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낮술에 어울리는 클래식 굴다 첼로 협주곡 1악장 서주 (overture)
topclass 로고
입력 : 2019.10.02

미친 듯이 일을 하고 나면 성취감으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번 아웃이 되어 버려 너덜너덜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혈기왕성할 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연주나 원고를 준비하면서 일부러 일을 벌였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있는 제가 무용하게 느껴질까 봐 두려워 쉬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연주 중독, 일 중독이었습니다.

그런 저였는데 이젠 노선을 바꿨습니다. 잠시지만 지친 나에게 선물을 주자는 의미로 하루 날 잡고 온종일을 일탈과 느긋함으로 채웁니다. 밀린 약속도 지키고, 편하게 진행할 수 있는 사적인 일들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마음껏 수다를 떨며 자유롭게 시간을 씁니다. 일탈의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땐 오늘 한 일의 결과물도, 하루의 반성도 필요하지 않게 그냥 막 시간을 즐기다 들어옵니다.

얼마 전 강남 한복판에서 지인을 만났습니다. 평상시라면 잘 갈 것 같지 않은 핫플레이스였습니다. 음악이 시끄럽고 오는 손님들도 대부분 20대의 젊은 친구들이거나 근처의 30대 직장인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 많은 곳을 즐겨하지 않은 저이지만, 핫플레이스라면 한 번은 꼭 가보고 싶고 사람들이 왜 그런 곳에 열광하는지 궁금해 하는 성격에 발을 디뎌봤습니다.

와우! 환상적! 기분이 아주 신선했습니다. 집이 근처라 자주 지나다녔는데도 이곳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평일 대낮에 지하의 클럽 같은 분위기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자니 맥주가 생각났습니다. 초면인 상대였지만 왠지 그분도 저의 취향을 이해해줄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말 그대로 낮에 마신 술! 낮술을 한 겁니다.

 

클래식계의 이단아, 프리드리히 굴다

다음 일정이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날은 제가 정한 일탈의 하루였기에 모든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맥주 그리고 처음 만난 그분과의 신선한 대화를 마치고 지상으로 나오니 약간은 흥분된 것이 아주 기분이 좋더군요. 평일 대낮 맥주가 주는 기분 좋은 흥분이었습니다. 집이 근처라 슬슬 걸어갔는데, 바로 그 순간에 딱 듣고 싶은 클래식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의 파격적인 일탈에 어울리는 클래식! 클래식계의 이단아 프리드리히 굴다의 첼로 협주곡 1악장입니다. 클래식에 갖고 있는 일반적인 정의를 깨뜨린 곡이라 들으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여러분은 파격하면 어떤 수식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파격이란 뭔가 일반적이지 않고, 격식을 깨뜨리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격은 아름다운 변신이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리드리히 굴다는 1930년 5월16일에 태어났습니다. 2000년에 돌아가셨으니 우리와 동시대를 산 인물이죠. 외모부터 범상치 않아요. 무대에 오를 때도 색이 있는 안경에 모자를 쓰고 나오는 그의 모습이 돋보였는데, 탤런트 최종원 씨와 닯은 모습입니다.

굴다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이면서 재즈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합니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 요르그 데무스와 더불어 빈(Wien) 피아노계 3대 스타의 한 사람으로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했는데, 연주 프로그램의 폭이 넓으며 모차르트, 베토벤 등 독일·오스트리아 계의 고전 작품 연주에 뛰어났습니다. 손가락이 워낙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연주자라 피아노를 아주 쉽게 연주합니다. 정말 뭘 잘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쉽게 하잖아요. 연주도 그렇습니다. 저 사람이 연주할 때 편해 보여서 도전했는데, 알고 보면 굉장히 어려운 경우들이 있어요.

굴다는 외모도 성격도 괴짜인 부분이 참 많았는데, 세상에 언론에 자신이 죽었다는 보도문을 보내놓고 며칠 뒤 유유히 나타나 부활 콘서트를 여는 황당한 일도 있었답니다. 재밌는 사람이죠? 그런데 굴다의 얼굴이나 음악을 해석하는 취향을 보면 그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악기 연주만을 하다가 작곡에 심취하는 음악인들이 많은데, 굴다도 역시 그랬습니다. 1950년대 이후부터 관심을 갖은 재즈 자작곡들을 많이 발표했는데, 이 첼로 협주곡도 그런 곡입니다.

전체 5악장 구성으로 각각 독특한 제목이 붙어있어요. 클래식의 협주곡은 3악장이나 4악장 구성으로 처음이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된 것이 많은 반면 굴다의 곡은 전체 5악장 구성으로 1. 서주 overture - 2. 목가라고 불리는 idylle 아이딜 - 3. 카덴차 cadenza - 4. 미뉴엣 – 5. 행진곡 풍의 피날레입니다.

협주곡은 콘체르토(concerto)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되는 라틴어의 ‘콘체르타레’(conertare)라는 말 속에는 ‘경쟁하다’는 뜻과 ‘협력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 하나의 단어에 서로 반대되는 뜻이 모두 포함된 것이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듯이 협주곡 속의 독주자와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경쟁자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경쟁자가 되기도 하잖아요. 첼로 협주곡이라면 첼로가 솔로 연주를 담당하고,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는 구성인데, 어쨌든 이 둘은 서로 돕고 경쟁하며 좋은 음악을 완성합니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굴다의 염원은 재즈에서도 그대로 표출됩니다. 형식과 상관없이 본질인 음악이 중요하다는 굴다의 생각은 저와도 동일합니다. 사는 것도 형식이 아닌 본질이 중요하잖아요.

낮술을 한잔 마시고 강남 빌딩 숲을 걸어가면서 듣기에 아주 어울리는 굴다의 첼로 협주곡 1악장! 음악이 주는 기쁨에 글을 쓰는 지금도 어깨가 들썩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대낮 적잖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면 굴다의 첼로 협주곡 1악장 서곡을 함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유투브 검색어: 굴다 첼로 협주곡 1악장

-Concerto for violoncello and wind orchestra by Friedrich Gulda

 

-Friedrich Gulda - Concerto for Cello and Wind Orchestra (1988)
지휘 프리드리히 굴다/ 첼로 하인리히 쉬프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