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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12. 27. ~1895.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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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30

noname01.jpg그림 신로아  

 1858년, 프랑스 루앙의 과학박물관장인 푸셰(Felix Pouchet, 1800~1872)는 끓는 물에 마른 풀을 넣고 삼십 분 동안 더 끓였다. 그는 액체가 충분히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은이 가득 찬 통에 거꾸로 세워진 1리터 용량의 플라스크 속에 넣고 0.5리터의 산소를 주입했다. 산소는 화학 반응을 통해 얻은 순수한 것으로 미생물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다. 8일 후, 푸셰는 플라스크 속에서 곰팡이가 피어난 것을 관찰하였고, 이 실험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제출했다. 그가 입증하고자 한 것은 ‘생물은 산소만 있으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라는 것이었다.

 1864년 4월 소르본(파리 대학교) 야간 과학 강연회에서 파스퇴르는 푸셰가 수은 통에서 행한 미생물 발생 실험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먼지 속에는 미생물 포자가 섞여 있는데 외부와의 차단재로 사용한 수은이 이미 먼지에 오염된 상태임을 푸셰가 간과했다는 것이었다. 파스퇴르는 공기에서 저절로 미생물이 발생할 수는 없고 반드시 씨앗이 되는 포자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청중들에게 백조의 목처럼 구부린 플라스크를 보여주면서 자신이 행한 실험의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백조목 플라스크에 유기물 침출액을 넣은 지 4년이 지났는데도 미생물에 의해 부패하지 않고 여전히 투명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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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의 목처럼 구부러진 유리관은 먼지와 미생물의 유입을 차단하지만 산소 같은 공기 성분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거름 장치였다.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드는데도 미생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실험 결과는 자연발생설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구부러진 유리관을 떼어내고 방치한 경우에는 공기에 떠다니는 포자가 유입되므로 플라스크 내부에 곰팡이 미생물이 생겼다.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자연발생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수은 통에서 건초를 이용해 미생물 발생 실험을 했던 푸셰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보다 주의를 기울여 오염되지 않은 수은을 사용하여 재차 실험했을 때에도 미생물이 발생하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실험은 또 다른 원인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었다. 이유는 십 년 정도 지나서 밝혀지는데, 마른 풀에 100℃로 가열해도 죽지 않는 내열성 세균 포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열성 세균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자연발생설을 옹호하는 학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1) 당시 논란의 대상이었던 자연발생설은 고기를 방치하면 구더기가 저절로 생긴다는 설로서,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 속에서 유기물 합성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는 자연 발생설과는 별개의 학설이다.

 반도 전쟁2)에서 용감한 군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하사관 장-조셉(Jean-Joseph Pasteur)은 귀향하여 무두질(생가죽을 매만져서 부드럽게 만드는 일) 일을 하다가 정원사 일을 하고 있던 소녀 잔느-티넷(Jeanne-Etiennette Roqui)을 만나 청혼했다. 결혼 후 장-조셉은 장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프랑스의 작은 도시 둘(Dole)에 무두질 공장을 차리고 정착했다. 운하의 강둑을 따라 집들이 들어선 평화로운 동네였다. 부부는 딸 셋을 낳고 아들을 하나 낳았으며 또 딸 둘을 낳았다. 아들 루이 파스퇴르는 스케치와 낚시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으로 자랐다.

2) 반도 전쟁(Peninsular War, 1808~1812):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나폴레옹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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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하 쪽의 장-조셉 파스퇴르의 무두질 공장출처 : wikimedia by Arnaud 25, (2013)

 1839년 쁘장송(Besancon) 왕립대학(College Royal)에 입학하여 철학을 전공하고 1840년에 문학사 학위를 받은 파스퇴르는 1843년 파리 에꼴 노르말(Ecole normale superieure, 고등사범학교)3)에 들어가 2년 후 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파스퇴르는 아르데슈(Ardeche) 주에 있는 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가려고 했으나, 원소 브로민(Br)을 발견한 앙투안 제롬 바랄(Antoine Jerome Balard, 1802~1876) 교수가 그에게 조교 자리를 권유하여 에꼴 노르말에 남았다.

