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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주창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 2. 12 ~ 188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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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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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신로아

1859년 11월 24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출판은 진화론(Evolution)의 탄생을 알렸고, 창조론(창조주의, Creationism)을 믿는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식적인 첫 대결은 1860년 6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개최된 ‘진보 과학을 위한 학술 토론회’에서 이루어졌다.

옥스퍼드의 주교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가 조롱하듯이 말했다.
“당신의 할아버지 선조가 원숭이요? 아니면 할머니 선조가 원숭이요? 어느 쪽이오?”
다수의 청중은 윌버포스가 결승골이라도 넣은 듯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에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헉슬리(T. H. Huxley)가 받아쳤다.
“진실을 왜곡하는 부도덕한 인간을 할아버지라고 하느니, 정직한 원숭이를 할아버지라고 하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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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베니티 페어(Vanity Fair)의 풍자만화(왼쪽 윌버포스, 오른쪽 헉슬리)
그림 출처 : Alan Moorehead ≪Darwin and the Beagle(1969)≫

찰스 다윈은 로버트와 수잔 부부의 2남 4녀 중 다섯째로 1809년 영국 슈루즈베리(Shrewsbury)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로버트의 직업은 의사였고 친할아버지 이래즈머스(Erasmus Darwin, 1731~1802)도 의사였으며, 외할아버지인 웨지우드(Josiah Wedgwood, 1730~1795)는 도자기 사업가였다. 다윈의 두 할아버지는 벤저민 프랭클린, 조지프 프리스틀리, 제임스 와트 등의 유명한 자연철학자들과 ‘정직한 휘그 클럽(The Club of Honest Whigs)'을 이끌던 친구 사이였고, 노예 제도를 반대한 진보사상가이기도 했다.

다윈이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홉 살 연상의 둘째누나 캐롤라인이 그를 돌보았다.
다윈은 케이스 목사가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9세부터 16세 여름까지 버틀러 박사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형 에라스무스를 도와 화학 실험을 했다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아이라고 전교생 앞에서 교장의 나무람을 듣기도 했다.(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의 학교를 나쁜 곳으로 회상했다.)

16세 가을에 아버지는 다윈을 에든버러 대학(University of Edinburgh) 의학부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그는 의학 수업을 지루해했고, 마취도 없이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고통을 느꼈다. 결국 다윈은 의학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19세에 케임브리지대학(University of Cambridge) 신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신학 역시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그 대신 대학 식물원을 구경하다가 박물학자 헨슬로(John Stevens Henslow, 1796~1861)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박물학1)의 매력에 이끌리게 되었다.

1) 박물학자(博物學):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박물학은 영어로 ‘the study of nature’ 또는 ‘natural history’, 박물학자는 ‘naturalist’로 일컬어짐.

다윈은 헨슬로와 식물원을 자주 산책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헨슬로의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질학자 세즈윅(Adam Sedgwick, 1785~1873) 교수로부터는 지질학(地質學, geology)을 배웠다. 세즈윅은 고생대 지층을 연구하여 데본기라는 지질시대 명칭을 제안했고, 종교적 원리에 따른 지구 격변설과 창조론을 옹호한 학자였다.(몇 년 후 다윈은 격변설을 반대하는 동일과정설을 따르게 되고, 진화론을 창시하여 세즈윅의 자연철학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지만 오래도록 스승과 제자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831년 대학을 졸업한 다윈은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피츠로이(FitzRoy)2) 함장이 이끄는 탐험선 비글호(H. M. S. Beagle)의 탐사 항해에 참가하게 되었다.

2) 피츠로이(Robert FitzRoy, 1805~1865): 비글호 2차 항해 중 대령으로 진급했고, 훗날 해군 중장이 되어 뉴질랜드 총독을 지내기도 했다. 창조론을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1859년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 자신이 진화론에 기여했다고 생각하여 괴로워하다가 1865년 60세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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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글호, H. M. S. Beagle ]
HMS(국왕 폐하의 배): H=His/Her, M=Majesty's, S=Ship
Beagle(비글): 영국 잉글랜드 토종 개(dog) 비글에서 따온 이름.
그림 출처: darwin-online.org.uk

비글호는 너비 7.7 미터, 길이 27.5 미터의 해군 함선으로 1차 탐사항해(1826~1830년) 때는 남아메리카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을 조사했다. 다윈은 비글호 2차 탐사에 박물학자 자격으로 승선했다. 다윈을 태운 비글호는 1831년 12월 27일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떠났다. 다윈의 소지품에는 찰스 라이엘(Sir Charles Lyell, 1st Baronet, FRS, 1797~1875)이 쓴 ≪지질학의 원리, Principles of Geology(1830)≫가 들어 있었다.

