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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는 누가 발견했을까? 中 칼 빌헬름 셸레(Carl Wilhelm Scheele, 1742. 12. 19 ~ 1786.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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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23

칼 빌헬름 셸레(Carl Wilhelm Scheele, 1742. 12. 19 ~ 1786.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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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신로아

 
 칼 빌헬름 셸레는 1742년 12월 19일 슈트라준트(Stralsund)에서 요하임 셸레(Joachim Christian Scheele)의 일곱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발트 해 남부 지방에 있는 슈트라준트는 현재 독일에 속하지만 당시에는 스웨덴 령에 속했으므로, 스웨덴 사람들은 칼 셸레를 자국민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셸레의 아버지 요하임은 독일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물상이자 맥주 양조업자인 요하임은 아들에게 화학의 개요와 처방전 읽는 법을 가르쳤고 셸레가 14살이 되었을 때 예테보리(Gothenburg)에 있는 약제상의 견습생이 되게 했다. 이후 셸레는 8년 동안 도제 수업을 충실히 받았고, 일과 후에는 밤늦도록 혼자서 물질 실험을 하고 화학 이론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65년에 말뫼(Malmö)에 있는 약제상에서 근무하게 된 셸레는 룬드 대학의 강사이자 훗날 스톡홀름 대학의 화학 교수가 되는 레치우스(Anders Jahan Retzius)와 친구가 되었다.

 1767~1769년 사이에 그는 스톡홀름으로 진출하여 약사로 일했다. 이 기간에 타타르산(tartaric acid)1)을 추출하고 타타르산 칼륨2)을 얻는 법도 알아냈다. 셸레는 제조 과정 논문을 웁살라 대학의 베리만(Torbern Olof Bergman, 1735~1784) 교수에게 보냈으나, 베리만은 응답하지 않았다.(셸레의 논문은 나중에 레치우스 교수에 의해 스톡홀름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되었다.)

1) 타타르산(C4H6O6)은 포도주 앙금에서 발견되는 하얀 결정으로 물에 잘 녹으며 상큼한 신맛이 나기 때문에 청량음료에 이용된다.
2) 타타르산 칼륨(K2C4H4O6)은 완하제(緩下劑: 무른 똥을 누게 하는 변비약)로 사용된다.

 1770년 셸레는 웁살라(Uppsala)에 있는 대형 약국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곳에서 베리만 교수의 제자였던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셸레는 그의 중개로 베리만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베리만 교수가 필요로 하는 화학 약품을 공급하기로 약속하면서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덕분에 셸레는 베리만으로부터 보다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었고 실험 분석을 돕기도 하면서 베리만의 실험실을 무료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셸레는 여러 종류의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고 성질을 탐구했다.

 1775년 2월 스웨덴 왕립학회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셸레는 코핑(Köping)의 작은 약국을 인수하여 개업했다.

 그의 대표 저서 ≪공기와 불에 관한 화학 논문, Chemische Abhandlung von der Luft und dem Feuer≫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것도 같은 해였다. 그러나 출판인이 출간 작업을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은 1777년이 되어서야 웁살라(Uppsala)와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처음 출시되었다. 책에는 1768년~1773년 사이에 셸레가 수행한 실험들에 대한 보고가 담겼는데, 첫 번째 시도, 두 번째 시도, 세 번째 시도와 같은 소제목을 달아 실험 과정과 관찰 결과를 소상히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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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에서 출판한 ≪공기와 불에 관한 화학 논문,
Chemische Abhandlung von der Luft und dem Feuer≫ p17 발췌 그림


 셸레가 수행한 여러 가지 화학 실험들 중에서 산소의 관찰은 가장 주목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산화 망간, 과망간산 칼륨, 황산을 이용하여 산소를 분리하고 이를 ‘불 공기(Feuerluft; 독일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자연의 공기는 ‘불 공기’와 ‘불결한 공기’의 혼합이라고 분석했다. 

 1774년 그는 파이로루사이트(pyrolusite; 이산화 망간 성분 물질)를 무리아산(muriatic acid; 염산)으로 가열하여 황록색 기체를 얻었다. 황록색 기체는 공기보다 무거웠으며 물에 녹지 않았다. 그는 그 기체를 ‘무리아산에서 플로지스톤이 제거된 공기’라고 생각하여 ‘탈 플로지스톤 무리아산(dephlogisticated muriatic acid)’이라고 불렀다. 이를 현대의 화학식으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4HCl(무리아산; 염산) + MnO₂(파이로루사이트; 이산화 망간)
→ MnCl₂(염화 망간) + 2H₂O(물) + Cl₂(탈 플로지스톤 무리아산; 황록색 염소 기체)

 

 셸레가 관찰한 황록색 기체는 염소(鹽素, Chlorine)3)였다. 염소는 표백과 산화, 살균 능력이 있어서 1820년대부터 표백제, 산화제, 살균제로 산업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염소 기체는 유독하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최초의 화학가스 무기로 사용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자어로 염소(鹽素)는 ‘소금의 원소’이라는 뜻이며, 염화 이온(Cl⁻)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온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3) ‘Chlorine(염소)’은 녹황색을 뜻하는 단어로 1810년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Sir Humphry Davy, 1st Baronet, PRS) 경의 제안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셸레가 산소를 분리하여 관찰한 해는 1771년경이었다. 그렇지만 산소 관찰이 담긴 그의 책은 6년 후인 1777년에 비로소 출간되기 때문에 ‘산소의 발견자’라는 명예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이미 3년 전인 1774년 영국의 프리스틀리가 산화 수은을 가열하여 얻은 공기(산소)에 ‘탈 플로지스톤 공기’라는 이름을 붙인 상태였고, 같은 해에 프랑스의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도 유사한 실험을 수행하여 ‘순수 공기’라고 이름을 붙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산소(酸素, Oxygen)라는 이름은 1778년 라부아지에가 그의 논문에서 ‘산의 형성자(principe oxygine)’라는 명칭을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셸레는 1777년 11월 왕립의과대학(Royal Medical College)의 약사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약사로서 확실한 공인을 받았다. 그런데 7년 후인 1785년 가을부터 신장 이상과 피부 질환으로 병세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증상은 비소, 수은, 납, 불산(플루오린화 수소)과 같은 유독 물질을 다루면서 맛을 보는 등의 위험한 일을 반복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1786년 5월 21일 4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는데, 죽기 이틀 전에 전임자 폴(Pohl)의 미망인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결혼에 얽힌 자세한 사연은 알려져 있지 않다.

 칼 빌헬름 셸레는 산소와 염소를 발견했으며, 바륨, 망간, 몰리브덴, 텅스텐, 시트르산, 락트산, 글리세롤, 시안화수소, 불화수소, 황화수소를 발견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렇지만 과학의 발견 사실들은 후속 연구가 이어지면서 과학계의 검증을 받아야 그 업적이 확실해진다. 페이퍼 형태로 된 그의 보고서들은 스웨덴 학술지에 국한되어 실렸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더구나 그가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셸레의 발견 업적은 부각되지 못했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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