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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가을 되면 미치도록 생각납니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작품번호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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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07
사진=서터스톡

인간관계로 머리가 아팠던 며칠 전, 제일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 음반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가 됐습니다. 모든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 새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참 조심스러워집니다. 그저 좋다고 만나고, 싫다고 안 보면 그만인 관계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보고 싶지 않아도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건 어른이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의 파트너였다가 이별로 결말을 맺은 관계라면 더 더욱 부딪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관계가 되죠. 그런 통상적인 관계의 형태를 깬 아름다운 두 음악가가 있습니다. 바로 한 때는 부부였던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명지휘자) 샤를 뒤트아입니다.

화끈하고 한 성격하는 마르타 아줌마와 세기의 긍정주의자 샤를 아저씨의 만남은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울립니다. 원래 남일에 별로 관심 없고 특히 남녀 간의 일엔 관심 없는 저이지만 이 둘의 관계는 제게 좀 특별합니다. 바로 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영상 때문입니다.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손에 드는 음반인 차이코프스키(P.I. Tchaikovsky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1840~1893)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둘이 함께 여러 번 연주했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총 3개가 있지만 역시 제일 인기 있는 곡은 바로 이 1번입니다. 피아니스트의 처음과 끝인 협주곡. 누구나 연주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연주할 수 없는 대곡이죠. 테크닉, 음악성 모두 어려운 명제입니다.

이 둘 사이가 좋았던 1975년경에 연주한 영상에는 잘 생긴 젊은 두 남녀가 등장합니다. 폭발적인 속도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마르타와 그녀를 지긋한 사랑의 눈빛으로 지켜보는 한 남자. 그들의 연주가 그때 제게는 차이코프스키의 격정과 애수와 모든 감정들이 깊이 있는 성숙함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헤어지고 샤를과 마르타가 각각 다른 이성과 결혼, 이혼을 거듭한 후 다시 만나 이 곡을 연주한 것을 보면서는 연주의 감동과 함께 더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 둘의 인간적인 신뢰 덕분입니다. 사랑했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헤어졌고, 헤어졌지만 음악적인 동반자로서는 더없는 환상의 파트너였기에 다시 만나 연주했습니다. 둘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미묘한 숨소리, 호흡, 맥박의 일치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렇게 둘 사이의 신뢰로 인해 많은 것들이 덮어지고 용서되고 그러면서 상대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휘자와 솔리스트(독주자)들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연주자들이 예민한 건 당연한 거죠. 그런 예민함을 서로의 사랑과 신뢰로 부드럽게 승화시키는 이 두 음악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된 차이코프스키는 정녕 사랑에 관해선 소심했지만, 어쩌면 그 역시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해 더 깊게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상대가 후원자였던 미망인 메크 부인이건, 동성애를 품었던 대학 동기였건 간에.

볼륨 높여 들리는 차이코프스키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우리처럼...”

가을이 되면 미치도록 생각나는 곡, 피아니스트가 사랑하는 피아노 협주곡! 바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입니다. 내림 나단조의 곡으로 작품번호 23번이에요.

클래식 작곡가들의 이름이 생소한데 이 분은 조금 더 낯설죠. ~스키 ~프, 등이 들어가는 이름들은 대부분 러시아 태생입니다.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등등. 여러분이 작곡가 이름을 통해서도 대충 국적을 짐작할 수 있고요, 작곡가들의 국적을 알고 나면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겐 12월에 꼭 찾아오는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는 콧수염을 길렀던 애수에 찬 작곡가인데요. 그는 처음엔 법을 전공하고 공무원이 됐어요. 예나 지금이나 현실적으로 불안한 음악가의 길을 가는 것보다 안정된 직장을 갖길 원했던 아버지의 권유가 큰 이유였죠. 하지만 프랑스 혈통을 지닌 엄마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노래를 많이 불러줬어요. 그래서 유독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멜로디가 아름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

엄마 덕에 음악에 대한 심미안이 있었던 차이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하고, 나중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1874년 그의 나이 34살에 명작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던 작곡가에 비해서는 유명세가 조금 늦었어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음악가지만, 황무지 같은 러시아 음악을 세상에 가장 널리 알린 작곡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서 음악적인 영향력이 약했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서유럽의 음악과 러시아적인 색채를 잘 표현합니다. 이 곡은 전체 3악장이고 연주시간은 40분가량인데요, 오늘 저희는 가장 유명한 1악장의 일부를 들어볼게요. 아주 웅장하고요, 첫 음부터 피아노에서 막강한 에너지가 쏟아지는 게 마치 폭포 같아요.

처음 1악장 도입 부분만 들어도 여러분 깜짝 놀라실 겁니다. 피아노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컸나 싶어요. 원래 협주곡이란 앞에서 연주하는 독주 악기를 중심으로 작곡이 됩니다. 피아노 협주곡이면 피아노가 중심인데요, 여기서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게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와의 조화예요. 오케스트라에 소리가 묻혀서도 안 되고, 또 너무나 혼자서만 나가도 안 됩니다. 특히나 차이코프스키는 관현악 구성이 풍부해서 자칫하면 피아노 소리가 묻힐 수 있는데, 이런 곡을 연주하려면 피아니스트에게 막강한 힘과 연주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희 피아니스트들이 콩쿠르나 연주회에서 자주 연주하고요, 무엇보다도 정말 사랑합니다.

재즈 밴드 핑크 마티니도 이 곡을 좋아해서 곡을 만들었습니다. 스톰 라지라는 멋진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핑크 마티니가 연주하는 버전인데, 중간에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첫 부분이 삽입됐습니다. 초원의 빛이라고 번역되는 ‘스플랜도어 인 글라스’ 이 곡도 함께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을이 되면 미치도록 듣고 싶은 곡으로 인간관계 때문에 지친 마음을 달래봅니다.

 

유튜브 검색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연주자–마르타 아르헤리치, 지휘- 샤를 뒤트아

 

차이코프스키 연주- 조성진 (차이코프스키 콩쿨 3라운드 출전 연주 영상)
14th 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Round 3 (Final)
Tchaikovsky -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 1 in B-flat minor, Op. 23
Piano : Seong-jin Cho (He was 17 years old, 3rd Prize)

피아노 연주- 핑크 마티니/ 노래- 스톰 라지 Splendor in the Grass (초원의 빛)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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