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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정부장의 독서일기
누군가의 인생 책을 알게 되면 조용히 찾아 읽고 상대의 마음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금융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편집자다. 책 읽는 게 일이자 즐거움인데 책 못지않게 사람도 좋아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읽어두면 좋을 책을 소개한다.
마흔의 나에게 주는 말 나이 듦에 관한 서양과 동양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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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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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

삼십 대까지는 성장의 시간이다. 월급은 얼마큼이라도 많아지고 직급은 올라가며,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면 희망이 자라난다. 연인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이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설혹 헤어지더라도 내가 주인공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마흔부터는 잘해야 현상 유지이자, 자칫하면 하락이나 추락을 모면하지 못한다. 밥벌이에, 육아에, 나와 부모의 건강 이상 징후에 나만의 이벤트가 자라날 틈이 없다. 마흔 이후에 시간은 거대한 덩어리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이 하염없는 세월에 매듭을 짓는 ‘리추얼’이다. 서른아홉에 마흔을, 마흔아홉에 쉰을 맞이한다면 그야말로 특별하기 짝이 없는 리추얼이다. 수선을 떨어도 마땅하지 아니한가.


불혹과 중년의 위기 사이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이라 해서, 우리를 두 번 슬프게 하지만, 공자가 살던 당시는 평균 수명이 서른 미만이었으니 그때 불혹은 산신령 급 내공을 갖췄을 게 분명하다.

‘중년의 위기’는 1957년 런던에서 만들어졌다. 마흔 무렵에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우울한 시기를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를 캐나다인 엘리엇 잭스가 발표했다. 근대에 들어와 아동기와 사춘기가 발견된 것처럼, 중년은 현대에 들어와 새로 발견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리는 혼란에 빠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도 괜찮은 구실을 찾았으며, 삶의 방식을 튜닝할 계기가 생겼다. 마흔이 되는 리추얼에.

 

프랑스에서 개성을 배운다 

판타지와 SF 소설의 거장 어슐러 르 귄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정체성은 내 외모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나의 외모는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이런 말까지 할지는 몰랐다. “나는 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내 사이즈가 얼마인지,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알고 싶다”

프랑스 사람들은 성격만큼이나 몸과 스타일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베스트셀러 <프랑스 육아처럼>의 저자 파멜라 드러커맨은 신작 <맙소사 마흔>에서 ‘나이 듦’을 주제로 프랑스 식 삶을 살펴본다. “프랑스에서는 외모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을 폄하하지도 않고 하찮은 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파멜라는 옷 쇼핑은 하찮은 일이라고 교육 받고 자란 미국 기자다. 

“그들은 ‘내 나이 안에서 잘 지내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그들도 배가 25세처럼 날씬해진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전의 자기 외모를 그리워하며 항상 서글퍼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기 몸 안에서 충실히 살고 현재의 자기 몸과 나이를 즐긴다.”

몸의 개성은 내면의 개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겉치레에서 벗어났다. 그런 변화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그들이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마이크가 온다면 물러서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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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시크’로 불리는 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 영화 <3HEARTS> 중 

<맙소사 마흔>의 원제는 <어른은 없다(There are no grown-ups)>이다. 파멜라는 어느 날 마담(부인)이란 호칭을 들으면서, 자신의 나이 듦을 체감했고 신체 나이도 그렇지만 자신이 과연 어른이라 불릴 만한지 불안했다.

역시 ‘불혹’이 문제다. 흔들리지 않고 어른스럽다는 말일 텐데, 나뿐 아니라 주위 마흔을 둘러봐도 만날 흔들리고 모르겠다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자신의 반짝임을 발견해주고 전문성을 인정해줘도 스스로는 능력을 부정하고 뒤로 숨기도 한다. <어른은 없다>는 그런 고민에서 출발해 리서치와 성찰을 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완벽한 이상적인 어른이 어디에 있을까. 새로우면서 안전한 경험은 없다.

‘그런’ 어른이 없다는 것일 테다. 이런 어른이라면 환영이다. “나이 든 사람이라고 다 현명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나이 든 사람이 당신보다는 많이 알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어떤 사람의 단점을 인식하면서도 그 사람을 좋아해준다.”   
 

실패는 성숙함으로 이어진다 

삼십 대를 열심히 보냈다면 마흔에는 너그러워질 수 있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과정에서 실패는 필수적인 부산물일 텐데,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신경 쓰지 않는 연습>는 고민을 덜어내는 방법을 불교를 토대로 설명해달라는 편집자의 요청을 받고 한 스님이 쓴 책이다. 

“실패를 하면 할수록 비슷한 실패를 한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래. 그거였구나. 나도 그런 실패를 해보았어.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에선 나 때는 말이야, 이런 역경 속에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했다는 ‘나한테만 미담’이 넘쳐난다만, 실패를 해본 사람이 너그러워진다면 그것이 성숙이다.

 

고립이 아닌 평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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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을 하지 않는 만큼 착한 사람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착한 사람’이 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선악을 멋대로 나누고, 남의 다른 행동은 잘못된 행위로 간주하면서 진실한 대화나 변화를 하지 않는 사람만큼 답답한 노릇도 없다. 자기 마음만 협소해질 뿐이다. 

<신경 쓰지 않는 연습>에서는 좋고 싫고의 기호를 줄이라고 말한다. 이십 대 때는 왜 그렇게 좋고 싫은 게 분명했는지 모르겠다. 먹고 입는 것부터 사람의 일까지. 뇌 과학에서는 ‘나’를 규정짓는 ‘자아’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놀랍게도 <신경 쓰지 않는 연습>도 같은 말을 한다. “당신도 나도 고유의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무아(無我)이다.”

“연인이나 친구 등 깊은 인연이 필요한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랑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친구 따위는 필요 없어’ 하고 관계를 포기하는 방법으로 평온한 마음을 되찾으려 하곤 한다. 그러나 고립되어 살려면 도움을 원하지도, 받지도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 고독은 상관없지만, 고립은 반드시 피해야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당분간 나이에 대해서 또 생각하는 계기가 생길까? 여름만 해도 다섯인지 여섯인지 내 나이도 잊고 있었다. ‘세상에 교양이 넘치는 덕분인지’ 내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인지 이제는 아무도 나이는 물어봐주지 않는다. 쉰을 앞둔 리추얼을 맞이하면, 이 제목의 꼭지를 다시 읽어볼지 모른다. “아무 일 없었던 날이야말로 최고의 날”.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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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마흔>, 파멜라 드러커맨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나토리 호겐 

 

정소연 세종서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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