정하였으며, 전기 저항에 관한 옴의 법칙(Ohm's law: 도체의 저항의 크기와 전류의 크기는 반비례)을 옴(Georg Simon Ohm, 1789~1854)보다 50년 앞서 알아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었지만 중년 이후 자신의 성에 은둔하면서 혼자서 연구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와 얼굴이 마주친 하녀를 해고했다는 일화도 있다. ‘캐번디시 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연구소 건립비용을 대는 데번셔 공작(William Cavendish, 7th Duke of Devonshire, 1808~1891)이 그의 친족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1876년 맥스웰은 학생들을 위한 역학 기초 교재 ≪물질과 운동, Matter and Motion≫을 출간했고, 1879년에는 데번셔 공작이 건네 준 캐번디시의 미출판 논문을 추려서 ≪존경하는 캐번디시의 전기 연구, The Electrical Researches of the Honourable Henry Cavendish≫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맥스웰은 전기, 자기, 빛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광학, 역학, 열역학을 비롯하여 속도 제어 시스템과 기상학 등에 이용되는 응용 수학 이론들을 제시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도 평가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1877년부터 위암이 시작되어 속 쓰림에 시달리다가 1879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맥스웰의 유해는 부모의 묘소에 합장되었다. 그의 아내 캐서린도 7년 후에 같은 곳에 묻혔다.

 맥스웰이 예측한 전자기파의 실체는 그가 세상을 떠나고 십 년 후(1888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의 라디오파 유도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1893년 세르비아 출신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년~1943), 1895년 이탈리아 전기공학자 마르코니(Guglielmo Giovanni Maria Marconi, 1874~1937)는 각각 독자적으로 전파를 이용한 장거리 무선통신에 성공했고, 이후 라디오의 시대가 열렸다.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을 통합한 사람下'편에서 계속>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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