≪지질학의 원리≫는 지사학(地史學)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동일과정설3)을 제시하고 지질 구조와 형성 원리를 상세하게 분석하여 장차 지질학의 바이블로 등극하게 되는 책이다. 그러나 다윈의 스승인 세즈윅 교수는 라이엘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헨슬로 교수도 ‘라이엘의 책을 읽되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다윈에게 조언했다.

3)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 uniformitarianism): 지질학적 변화의 속도와 양상이 과거나 현재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지형 변화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는 설. → 상세 내용은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 동일과정설의 창시자 제임스 허턴」 편 참조.

1832년 비글호는 대서양의 여러 섬들과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거쳐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도착했고, 다윈은 이곳에서 그해 출판된 ≪지질학 원리 Ⅱ≫를  받아 보았다. 다윈은 스승의 조언대로 처음에는 라이엘의 이론을 의심하면서 읽었다. 그렇지만 파타고니아 평원에서 수 백 마일에 걸쳐 융기한 거대한 자갈층 절벽을 목격하고, 멸종한 거대 동물 메가테리움(Megatherium) 화석을 발견하는 등의 성과를 올리면서 다윈은 라이엘의 이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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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땅늘보 메가테리움(몸길이 6~8m, 무게 3톤 추정)의 골격과 뼈 화석 ]
그림 출처: Alan Moorehead ≪Darwin and The Beagle(1969)≫

3년 이상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을 조사한 비글호는 1835년 9월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Islas Galapagos, 스페인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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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바다 이구아나, 육지 이구아나, 코끼리거북, 핀치 새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같은 종류라도 섬에 따라서 그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다.(갈라파고스에서 동물의 생태는 진화론의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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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wikipedia

갈라파고스 제도를 조사한 비글호는 타히티 섬과 뉴질랜드를 거쳐 1836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태즈메이니아를 들렀으며, 그해 4월 인도양의 킬링 군도에 도착했다. 킬링 군도(Keeling islands 또는 Cocos islands)는 산호초가 둥근 고리 모양을 이룬 환초(環礁, atoll) 섬이다.

이전까지 환초는 해저 화산의 분화구와 같은 형태의 지형에서 산호가 자라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다윈은 그 형성 원인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화산의 분화구 지형이라고 보기에는 섬의 분포 반경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몇 년 후 다윈은 산호섬의 형성 원인에 관한 올바른 이론을 최초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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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링 군도 위성 사진(Cocos keeling islands 2009) ]
그림 출처: NASA, earth observatory

킬링 섬을 떠나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을 때 다윈은 남반구의 천체들을 관측하고 있던 천문학자 존 허셜4) 경을 만났고, 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 도착해서는 나폴레옹 무덤 근처에서 지형을 관찰했다. 비글호는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대서양을 횡단5)하여 브라질 바이아 항구로 갔다가 1836년 10월 2일 영국으로 귀환했다.

4) 존 허셜(Sir John Herschel, 1st Baronet, 1792~1871):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의 아들로 영국 왕립천문학회 회장을 3회 역임했으며, 북반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천체들을 관측하고 토성의 위성 7개(미마스, 엔케라두스, 테티스, 디오네, 레아, 타이탄, 이아페투스), 천왕성의 위성 4개(아리엘, 운부리에루, 티타니아, 오베론)의 이름을 명명했다.
5) 바람을 이용하는 함선들은 무역풍과 편서풍을 이용한 항로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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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에 걸친 비글호 세계 탐험에서 돌아온 다윈은 1939년 ≪측량 항해 보고서, Narrative of the Surveying Voyages, vol Ⅲ≫를 집필하고, 이후 1843년까지 네 명의 동물학자와 함께 5권으로 된 ≪비글호 동물학 보고서, The Zoology of H. M. S. Beagle Voyage(1838~1843)≫를 출간했다.

≪동물학 보고서 Ⅲ권≫에는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다윈 핀치(Darwin's finches)가 소개되었다. Ⅲ권을 책임 집필한 조류학자 존 굴드(John Gould, 1804~1881)는 새들을 실물 크기로 아름답게 그려서 넣고 그 특성을 자세히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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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류학자 존 굴드(John Gould)가 그린 다윈의 핀치 ]
출처 : ≪The zoology of the voyage of H.M.S. Beagle≫ by Charles Darwin, Richard Owen, John Gould, G. R. Waterhouse, Thomas Bell. London, Smith, Elder & Co. 1838.

1838년 29세의 다윈은 지질학회 서기로 취임했고, ≪지질학 원리≫의 저자인 찰스 라이엘과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해 12월에는 외사촌 엠마 웨지우드(Emma Wedgwood, 1808~1896)에게 청혼하였고, 이듬해 1월 양가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해에 ≪비글호 항해기, Journal of Researches During the Voyage of H. M. S. Beagle≫6) 초판(1839)을 출간했다.