3) 파리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약칭 ENS): 파리 과학인문학대학교(Universite PSL)의 자연과학계열 그랑제꼴(Grandes Ecoles)이다. 그랑제꼴은 최정상급 소수 정예를 선발하여 교육하는 프랑스의 영재교육기관을 말한다.

 조교로 일하면서 그는 포도주 통에 침전물로 생성되는 주석산(酒石酸, 포도나 바나나 등의 과일이 발효할 때 생기는 침전 결정)에 대해 연구했다. 당시 알려진 주석산은 두 종류였는데, 타르타르산(Tartaric acid)과 라세미산(Racemic acid)이 그것이다. 이 둘은 동일한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편광4)을 쏘였을 때 나타나는 성질이 달랐다.

4) 광학 필터를 통해 걸러져, 한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빛

 타르타르산에 수평 편광을 쏘이면 7°의 각도로 휘어지지만, 라세미산에서는 편광이 똑바로 진행했다. 파스퇴르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타르타르산의 결정들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반면, 라세미산 결정들은 거울 대칭을 가지는 결정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그는 현미경을 사용하여 결정면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결정을 분리하고, 각각을 녹인 용액을 따로 만들어 빛의 진행 경로를 측정했다. 그 결과 하나는 오른쪽으로 하나는 왼쪽으로 빛이 휘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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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발견은 물질의 성질이 성분뿐만 아니라 분자 구조의 형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그가 알아낸 분자의 결정 특성은 입체화학(stereochemistry)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태동하게 했다. 

 파스퇴르는 그 업적에 힘입어 1849년 1월에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e de Strasbourg)의 화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대학장의 딸인 마리 로랑(Marie Laurent, 1826~1910)과 결혼했다. 마리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남편의 기록 작가이자 궂은일을 도맡는 실험 조수로서 헌신적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된다. 파스퇴르와 마리는 1남 4녀의 아이를 낳게 되지만, 장티푸스로 딸 셋이 각각 9세, 2세, 12세에 사망했다.

 1854년 31세의 파스퇴르는 벨기에 국경 근처에 신설된 릴 대학교(Lille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에 학과장으로 부임했다.

 1856년 파스퇴르는 포도주의 발효 상태가 나빠서 손해를 입은 주류업자로부터 대책을 세워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맛있는 포도주는 효모에 의해서 발효가 되지만, 쓴 맛이 나는 포도주는 효모가 아닌 세균성 미생물에 의해서 발효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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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ouis Pasteur ≪Etudes sur Le Vin≫ L'IMPRIMERIE IMPERIALE, 1866.

 세균성 미생물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파스퇴르는 포도주를 50~60℃의 저온으로 가열하면 세균이 죽고 변질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동일한 와인이라도 햇빛과 공기 노출 정도에 따라 이산화탄소의 함량이 달라지며 색깔이나 맛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산소 결합이 많은 와인일수록 색조가 더 진해지고(레드와인은 붉은 색, 화이트 와인은 황금색으로), 당도는 확실히 감소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와인에 생기는 침전물은 칼륨 바이트레이트(Potassium bitartrate)와 칼슘 타르트레이트(Calcium tartrate)가 주성분으로 와인의 품질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와인 연구, Etudes sur Le Vin≫에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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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퇴르의 연구 덕분에 프랑스의 포도주 사업은 다시 살아났다. 그의 저온처리법은 맥주와 우유에도 확대 적용되었고, 식료품 저장과 수송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저온처리법이 파스퇴라이제이션(Pasteurization)이라 불리는 것은 그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전까지의 발효 이론은 효모가 발효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발효가 될 때 효모가 번식하여 오히려 발효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파스퇴르는 효모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효모는 자연 발생하는 것인가, 어디선가 날아온 포자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학설은 생물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생물이 자연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래로 많은 학자들이 자연발생설을 주장하고 있었으며, 푸셰의 실험을 통해서 자연 발생이 증명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1861년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설 비판≫5)을 출간했다. 이 책을 통해 자연발생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실험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에 대해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생물은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종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매듭지었다.

