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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대통령 신년 인사 중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어색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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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신년 인사를 올렸다. 이 신년 인사에는 ‘돌이킬 수 없는 평화’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왜 이 표현이 우리에게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왜 이런 어색한 표현이 대통령의 언어에 포함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신년사를 듣게 된다. 신년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새해를 맞이하여 하는 공식적인 인사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하지만 신년사는 단순한 인사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그 의미의 무게는 공적인 책임의 무게에 비례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적인 책임의 무게가 무거운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니, 대통령의 신년사가 갖는 의미의 무게는 그 어떤 신년사보다 무거울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대통령의 신년사에 국민들은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201911,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신년 인사를 전했다. 대통령의 신년사는 당연히 새해 톱뉴스를 장식했다. 그런데 뉴스를 듣다가 어색한 표현 하나가 내 귀에 꽂혔다. 바로 돌이킬 수 없는 평화라는 표현이었다

  듣자마자 생각한 것은 왜 평화가 돌이킬 수 없는 대상이 되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평화가 한분 한분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온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일단 이 문장은 문장 자체가 좋은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은 쉼표를 기준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평화가 한분 한분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습니다부분이다. 앞부분의 골격은 평화가 도움이 되도록이고, 뒷부분의 골격은 만들겠습니다이다.

  앞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서술어는 되도록이고 되도록은 주어와 보어를 요구하는 서술어이므로 평화가도움이가 잘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뒷부분이 문제다. 뒷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서술어는 만들겠습니다’이다. 이 서술어는 주어와 목적어를 요구하는 서술어다. 그런데 그 둘 모두가 드러나 있지 않다.

  물론, 문장의 필수 성분이 드러나 있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한국어는 영어와는 달리 주어, 목적어, 보어 등 필수적인 성분이 생략되어도 문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필수적인 성분이 생략되는 경우에는 글을 읽는 사람에게 충분히 복원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달리 말해서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략된 성분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들겠습니다의 주어와 목적어는 무엇일까? 주어가 생략되었다면 그 경우는 대체로 앞부분과 주어가 같거나(‘평화가’) 글을 쓰는 사람 혹은 일반적인 주어일 때다. 맥락으로 보아, 특히 ‘-겠-이라는 선어말어미가 있다는 것을 통해 주어가 글을 쓰는 사람, 즉 문재인 대통령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생략된 목적어가 잘 복원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무엇으로 만들겠습니다의 구조를 갖는 이 문장에서 글을 쓴 사람이 과연 무엇을’ ‘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만들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이렇게 이 문장은 읽는 사람들이 그 뜻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려운 비문법적인 문장이다.

  또한, ‘돌이킬 수 없는평화를 꾸며주고 있다는 점도 어색함을 극대화시킨다. 왜 그럴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돌이킬 수 없는이 주로 꾸미는 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돌이킬 수 없는은 주로 상황, 사태, , 과거, 과오등등과 함께 쓰이기도 하고, ‘물결, 흐름, 추세등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대체로 상황, 사태, , 과거, 과오등과 함께 쓰일 때는 돌이킬 수 없음이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 ‘돌이키고 싶은데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를 담게 된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란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키기가 불가능한 상황, ‘돌이킬 수 없는 일이란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키기가 불가능한 일을 의미하고 그런 현재의 상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반면에 돌이킬 수 없는물결, 흐름, 추세등과 함께 쓰일 때는 약간 다르다. 중립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물결, 흐름, 추세이란 그 물결이나 흐름, 그리고 추세가 되돌릴 수 없다는 뜻만 담고 있을 뿐, 그 상황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는 맥락을 따져야만 알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돌이키고 싶지만이 아니라 돌이키려 해도라는 의미를 담게 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돌이킬 수 없는이 꾸미는 명사가 상황, 사태, , 과거, 과오처럼 시간적인 지속을 의미하지 않는 경우에는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물결, 흐름, 추세처럼 시간적인 지속을 의미하는 경우에는 돌이키고 싶지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이 경우에는 돌이키려 해도라는 뜻을 담게 된다. 변화가 일고 있고 그 변화의 흐름은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를 담는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어색한 것은 평화는 시간적인 지속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어색한 표현이 된 것이다. 아마 신년 인사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평화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평화의 흐름일 것이다. 실제로 12일 중소기업청에서 이루어진 신년회의 문재인 대통령 신년 인사에는 평화의 흐름이 되돌릴 수 없는 큰 물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와 같이 표현되어 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아무리 어색한 표현일지라도 한국어 사용자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아듣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칠하게 꼬치꼬치 따져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품격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그 이전에 정확하고 한국어다워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편안하게 들리고 또 읽혀야 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대통령의 생각을 표현한다. 대통령의 생각이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한국어답게 전달될 수 있도록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충분한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이러한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는지 청와대는 꼭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문화적 수준이 이제 이러한 점들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 단계로 높아져가고 있고, 대통령은 우리의 대표인 만큼 대통령의 언어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 수준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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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이선   ( 2019-02-17 ) 찬성 : 0 반대 : 0
교수님의 언어의 줄다리기 책을 읽은 후 관련 글을 더 찾아 보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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