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우리 교육은 아직도 식민지 교육 100년 전 교육 설계 vs 현재, 얼마나 다를까?
topclass 로고
입력 : 2020.01.06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간혹 우리 교육은 아직도 식민지 시대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암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역사가 뒤바꿔진 10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대한제국이 일본을 식민지로 점령한 상황에서 필자가 고종 황제의 명을 받고 일본의 교육을 제국주의의 왜곡된 시각에서 기획했다면 아마도 아래와 같지 않았을까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100년 전 교육전문가들이라면...

첫째, 학교에서는 많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는 것보다 많은 지식을 주입하고 반복적으로 외우게 하는 방식을 통해 ‘낮은 단계의 생산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한다. 점령국 국민은 미래를 상상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혁신을 통해 사회를 도약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식민지 백성들은 많은 양의 업무를 성실하고 빠르게 그리고 실수 없이 수행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들을 촘촘한 규칙 속에서 엄하게 지도한다. 식민지 학생에게는 올바른 규칙에 대한 이해와 공감, 혹은 규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복종심만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절제된 규율과 책임감이 없는 방종과 나태함으로 흐르게 하는 방법도 용인될 수 있는데, 식민지 백성은 사회를 책임지는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개인만을 생각하는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경쟁과 선발 중심의 ‘솎아버리는 교육 제도’를 확립한다. 식민지 교육의 목적은 지도자 혹은 올바른 시민 양성이 아니고,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해 식민지 백성 위에 군림할 소수의 중간관리자 양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운 배움의 장소’가 아닌, 선발과정에 필요한 내용을 전달하고 경쟁시키는 ‘치열한 시험 준비의 장소’가 되도록 한다.

넷째, 책임감, 사명감, 협동심보다는 경쟁에서의 우월성, 성실함, 개인주의를 강조한다. 식민지 중간관리자들은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선발하고,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들을 단순 서열화 시켜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식민지 백성에 대한 우월의식을 심는다. 탈락한 학생들에게는 패배감을 안겨주어, 식민지 엘리트를 이용한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한다.

shutterstock_741424549.jpg
사진=셔터스톡

황당한 상상의 날개를 더욱 펼치면서 보다 구체적인 교과목 설계를 하면 다음과 같다.

 

현 시대에 맞는 교과별 커리큘럼

국어, 국어 교육의 핵심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이지만, 식민지 백성에게 창의적인 글쓰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타인과 토론하는 말하기와 듣기, 자신의 인격과 지식의 깊이를 더하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책 읽기는 중요하지 않다. 점령국 학생들은 창의적인 작가, 토론과 연설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정치가, 깊은 철학적 소양을 가진 지성인으로의 육성이 목표인 데 반해, 식민지 학생들은 주어진 명령문을 잘 이해하고 올바르게 실행하는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결론적으로 짧은 지문을 읽고 명령한 사람이 의도한 주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학습시킨다. 

체육, 운동 경기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팀워크를 배우고 스포츠맨십을 익히는 기회는 가급적 최소화한다. 특히 몸과 마음이 자라는 청소년 시기의 체육 활동을 최소화하여 식민지 백성의 몸과 마음을 심약하게 한다. 체육 경기에서는 경쟁을 강조하여 학생 스스로 운동을 즐기기보다 이기는 데 집착하도록 하며, 운동신경이 뛰어난 학생들은 운동선수로 육성하되 가급적 학업 기회를 최소화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지식과 체력을 골고루 갖춘 학생들이 양성될 수 없도록 한다.

수학, 식민지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기 위해서 수학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올바른 개념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사회 현상에 수학적 이론을 적용시키거나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보다는, 주어진 많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반복 학습과 기계식 문제풀이, 더 나아가 암기식 수학 교육이 강조될 수 있다.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보다 단편적으로 주어지는 과제를 실수없이 빠르게 실행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론 불필요하게 난이도를 높여 많은 학생들이 일찍 학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도 용인된다.

영어, 외국어로 전해지는 명령문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짧고 어려운 지문에 대한 정확한 독해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며 그를 위한 암기 교육에 중점을 둔다. 국어 교육과 같이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교육은 가급적 지양하는데 식민지 백성은 감히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원어로 된 외국의 문학 작품들을 즐기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외국인에게 직접 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도덕, 점령국 학생들에게는 참된 인성을 가진 올바른 시민 육성이 가장 중요한 교육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식민지 학생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도덕과 철학 교육이 필요한 경우, 탁상공론 혹은 구름 잡는 이론 중심의 수업을 진행시키고 청소년 시기에 필요한 바른 인생관, 가치관 확립을 위한 토론 및 논술은 가급적 지양하고, 암기식 교육과 사지선다형 시험 방법을 도입하도록 한다. 

이런 황당한 상상을 하면서 필자 스스로 아찔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실이 상상 속 내용과 다소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일제강점기 마지막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쫓겨 가는 마지막 일본 총독의 악담으로 발언의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섬뜩한 내용이 우리 교육과 무관하다고 쉽게 넘기기에는 우리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과 잘못된 교육제도로 인한 사회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한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