5) 원제: ≪대기 속에 존재하는 유기체성 미립자에 관한 보고서. 자연발생설 검토, Memoire Sur Les Corpuscules Organises Qui Existent Dans L'Atmosphere, Examen De La Doctrine Des Generations Spontan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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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퇴르가 그린 백조목 플라스크 ]
출처: NCBI(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1863년 에꼴 노르말((Ecole normale superieure) 교수로 다시 돌아오게 된 그는 누에에 발생하는 미립자병 연구에 뛰어들었다. 누에들이 병들어 죽는 바람에 프랑스의 양잠업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누에와 누에의 알을 연구하여 원생동물의 포자가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누에를 살리는 방법은 병든 누에를 소각 처리하고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파스퇴르의 조언에 힘입어 프랑스 양잠업은 다시 살아났다. 프랑스의 마지막 세습 황제인 나폴레옹 3세는 파스퇴르가 이룬 업적을 칭송하고 그를 왕궁으로 초대하여 종종 의견을 들었다.

 1867년 파스퇴르는 석좌 교수가 되었지만, 뇌일혈로 건강이 나빠져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그 대신 대학에 요청하여 생리화학실험실을 만들고 1888년까지 책임자로 일했다. 그의 연구는 보불전쟁6)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맥주의 제조 공정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프랑스의 맥주 산업을 발전시켰다.

6) 보불전쟁(普佛戰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 7. 19.~ 1871. 5. 10): 독일 프로이센 왕국은 1918년까지 존속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여 나폴레옹 3세는 포로가 되었고, 프로이센군은 파리에서 시가행진을 했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빌헬름 1세를 독일의 황제로 선언했다. 전쟁 후 프랑크푸르트 조약(1871. 5. 18)에서 프랑스가 전쟁 배상금으로 50억 프랑을 내지 못하면 프로이센군이 계속 주둔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에 치욕을 느낀 프랑스 국민들은 금, 은, 구리 재물을 팔아 성금을 모았고 불과 3개월 만에 배상금을 갚아 프로이센군대를 철수하게 만들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1877년에는 독일 의사인 로베르트 코흐(Robert Heinrich Hermann Koch, 1843~1910))가 가축과 사람에게 전염되는 탄저균을 발견했다. 탄저균은 피부 상처 또는 호흡기나 소화기관을 통해 전염되어 패혈증을 유발하는, 동물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세균이다. 그때부터 파스퇴르는 세균에 저항할 수 있는 백신(vaccine)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파스퇴르가 제일 먼저 개발한 백신은 닭 콜레라 백신이었다. 프랑스에 닭 콜레라가 발생하여 닭들이 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배지(培地, 미생물을 증식시키기 위해 고안된 액체나 젤 상태의 영양원)에 방치하여 약해진 콜레라균을 닭에게 주사했더니, 면역력이 생긴 닭들은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 

 파스퇴르는 같은 방식으로 탄저균 백신을 만들었다. 그러나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효과를 입증하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그는 1881년 48마리의 양과 2마리의 염소, 4~5마리의 소에 대한 탄저병 백신 접종을 공개적으로 실시했다. 절반의 동물에게는 1차,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나머지 절반의 동물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채, 치명적인 탄저균을 주사하여 그 결과를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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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랑송이 그린 푸이-르-포르 목장의 파스퇴르 ]
Louis Pasteur in Pouilly-le-Fort(1881) by Auguste Andre Lancon

 5월 31일에 탄저균을 주사하고, 6월 2일에는 그 결과를 보기 위해 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백신을 맞은 동물들을 모두 탄저병에 걸리지 않았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 동물들은 코와 입에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파스퇴르는 질병에 감염되거나, 수술 후 상처에 염증이 생기고 피가 썩는 패혈증으로까지 진행되는 것이 모두 외부로부터 날아드는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의학 수술 도구를 소독하기 위해 페놀과 같은 살균제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고 전해진다.

