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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억울한 학생, 억울한 부모, 억울한 사회
입력 : 2020.01.30

몇 년 전 영재학교 학부모와 사교육과 관련되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사교육을 언제부터 시키셨냐”는 필자의 질문에 맞춰보라고 하셔서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답하였더니,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3학년이면 아이는 학교에서 수학을 잘 한다는 소문이 이미 날 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냐는 필자의 재차 질문에 학부모님은 6살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우리나라 교육의 국제 경쟁력과 관련되어 언급하는 내용 가운데 TIMSS와 PISA가 있다. TIMSS는 세계 50여 개국의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수학·과학 성취도를 4년 주기로 평가하는 것이고, PISA는 세계 60여 개국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 소양을 3년 주기로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의 성취도는 TIMSS와 PISA 평가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아래 표는 2015년 TIMSS 평가 (49개국 대상)를 성취도, 흥미도, 자신감 항목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학년  

교과목  

성취도  

흥미도  

자신감  

초등학교 4학년  

수학  

3  

49  

49  

과학  

2  

48  

49  

중학교 2학년  

수학  

2  

48  

46  

과학  

4  

49  

46  

최상위권인 성취도에 비해서 흥미도와 자신감은 대상 국가들 가운데서 꼴찌였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늘의 모습이 아니고 미래의 모습인데, 흥미도 없고 자신감도 없는 아이들에게 무슨 미래를 기대하겠는가? 2015년 PISA 평가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과학 성적은 OECD 회원국 중 5위였지만 흥미도는 26위로 OECD 평균을 한참 밑돌았다. 수학 역시 우리나라가 가장 성적이 좋았지만, 흥미도는 28위에 그쳤다. 학업 시간은 비슷한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훨씬 많은데, 억지로 공부를 하다 보니 노력한 만큼 성과도 크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성취도가 낮은 학생 그룹’의 경우, 우리 학생들의 성취도는 OECD 평균은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상대적으로 덜 시키는 미국보다도 훨씬 낮았는데,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이다.

애플의 교육담당 부사장 존 카우치가 쓴 《공부의 미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기부여이다. 학생이 무언가를 간절히 배우길 원한다면 나쁜 부모에 형편없는 교사와 학교가 가세하더라도 배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필자가 우리 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교육은 학생에게서 동기부여에 가장 중요한 흥미와 자신감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필자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 내용은 유독 우리 학생들이 다른 나라 학생들과 달리 공부 시간이 많은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적은 학생들의 그것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즉, 착한 우리 아이들은 놀 때도 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놀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중간에 낙오되는 수많은 아이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하면 학부모의 한 사람, 선생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아프다. 오래 전에 학생 자살과 관련된 신문기사에서 부모님께 남긴 유서 내용이 “부모님께 죄송하며, 다음 생에서는 공부를 잘 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은 1위로 2번째인 교통사고의 2배이다.

대학이 목표인 공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어려서부터 열심히 가르친다. 아이들도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 그리고 사회가 한 마음으로 어려서부터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시간과 돈과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수학과 과학을 잘 하게 되지만, 너무 일찍부터 열심히 노력한 아이들은 지치고 싫어하게 되고, 일찌감치 내몰린 경쟁 속에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일찍 흥미와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공부와 멀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인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지, 우리 사회와 학교, 그리고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배움의 즐거움, 재미를 빼앗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노력한 아이들이 억울하고, 온갖 정성을 다 바친 부모님들이 억울하고, 사회 전체가 억울하다.

6살부터 시작한 사교육 속에서 자란 아이들 가운데 영재고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몇 %가 될까, 영재고 학생 가운데 몇 %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까, 그리고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 성공적인 학업과 연구의 꽃을 피우는 학생들은 과연 몇 %나 될까. 모든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아이들은 과연 자신이 지나온 학창시절을 만족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 사교육을 못 받고 안 받은 아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 아이, 좋은 학교에 못 들어간 아이….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들이 억울하다.

필자는 그 인고의 시간들을 성공적으로 보낸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난 20여 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모님, 학교, 그리고 학원 선생님들로부터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며, 지금 공부하는 내용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이 목표로 하는 대학에서 잘 써먹을 수 있으리란 기대 속에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모두가 아니라는 허탈감을 갖게 되고, 일류대학 입학과 함께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카이스트 신문에 실린 학부 1학년생의 글의 제목은 ‘대학에 들어와 잃어버린 꿈으로 인해 잃어가는 열정’으로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부해오면서 대학을 목표로 잡는다. 나도 대학을 일단 목표로 잡고 그 다음에는 꿈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정신없이 공부만 하고 살아왔다. (중략) 입학하기 전에는 정말 간절하게 바라고 오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는데 대학에 입학하니 아무 것도 없었다.”

그 글을 읽고 필자가 기고한 글의 제목은 ‘꿈을 잃어버린 학생에게’였고,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나중에 성공해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성공의 정의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일과 직업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 같다. (중략)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우를 범하지 말도록 하자.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카이스트에 왔다.” 즉, 일류대학 입학이 인생의 성공이 아니고, 인생의 성공을 준비하기 위해서 일류대학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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