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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
즐겁지 않은 날보다 즐거운 날이 더 많은 긍정형 인간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해 비로소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 30대의 에디터. 퇴근 후에는 요가와 글쓰기를 하며 사색하지만 실은 누워서 빈둥거리다 알람도 못 맞추고 잠드는 날이 더 많다.
크리스마스 증후군을 아시나요? 나의 크리스마스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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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11
그림=김밀리

어린 시절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이번에는 기필코 산타 할아버지를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곤 했다. 나와 동생은 아빠의 카메라를 이불속에 숨겨 놓고 산타 할아버지와 같이 사진을 찍기로 다짐했지만, 잠을 안 자면 산타 할아버지가 오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매번 자는 척하다 진짜 잠이 들곤 했다. 결국 크리스마스 계획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한 번도 포착하지 못했지만 12월 25일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던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눈을 뜨자마자 자동으로 손을 머리 위로 뻗어 선물을 확인하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 홀로 집에>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볼 때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그때의 기분과 가장 비슷하다고나 할까?

어른이 되어서도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기다려지는 날이지만 막상 크리스마스가 되면 평소보다 살짝 기분이 가라앉는다. ‘크리스마스에 뭐하지’ 잔뜩 설렌 마음으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만 정작 맞닥뜨린 현실은 평소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바뀌어 있는 메뉴판,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더 참을 수 없는 건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질 것만 같은 특별한 날의 실상이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마법은 믿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로망은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12월 25일은 평소보다 더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걸 먹어도 그만큼 더 즐겁지 않다. 더 이상 기대할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도 없고.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가면 크리스마스에 신나는 일이 생길 줄 알았다. 대학생 때는 집에서 피자를 먹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진짜 어른이 되면 마법 같은 하루가 펼쳐질 거라 믿었다. 뭔가 더 ‘멋진’ 세계가 더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된 이후 줄곧 ‘크리스마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작년 겨울,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캐럴이 듣고 싶어졌다. 11월의 초입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도 아닌데 캐럴이 듣고 싶은 의식의 흐름에 살짝 당황했지만 유튜브를 뒤적거려 ‘뉴욕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재즈 테마’를 재생했다. 순간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지만) 황홀한 기분에 휩싸였다. 캐럴이 선사하는 신비로운 공기가 좋아 그 해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거의 두 달 내내 캐럴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막상 크리스마스가 되자 예년의 우울했던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실컷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서일까. 오히려 무덤덤했다. 크리스마스에 품었던 로망, 환상, 판타지가 캐럴과 함께 '팡' 하고 사라져 버린 것처럼. 그동안 내가 품었던 크리스마스 판타지는 말 그래도 판타지, 절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허상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 그토록 기다리던 산타 할아버지가 어른이 된 나에게 준 선물이었을까.

서른의 크리스마스는 스물아홉의 그것보다 더 평안하고 더 행복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법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허황된 기대를 품다 실망하는 대신 미리미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즐긴다. 나만의 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캐럴을 듣고 서점에 가 마음에 드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산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슈톨렌을 살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현실을 즐기는 대신 언젠가 드라마가 펼쳐질 거라 믿어온 나만의 종교는 이제 없다. 인생은 판타지가 아니고 꿈꾸던 드라마도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크게 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고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서른 번이 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 인생의 팁이다.

 

 

김희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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