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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별이 가득한 사막의 밤 열 살 한준이과 열여덟 살 선우가 그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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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23

임한준1.jpg

10세 임한준作 <사막>

아이가 이젤 앞에 앉더니 스케치도 안 하고 붓을 들어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케치 하나 없이 주황색의 물감을 대범하게 흰 도화지 위에 발라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열 살 아이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대범한 붓놀림도 인상적이었지만, 사막이란 이미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모래색인 황토색을 택하지 않고, 선명한 주황색을 발라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선명한 주황색 모래언덕 한가운데에는 이와 완전히 대조되는 검정을 가득 발라서 주황과 검정의 색채 대비로 그림은 자유로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이 한가운데에 검정은 왜 칠한 거야?”
“그건 사막에서 햇빛을 안 받아 어두운 그늘을 표현한 거예요.”

황토색 모래는 주황으로, 갈색 같은 어두운 그늘은 검정으로, 양달이든 응달이든 실제보다 더 과감한 색으로 칠한 아이는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하늘을 칠하는데, 무척이나 청량한 파란색이다. 공기는 맑고 기온은 뜨거운 사막의 하늘을 진짜 눈으로 보고 그 기억으로 그려낸 색 같다.

이렇게 세 가지 색, 주황, 검정, 파랑의 어울림은 그림에 생명을 주고 있다. 게다가 사막 중간중간은 아예 아무 색을 칠하지 않은 채 하얗게 남겨두기도 하고 젤 아래 중앙에는 모래의 결을 표현한 자잘한 붓 터치가 들어가서 전체 화면이 단순하지 않아, 그림에는 리듬감마저 있게 됐다. 그림은 그저 조용히 있는 사막풍경 하나를 그린 것 뿐. 사막은 그릴 게 별로 없어서 아주 재미없는 그림이 되기도 쉬운 풍경인데, 이 아이가 그려낸 사막은 고요하면서도 힘이 있고, 정지되어 있는데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스케치를 하고 거기에 맞는 색을 차분히 올려 나가는 게 아닌, 사막의 인상을 색으로, 붓질로 그렇게 즉흥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리라.

“근데 왜 갑자기 사막을 그리고 싶었어?”
“사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사막이 궁금하고 가보고 싶어서요.”

그렇다면 나 역시, 사막이 무척 궁금하고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장소이다. 광활한 벌판에 한가득 모래만 있는 언덕, 그 막막한 느낌, 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울 것 같은 느낌, 특히 사막의 별 밤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나 역시 언제 가는 꼭 가보고 말리라. 아이와 나는 사막에대한 같은 동경으로 하나가 되어,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감상을 한다. 그림을 다 그린 아이에게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사실 요즘에 친구들과 갈등이 좀 있거든요. 그래서 좀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막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실 사막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 그곳에 가면 아무도 없어서 고요한 평화로움이 있을 것 같아서 거든요. 그래서 가보고 싶은데, 그런 고요한 평화의 느낌을 생각하면서 그리다 보니, 마음이 좋아졌어요.”

그림이 아이에게 정서적인 힐링을 주었다니 더욱 감동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자기가 가고 싶은 장소를 꿈꾸며 힐링 받는 느낌으로 그려서일까? 자유롭고 대범하게 쓱쓱 붓질을 스케치도 없이 해대며 그렸던 것 말이다. 아이 말로는 스케치 자국을 안남기고 싶어서 물감의 색만 있게 하고 싶어서 스케치를 안한 것이라 하는데,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잘 묘사하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의 사막이 중요한, 그리고 사막을 그리는 시간이 중요한, 그래서 사막을 그리는 동안의 자기 마음의 정화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정직하게, 내가 여태껏 본 사막의 그림 중 이 그림이 제일 아름다운 사막 그림인 것 같다. 사막을 똑같이 그리려고 애쓰지 않은 그림이라, 자기만의 해석이 잔잔하면서도 힘있게 들어간 그림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더구나 겨우 10살 아이가 그린 그림 아닌가!

여기 또 하나의 사막이 있다. 이번에는 별이 가득한 밤의 사막이다. 18세 선우가 그린 유화이다.

 

2.jpg

18세 이선우 作 <고요함 속의 강인함>

선우는 풍경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려낸 것은 산이나 강이 있는 풍경이 아니라, 진한 선홍빛이 오로라처럼 넘실거리는 사막을 그렸다. 게다가 그림의 양 옆에는 인체의 뼈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풍경화 한다더니 사막이네?”“네, 전 풍경하면 떠오르는 게 사막이거든요.”
“진짜? 왜?”
“모르겠어요. 풍경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 생각나는데, 전 그게 사막이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사막을 뼈와 함께 그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 제 자신이 영혼이 늘 평화롭고 잔잔한 사람이길 원하거든요. 그런데 그 잔잔함이 너무 부드럽고 고요해서 나약한 느낌이 드는 건 싫어요. 한편으로는 강함이 함께 있는 제 자신을 꿈꾸어요. 평화로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자아가 제가 꿈꾸는 저의 이상적인 모습이예요. 그래서 이 그림은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을 풍경으로 바꿔서 나타낸 거예요. 뼈는 강인함을 나타내는 상징이구요. 전 왠지 모르겠지만, 강인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늘 뼈예요. 그래서 사막에 뼈를 그렸어요. 평화로운 사막을 강조하기 위해 별 밤이 있는 사막을 그렸구요.”
 
그렇다면 이 그림의 제목은 자화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겠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그려진 선우의 사막은 색채가 무척 화려한 데도 요란하지 않다. 눈부시지만 차분함을 유지하면서 빛나는 색들. 이 아이 그림마다 나타나는 색의 특징이지만, 특히 이 그림에서 선우의 색채는 남다르게 아름답다. 더구나, 색이 장식적인 면을 위해서만 쓰인 게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쓰여졌기에 더욱 이 색채들에 빨려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10살 한준이의 사막은 낮의 사막, 18세 선우의 사막은 별 밤의 사막이다. 낮과 밤의 사막 그림을 보며 나는 내 버킷리스트인 ‘사막 가보기’가 더욱 간절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사막의 부드러운 모래와 고요함, 그리고 눈부신 별 밤을 가슴에 품어 본다면, 여기가 어디든, 우리는 모두 사막처럼 영혼이 평화로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막을 가보고 싶은 이유는 결국, 사막이 갖고 있는 그 광활하면서 평화로운 에너지를 흡수하고 싶기 때문일테니 말이다.

사막을 가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막의 아름다움을 품고 서로서로 그 아름다움의 기를 내뿜는 우리가 모인다면, 우리 한명 한명은 아름다운 모래언덕이 될 것이다.

아이 그림들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모래언덕의 사람들을 꿈꾼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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