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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입학처장 출신인 나는 왜 이 글을 쓰게 됐나-上 교육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입력 : 2019.12.10
우리 교육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What school could be, Ted Dintersmith
사진=조선DB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의 학습량은 세계적으로 손꼽히고, 학업성취도는 항상 세계 1, 2 등을 차지한다. 지난 세월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이 이러한 높은 교육열에 기인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우리나라의 교육과 입시제도 그리고 학교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학창시절에 전혀 행복하지 않고, 제대로 교육받고 있지도 못하며, 학업에 대한 흥미지수와 만족도는 항상 세계 최하위 수준을 나타낸다. 정상적인 공교육과 가정교육의 상실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높아가고 가정경제는 엄청난 사교육비에 짓눌러있다.  

 

'사교육 없는 세상'을 꿈꾸며

심지어 혹자는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에 대한 가장 큰 원인으로 비효율적인 교육 제도에 따른 아이들의 행복하지 못한 학창시절과 과도한 자녀 사교육비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는 교육당국에 그 탓을 돌리고, 교육당국은 대학입시 탓으로 다시 공을 넘기곤 하는데, 대학입시만을 목표로 전력 질주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과 우리 사회는 정작 어떤 학생들을 원하고 있고,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랄까?  

필자가 4년간의 KAIST 입학처장 업무를 마치고 다시 일상의 교수로 돌아가 연구와 강의를 준비하고 있던 2017년 초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게 되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필자가 입학처장을 시작하면서 연을 맺게 되었는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교육 환경 속에서 영재학교, 과학고, 그리고 유명 자사고 학생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KAIST가 어떻게 하면 대학입시 정책의 변화를 통해서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까 자문을 얻고자 찾아간 것이 첫 인연이었다.  

강연 주제는 ‘4차산업혁명과 우리 교육’이었으나, 해당 주제에 부정적이라는 필자의 답변에 우리 교육에 대해서 하고 싶은 내용을 마음껏 하시라는 회신을 받고 강연 주제로 잡은 것이 ‘교육이 없는 나라’이다. 그 강연을 시작으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 교육 등에 초청을 받으면서 강연 내용이 다듬어지고, 우리 교육의 현실과 대안 제시에 대한 내용들이 보태어지면서 ‘교육이 없는 나라’가 글로 쓰이게 되었다.


유학과 안식년, 미국에서 느낀 것들

1970년대 필자의 중고등학생 시절 어른들은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작고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여서 인적자원이 중요하다시며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열심히 수학정석을 풀었고 종합영어를 외웠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미국 고등학교 수학책의 낮은 수준을 보면서 정말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 미국을 쫓아갈 수 있으리란 작은 자만심을 갖기도 하였다.

수학정석에서 배운 내용들이 대학에 가면 많은 도움이 되리란 생각과 함께 종합영어를 열심히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가졌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보니 수학정석은 고등학생 과외를 하는 데 외에는 쓸데가 없었고, 대학 졸업 후 유학 간 미국에서 한 마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필자 자신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종합영어를 열심히 하였는지 스스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서 미국 대학들의 높은 학문 수준과 엄청난 학구열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대학생들은 새벽까지 공부와 연구에 파묻혀 있고, 밤 12시에 커피잔을 들고 연구실에 들어가는 교수들의 뒷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 교육제도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필자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쏟았었던 그 많은 노력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국 후 교수가 되고 보니 그 사이 우리나라 대학은 많은 발전이 있었고, 강의와 연구가 매우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공부와 연구에 몰두하고, 밤 12시에 커피잔을 들고 학생들과 연구미팅을 하는 사람은 이제 필자가 되었다. 자연스런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직도 수학정석을 풀고, 영어 참고서를 외우는 중고등학교 교육은 큰 변화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 오히려 영재고, 과학고, 자사고, 일반고 등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불필요한 사교육으로 인해 더욱 지친 상태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잘 하는 학생'보다 '잘 할 학생'을

몇 년 후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나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필자의 아이들은 잠옷 차림으로 학교에 가야하는 날도 있었고, 교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한 밤 친구들과 학교에서 자고 오는 날도 있었다. 일부러 짝 안 맞는 양말을 신고 가야 하는 날도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학교는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곳이었다. 공립학교여서 학비 부담은 전혀 없었지만, 귀국하는 날에 너무 고마운 마음에 교장 선생님께 작은 성의를 드렸더니, 학교 뒤편에 만드는 작은 꽃밭에 사용하겠다고 하셨다. 아이들 이름이 새겨진 명패와 함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많은 책을 읽게 하고, 운동시간은 정말 많은 것 같았다. 동네에는 넓은 공터가 잔디밭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는데, 일주일 내내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는 학생들로 항상 가득 찼다. 밤늦게까지 운동하는 미국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밤을 새면서 연구하는 미국 대학생들과 자연스레 오버랩 되곤 하였다. 당시 방문했던 MIT 대학 연구실을 필자의 KAIST 연구실과 비교했을 때는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들었지만, 밤늦게까지 운동하는 미국 청소년들과 학원에서 지쳐있는 우리 청소년들을 비교할 때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KAIST 입학처장이 되어, 소위 우리나라 최고의 학생들을 선발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불만을 갖고 남 탓을 해 왔던 우리나라 대학입시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좋은 입시에 대해 다양한 정책들을 고민하면서, 기본 방향은 ‘잘 하는 학생보다 잘 할 학생을 선발하자’는 것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교육도 대학입시 준비에서 벗어나 대학과 사회에 나가 ‘잘 할 인재로 키우는 교육’으로 변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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