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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너, 이름이 왜 그래? 탐험대원 '다온'의 언어탐험
입력 :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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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너구리, 노루, 개미, 장미, 독수리.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이 제출한 태풍의 이름들 중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들이다. ‘태풍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라는 생각에 조금 생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태풍의 이름을 살펴보면 그 이미지와 약간은 멀어보이는 엉뚱한 이름들이 많다. 그렇다면 태풍에는 왜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까?

전문가들은 정확한 관측을 위해 태풍에 이름을 붙였다. 동일한 기간에 두 개 이상의 태풍이 오는 경우, 이를 정확하게 구분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위해 태풍에 어떻게 이름을 붙일까를 고민하였다. 그리고 전문적인 용어로 태풍을 지칭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용어로 태풍에 이름을 붙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사람들은 태풍의 친근한 이름을 듣고, 이를 그들에게 가까운 존재로 여길 수 있었으며 태풍에 대한 여러 정보를 거리낌 없이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태풍의 매력적인 이름들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1999년까지는 미국의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태풍의 이름을 정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국제기구인 아시아태풍위원회에 가입한 14개의 국가(한국, 북한, 중국, 일본, 태국, 홍콩 등)에서 모든 태풍의 이름을 정한다.

 이는 태풍에 대한 아시아 각국 국민들의 관심을 높여 그 경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은 것이다. 태풍 이름이 정해지는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 지역 13개국과 미국으로 구성된 14개의 태풍위원회 회원국들이 10개씩 이름을 제출하고, 그렇게 모아진 140개의 이름을 28개씩 5개의 조로 묶는다. 그리고 1조의 28개 이름을 모두 소진한 후 2조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하나씩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결정된 이름들 총 140개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1번부터 다시 사용하는 식으로 태풍의 이름이 반복된다. 일반적으로 태풍이 연간 약 30여 개쯤 발생하므로 전체의 이름이 모두 사용되려면 약 4~5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다시 쓰는 것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태풍의 이름들이 선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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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일화들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처음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호주의 일기예보관들, 이들은 1953년 태풍에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태풍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붙기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예보관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태풍의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당시 그들이 생각하기에 여성의 이미지는 차분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붙인다면 태풍 또한 큰 피해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아시아태풍위원회에서 선정된 140개의 태풍 이름 중 사람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힌 태풍의 이름은 목록에서 퇴출시키기도 한다. 전과 같은 피해가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담긴 것이다.

이런 일화들을 들었을 때 몇몇 사람들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태풍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렇게까지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정해야 하는 건지 의아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름이 가지는 힘은 위대하다. 무엇인가를 지칭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언어 속에 가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태풍과 관련된 기사를 보았을 때 그 이름이 너무 전문적이라면, 일반 사람들은 태풍이 그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에도 이에 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태풍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아닌, 연구자들의 몫으로 그 역할을 넘길지도 모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사물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적다. 연구자들이 굳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을 쓰면서 태풍에 이름을 붙인 의도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주위의 다양한 사물은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한 번쯤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다온(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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