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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
즐겁지 않은 날보다 즐거운 날이 더 많은 긍정형 인간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해 비로소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 30대의 에디터. 퇴근 후에는 요가와 글쓰기를 하며 사색하지만 실은 누워서 빈둥거리다 알람도 못 맞추고 잠드는 날이 더 많다.
할 줄 아는 게 더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다 자전거를 못 타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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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1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를 질질 끌고 5분 만에 반납해야 하는 삶이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조금 슬픈 건 확실하다.
그림=김밀리

여행을 떠날 땐 늘 몇 가지 로망을 안고 간다. 9월 초 뉴욕으로 출장을 갈 때도 그랬다. 두 번째 방문하는 뉴욕이지만 두 번째이기에 지난번 못다 한 것들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번에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아침 일찍 일어나 러닝 하기. 미술관에서 요가하기(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 킬힐에 근사한 옷을 차려 입고 쇼핑하기, 센트럴 파크에서 자전거를 타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보기도 목록에 있었다.

아침 러닝을 위해 레깅스와 러닝화까지 호기롭게 챙겨갔지만 일찍 일어나지 못해 대 실패. 미술관 요가는 빡빡한 일정상 알아보지도 못하고 패스. 킬힐은커녕 굽 낮은 편한 신발만 신고 다녔는데도 많이 걸은 날엔 새끼발가락이 아팠다. 고대하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아침 일찍부터 종일 돌아다닌 탓에 꾸벅꾸벅 졸았다. 아니 <겨울왕국>을 보면서 졸다니!

그래도 괜찮다. 센트럴 파크에서 자전거 타기가 남았으니까. 평소 자전거를 전혀 타진 않지만 다행히도 배운 적은 있다. 몇 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8개월 동안 쉬면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한 달짜리 자전거 강습 프로그램을 들은 것이다. ‘한 달 만에 될까?’ 싶었던 자전거 타기는 첫 번째 수업 날 페달에 발을 올리고 아주 살짝 경사진 인도를 내려갔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기를 반복한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날엔 단체로 한강 라이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씽씽 달리는 그 기분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것이었으며 드디어 센트럴 파크에서 두 번째 기분을 만끽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안장 위에만 앉으면 다시 그때처럼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전거 렌털숍에서 ‘보조바퀴가 달린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도 되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할 것만 같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영어를 잘 못해서 한국을 떠나면 소심해진다).

센트럴 파크 입구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간 순간 이 자전거를 오늘 내 길들일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몰려왔다. 빌린 자전거는 나 같은 초보에게 무척이나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페달 위에 두 발을 얹고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했지만 우당탕 넘어질 것만 같아 몇 번이고 바닥에 까치발로 멈추기를 반복했다. 결국 5분 만에 로망을 깨끗이 포기하고 자전거를 반납하기로 했다. 렌털숍 직원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 충분히 즐긴 것 맞니?"

자전거를 반납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할 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수영, 자전거 타기, 운전, 영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멋진 자동차를 한 대 빌려 로드 트립을 하다가 햇살 좋은 곳에 차를 세워두고 물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상상. 지금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이 상태로는 평생 로망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어갈수록 할 줄 아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종이접기, 바이올린, 한자, 피아노, 미술…. 나는 천성이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좋아하던 피아노를 그만두고 대신 영어나 수학 과외를 하기 시작했고 수능을 칠 때까지 조금씩 다른 과목을 배우며 점수를 끌어올렸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토플이나 토익 같은 걸 준비하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 시험을 잘 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내 안에서 왜곡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이것을 왜 배우려 하는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잊은 채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진정 그것을 잘하게 되기도 전에 배우기를 멈추고 말았다.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폴댄스, 걸스힙합 같은 것들도 ‘할 줄 안다’는 감각에 도취되자마자 그만둬 버렸다. 그러다 보니 배운 것들은 많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중 능숙하게 하는 것은 별로 없다.

무언가를 진정할 줄 안다는 건 스펙도, 고연봉을 위해서도 아닌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도구를 하나 더 손에 쥐는 것. 할 줄 아는 게 하나씩 많아지는 만큼 내 인생을 더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즐길 거리가 하나 둘 늘어날 것이다. 그 나라 언어를 알면 진정 그 문화에 푹 빠져들 수 있는 것처럼 어디에서 무얼 하든 경험하는 깊이가 다를 것이다.

비록 자전거는 못 탔지만 호텔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공사 중인 뉴욕 현대미술관도 봤다.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풍경을 봤잖아'라고 말하며 괜찮은 척하고 싶었지만 괜찮지 않았다.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를 질질 끌고 5분 만에 반납해야 하는 삶이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조금 슬픈 건 확실하다.

김희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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