6) 원제: ≪Journal of Researches into the Geology and Natural History of the various Countries Visited by H. M S Beagle under the command of Captain FitzRoy, R. N. from 1832 to 1836≫
비글호 항해기 2판은 1846년, 3판은 1860년에 출간.

1842년 다윈은 아내와 어린 두 자녀(윌리엄, 앤)를 데리고 소음과 매연이 심한 런던을 벗어나 동남쪽에 위치한 켄트 주(County of Kent) 다운(Down)으로 이사했다. 다윈이 현기증과 멀미, 심장쇠약 증상으로 시달렸기 때문에 한적한 교외를 택한 것이었다. 다윈의 건강 이상은 비글호 탐사 여행 중 흡혈 빈대에 물려 샤가스병7)에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7) 샤가스병(Chagas's disease, American trypanosomiasis):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중남미의 열대풍토병으로 크루스 파동편모충(Trypanosoma cruzi)의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원충을 매개하는 곤충은 흡혈 침노린재류(Triatoma bug)이다. 침노린재는 입술이나 눈 주위를 주로 흡혈하므로 ‘키스 벌레(kissing bug)’라고도 한다. 샤가스병이 만성 질환이 되면 심장 비대(부정맥, 심부전, 실신, 뇌혈전증 등 유발), 거대 식도(흡인성 폐렴 유발), 거대 대장(변비, 복통 유발)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정보 출처: 질병관리본부 K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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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스 파동편모충(왼쪽)과 흡혈 빈대 침노린재(키스 벌레, 벤츄카)
그림 출처: wikipedia, businessinsider.com  

1842년, 1844년, 1846년에 다윈은 섬의 지질학에 관한 세 권의 연작 저서 ≪비글호 항해의 지질학 1· 2· 3권, the Geology of the voyage of the Beagle≫을 출간했다. 1권은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 The Structure and Distribution of Coral Reefs(1842)≫, 2권은 ≪화산섬의 지질학적 관찰, Geological observations on the volcanic islands(1844)≫, 3권은 ≪남아메리카 지질 관찰, Geological Observations on South America≫이다.

세 권의 저서 중에서 1권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는 산호섬의 여러 형태와 형성 원인을 밝힌 중요한 저서로 손꼽힌다. 이전까지는 산호가 어떻게 둥근 고리 형태의 환초를 형성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다윈은 섬이 침강함으로써 그와 같은 형태가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냈다.

아래의 그림과 설명은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호 보초(堡礁, barrier reef)가 어떻게 둥근 고리 형태의 환초(環礁, atoll)로 변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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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아주 먼 옛날의 해수면 높이는 A-A였다. 섬이 서서히 침강함에 따라서 해수면이 A'-A'로 상승한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동안 산호 보초도 둑을 만들며 성장한다. C는 바닷물 호수(수로로 연결된)이다.

(아래 그림) 해수면의 높이가 A"-A" 수준으로 높아지면 섬은 완전히 침강한 상태가 되고 환초의 모습을 띠게 된다. A"는 둑, C'는 바닷물 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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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 Charles Robert Darwin ≪The structure and distribution of coral reefs. Being the first part of the Geology of the voyage of the Beagle, under the command of Capt. Fitzroy, R.N. during the years 1832 to 1836≫, London: Smith, Elder, 1842. 수록 그림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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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아로 환초(Taiaro Atoll): 유네스코 자연보호 유산 ]
그림 출처: imgur.com

다윈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론≫을 읽고 지구가 엄청난 세월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1837년 무렵부터 창조론과 대립하게 되는 진화론 비밀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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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변이에 대한 다윈의 1837년 첫 번째 노트 중, ‘진화의 트리’ 스케치 ]

그의 진화론이 담긴 진정한 역작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8) 초고는 1844년 무렵에 완성한 것으로 나중에 알려졌다. 그러나 다윈은 신학에 반대되는 새로운 과학 이론을 내고 박해를 받았던 과거의 과학자들을 떠올리며 출간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8) 원제는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1846년에는 ≪비글호 항해의 지질학, 3권≫을 출간했고, 1851~1854년에는 ≪만각류9) 아강에 대한 논문, A Monograph on the Sub-Class Cirripedia≫ 두 권을 비롯하여 고생물 화석에 대한 논문을 썼다.

9) 만각류(蔓脚類, Cirripedia): 따개비, 거북손 종류의 갑각류를 일컬음.

다윈은 1858년 6월 박물학자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월리스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측량사 일을 하였고, 4년(1848~1852) 동안 아마존 강 유역을 측량하면서 곤충 표본과 동물을 채집했다. 그는 표본 판매를 위해 1만 점이 넘는 표본을 배에 싣고 영국으로 돌아오다가 화재가 발생하여 전부 소실한 후, 열흘 동안이나 표류하다가 구출되는 고난을 겪었다.

