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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입학처장 출신인 나는 왜 이 글을 쓰게 됐나-下 어려운 시절 교육으로 일어선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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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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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시 교육청에서 KAIST 입학설명회

KAIST 입학처장을 맡을 당시 가까운 지인들에게 ‘KAIST에도 입학처가 있느냐’, ‘KAIST 입학처장은 할 일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곤 하였다. 전국의 우수한 고등학생들이 입학을 희망하면서 줄을 서는데, 입학처장이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덕담의 말이었지만, 그런 덕담들은 오히려 필자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KAIST 입학처장은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지원한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정원에 따라 합격선을 긋는 일이 업무의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입학 업무에 조금씩 적응되면서 KAIST 입학처장의 책무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나름 두 가지 임무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첫 번째 임무는 KAIST의 입시정책을 통해서 KAIST 입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과학고와 영재고 교육에 좋은 영향을 주자는 것이었다. 최소한 필자로 인해 과학고와 영재고 교육에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행여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임무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KAIST의 위상에 맞는 국제적 기여를 하자는 것이었다. KAIST는 이미 세계 대학순위와 연구업적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고, 지난 40년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건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과연 인류 발전과 국제사회에 어떠한 기여를 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을 하기는 힘들다. 노벨상 수준의 연구 업적을 통해서 인류 발전에 기여한 것도 아니고, 세계적인 기술로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즉 KAIST는 좋은 대학이고 뛰어난 대학이지만, 아직 위대한 대학은 아니었다.

 

아프리카 유학생 '리키'와의 만남

KAIST 입학처가 국제사회에 할 수 있는 기여를 고민하다 생각난 것이 필자의 과거 기억이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1960~70년대, 비록 나라는 못 살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각 지역에는 명문 고등학교들이 있었고 열심히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간혹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 미국 유학을 떠났던 극소수 학생들도 있었던 것 같다. KAIST가 저개발국가의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필자가 입학처장으로서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했다. 학교 입장에서도 외국인 학생 비율을 높이는 일은 세계대학 순위 경쟁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었다. (참고로 경쟁관계인 홍콩과학기술대, 싱가포르 국립대, 중국 칭화대 등과 비교해 KAIST는 낮은 외국인 학생 비율로 손해를 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학생을 찾았고, 그렇게 만난 학생이 ‘리키’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르완다’라는 답을 들었을 때, 종족 간의 내전으로 수백 만명의 대학살이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리키를 바라보는 필자의 심정이 한국전쟁을 기억하며 1960년대 한국 유학생을 바라보던 미국대학 교수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KAIST에 잘 적응하고 있는 리키를 바라보면서 필자는 언젠가는 르완다에 가서 더 많은 르완다 학생들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였고, 우리는 그것을 ‘리키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KAIST-풀브라이트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1946년에 설립된 풀브라이트재단은 세계 각국의 교수, 교사, 학생 및 기타 관계 인사들을 미국에 유학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한 전 세계 지식인들은 120개국 10만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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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 군 집에 초대 받아 가족들과 함께 

아프리카 투어 입시설명회

말이 씨가 되었다. 필자는 6개월 후에 입학사정관들과 함께 르완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로 입시설명회를 가게 되었다. 그 나라의 최고 명문 고등학교들에 가서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KAIST 입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한류와 삼성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그곳의 학생들은 우리나라를 최고의 선진국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6·25 전쟁과 필자가 중고등학생 시절이었던 1970년대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런 과거를 가진 한국이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는지, 그 비결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 했다. KAIST가 설립된 1971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98불이었다는 내용에 케냐의 과학고 선생님은 당시 케냐의 국민소득이 더 높았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였다. 각 나라의 최고 대학에 가서는 대학생들과 교수들에게 KAIST 대학원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학생들보다는 교수들의 관심이 더욱 높았고, 대학 당국에서도 교수들이 KAIST에 가서 박사학위를 따고 올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를 적극적으로 희망하였다. 

KAIST 설명회에서 필자는 우리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과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KAIST의 기여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설명회는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신들의 나라에 큰 기여를 하라는 말로 마무리하곤 하였다. 그 이후 해당 국가의 많은 학생들과 대학교수들이 KAIST에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나라는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6.25 참전국인 까닭에 정서적으로 유대감이 있고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에티오피아의 유명대학에 교수로 나가 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에티오피아 최고의 대학인 아디스아바바 공과대학의 경우 해당 학교의 1학년 입학생 가운데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매년 3~4명씩 KAIST로 유학을 보내고 있으며, 많은 교수들과 관계 인사들이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렇게 저개발국가들을 방문해서는 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과거 어려웠던 시절 교육으로 일어선 우리나라’를 자랑하는 필자가 국내에서는 ‘우리나라는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외치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 교육이 과거 어려웠던 시절의 성공 속에 매몰되어 지난 수십 년간 급속하게 변화되어 온 우리 사회와 대학의 발전에 못 미쳐 생긴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 교육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교육학자 테드 딘터스미스(Ted Dintersmith)가 그의 책 《What school could be》에서 한 말이 더욱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다. 이즈음 필자의 강의는 “교육제도에 변화가 없으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로 끝맺곤 한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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