 이어서 파스퇴르는 조수 에밀 루(Pierre Paul Emile Roux, 1853~1933)의 도움을 받아 광견병7) 백신을 개발했다. 광견병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므로 일반 광학현미경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파스퇴르도 병원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광견병에 걸린 토끼의 척수를 잘라 말리는 방식으로 백신을 개발했다.

7) 광견병(狂犬病, Rabies): 사람과 동물 공통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 zoonosis)이다. 물 등을 두려워하게 되는 특징 때문에 공수병(恐水病, Hydrophobia)으로도 불린다. 원래 인간의 뇌에는 혈액 뇌 장벽(Blood Brain Barrier)이 존재하여 외부 물질을 막기 때문에 바이러스 등이 침투할 수 없으나, 광견병 바이러스는 RVG 단백질을 통해 이 장벽을 통과하여 뇌를 감염시킨다. 개, 고양이, 너구리, 스컹크, 박쥐 등의 동물에 물리는 경우에 발병할 수 있다.(위키백과 인용)
 처음에는 물린 상처에서 중추를 향하여 방산하는 신경통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서 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불면, 식욕부진, 동공산대(瞳孔散大), 타액 분비과다, 발한(發汗)등이 일어난다. 2∼3일 지나면 체온이 38℃ 정도로 되고 불안과 흥분상태가 심해진다. 바람과 빛, 소리 자극에 대해 강한 반응을 보이며 인두(咽頭)의 근육에서 가슴으로 뻗치는 통증과 함께 경련이 일어난다. 이 발작은 점차 빈번해지며 2∼3일 후 마비기에 들어가 발작이 감퇴하여 침정기(沈靜期)가 점점 길어진다. 먼저 물린 상처와 관계가 있는 근육의 마비가 일어나고, 다음에 동안근(動眼筋)이나 표정근(表情筋) · 교근(咬筋) · 사지(특히 하지)의 마비가 연달아 일어나며, 의식이 혼탁하여 발병 3∼5일 후에 호흡이 마비되며 질식사한다. 드물게는 마비형이라고 하여 흥분기의 경련 발작이 없이 바로 운동마비나 지각마비가 나타나서 급사하기도 한다.(두산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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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광견병 바이러스: 짙은 회색의 막대 모양의 입자들이 바이러스 ]
사진 출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파스퇴르가 만든 광견병 백신은 수십 마리의 개를 치료했다. 사람에게 광견병 백신이 처음 투여된 것은 1885년 7월이었다.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수십 차례나 물린 아홉 살 소년 조셉(Joseph Meister)을 데리고 그의 어머니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파스퇴르는 의사 2명의 동의를 얻은 후 조셉을 치료했다.

광견병은 치명적이지만 잠복기가 2주일 이상 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기 이전에 치료하면 살 수 있다. 13차례에 걸친 접종 끝에 소년은 완치되었다. 그 후로 미친개에게 물린 많은 사람들이 파스퇴르를 찾아와 백신 치료를 받았으며, 미친 늑대의 습격을 받은 십여 명의 러시아 사람들도 치료받았다. 러시아 황제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세인트 앤 다이아몬드 십자가(the Cross of the Order of St. Anne)를 선물했으며, 각지에서 파스퇴르 연구소 건립을 위한 후원금이 답지하여 1888년 파리에 파스퇴르 연구소8)가 설립되었다. 

8) 파스퇴르 연구소 네트워크(RIIP: International Network of Pasteur Institutes)는 2020년 현재 25개 나라 32개 지부가 운영되고 있으며, 23,000 명이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10회

 이후 파스퇴르는 두 번의 뇌졸중을 겪으면서 건강이 매우 약해졌고 1895년 9월 28일 눈을 감았다. 장례식은 프랑스 정부의 주도로 국장으로 치러졌고, 그의 유해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가 파스퇴르 연구소 지하 묘실로 이장되었다.

 광견병 백신 치료를 최초로 받은 조셉 마이스터는 45년 동안 파스퇴르 연구소의 문지기로 근무했다고 한다. 1940년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이 파스퇴르의 지하 묘실을 열라고 강요하자 조셉은 묘지의 문을 여는 대신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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