월리스는 1854부터 1862년 사이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머물면서 8만 종의 딱정벌레를 포함한 12만 5천 종의 표본을 수집하였고,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해협을 경계로 동물학적인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해협 사이의 경계선을 ‘월리스 라인(Wallace's Line)’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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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리스 라인(Wallace's Line) ] 그림 출처: Maps online, ANU College of Asia & the Pacific

1858년 2월 인도네시아 북-말루쿠섬(North Maluku Islands)에 있던 월리스는 ≪변종이 원종에서 무한히 멀어져 가는 경향에 대해서, 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라는 제목의 요약 논문을 작성하여 다윈에게 편지로 부쳤다. 편지는 배편으로 4개월이 지나서 다윈에게 도착했다. 

월리스의 편지를 읽은 다윈은 당황하여 찰스 라이엘에게 편지를 보냈다. 월리스의 논문이 진화론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라이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화론의 우선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울적한 심정을 토로했다.

찰스 라이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윈과 월리스의 논문9)을 린네학회(Linnean Society)에서 동시에 발표(1858. 7. 1.)하고, 회보에 동시 게재하는 방책을 써서 다윈을 구했다. 당시 지구 반대편에 있던 월리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10)

9) 다윈 논문 제목: ≪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 and 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
월리스 논문 제목: ≪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

10) 월리스의 편지를 다윈이 표절했다는 최근의 주장도 있다. Roy Davies ≪The Darwin Conspiracy: Origins of a Scientific Crime(2008), 다윈 음모: 과학 범죄의 기원≫

다윈은 학회 발표 후 1년 반 후인 1859년 12월 24일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1) 초판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동식물의 인위적 품종 개량이 가능한 것처럼 자연에서도 변이가 생길 수 있으며, 변이가 일어난 종이 원래의 종보다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경우 변종이 자연 선택되어 생물의 분화가 이루어진다는 진화론을 전개했다. 

11) 원제: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다윈의 진화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변이(變異, variation):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 중에는 변이가 존재한다.
2. 유전(heredity): 자식은 부모를 닮으며 어떤 변이는 대대로 유전된다.
3. 경쟁(competition): 생물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생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4.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 주어진 환경에 적합한 형질 변이를 가진 종류가 더 많이 살아남고 번성하게 된다.

≪종의 기원≫ 초판은 발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진화론은 지동설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사회의 반발은 별로 크지 않았다. 이는 ≪종의 기원≫에 수록된 자료가 방대했으며, 탁월한 구성과 치밀한 논리로 집필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실로 판단할 때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먼 미래에까지 자손을 남기는 현생종은 하나도 없다고 추론해도 좋을 것이다. …….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놀라운 형태가 끝없이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 (≪종의 기원≫ 결론 중에서)

≪종의 기원≫은 개정을 거듭하여 1872년 6판까지 출판되었다.

다윈은 박물학자로서 연구와 저작 활동에 전념한 사람이다.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젊은 날 서기를 맡은 적도 있지만 교수와 같은 공식적인 직업을 갖지 않았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 있기도 했지만 피로와 현기증, 구토와 심장 발작 등 지병에 시달리며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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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엠마 다윈(32세)
George Richmond(1809~1896) 작
그림 출처: wikipedia

다윈은 엠마 웨지우드(Emma Wedgwood, 1808~1896)와 결혼하여 6남 4녀를 낳았다.(맏딸은 10세에, 둘째 딸과 여섯 째 아들은 2세 이전에 죽었다.) 그는 67세부터 쓰기 시작한 자서전에서 아내에 대해 한없는 고마움을 표현했다.

‘하나하나의 도덕적 자질, 그 어느 것을 따져 보아도 나보다 무한히 뛰어난 이 사람이, 나의 아내가 되는 것에 동의해 준 것은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이 사람은 나의 생애를 통해 나의 현명한 조언자이고, 쾌활한 위안이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나의 생애는 병든 몸 때문에 매우 오랫동안 비참했을 것이다.’
-《종의 기원》 송철용 역/동서문화사. 641쪽 인용-


다윈은 ≪덩굴 식물의 운동과 습성, The Movement and Habits of Climbing Plants(1864)≫, ≪가축과 재배식물의 변이, The Variation of Animals and Plants under Domestication(1868)≫,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1871)≫, ≪사람과 동물의 감정 표현, 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1872)≫, ≪식충식물, Insectivorous Plants(1875)≫, ≪식물의 운동력, The Power of Movement in Plants(1880)≫,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부식토의 형성, 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1881)≫ 등의 저서를 남긴 후, 1882년 4월 19일 7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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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희   ( 2020-02-20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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