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죽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학교 2학년 유진이가 그린 '생각과 다른 천국'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9.27

중학교 2학년 유진이가 상징으로 가득 찬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게 다 무슨 내용이야?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림이 재미있네?"

뜻밖에도, 아이는 죽음에 관한 자기 생각을 담은 그림이라고 했다.

"제가 이때 좀 힘든 게 많았어요.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어요.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죽으면 이 세상의 힘든 것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천국은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행복한 곳일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 그림은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림의 오른쪽 윗부분 검정 바탕에 하얀 선으로 그린 사람이 방금 죽은 이다. 그의 앞에는 검은색 창이 있고  안으로 하얗게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창 안쪽에서 죽은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리이다. 이 부분은 지상 세계를 말하고, 그 아래부터 색채 가득한 그림이 펼쳐지는데, 이쪽은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국의 세계다.

따뜻한 분홍색 윗도리에 연청색 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이 방금 위의 지상 세계에서 죽은 영혼이다. 길을 건너가던 그 사람이 울타리 앞에 멈춰서 울타리 안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은 놀이터인데, 지상에서처럼 놀이기구를 타고 놀고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심지어 이곳엔 가로등도 있다. 그래서, 죽은 자는 '어라? 여기도 현실에서 내가 살던 곳과 똑같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놀이터 옆에는 검은색으로 도로를 그려놓았다. 도로는 앞뒤가 뚝 끊어진 채 있어서 그 도로를 타면 반복해서 길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유진이는 '무언가 맘에 안 들어 떠나려 해도 길은 어차피 반복되는 모양이라, 탈출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안 좋은 상황이나 생각이 있을 때는 어디로 도망치거나 하지 말고, 생각과 상황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게 맞다'는 말을 이 끊어진 도로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림의 왼쪽 아래를 보면 우산들이 여러 개 보인다. 이는 비가 오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정작 그림 왼쪽 위의 날씨를 알려주는 큰 전광판에서는 해가 쨍쨍하다고 거짓 정보가 나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산만 있을 뿐 그 위로, 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비는 어디에 내리고 있는 것일까?

밖이 아닌 건물의 유리창 안으로 비가 내리고 있는 게 보인다. 이것은 '사람들이 비가와도 해가 떴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진짜 속마음을 숨기며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즉, 사후세계에서도 인간세계처럼, 사람들이 힘든 마음을 감추고 웃는 척하거나 괜찮은 척하는 것을 나타내고, 진짜 마음을 안 보여주고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한쪽 벽에선 창 안으로 비가 내리치고 있는데, 다른 쪽 벽에는 비 내리는 창이 없고 대신 밝은 색채의 그림이 걸려 있다. 괜찮은 척하느라, 위장의 그림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사후세계는 풍경만 지상세계와 똑같을 뿐 아니라, 사는 모습도 똑같다. 이것이 아이가 생각하는 죽은 뒤의 세계, 천국의 모습이다. 그러니 현실의 힘듦을 탈출하고자 죽는다고 해도, 죽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이가 내린 결론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죽으면 뭐가 달라질까? 이 현실 세계에서 힘든 게 있다면, 그래서 죽음을 택한다면 그게 해결이 될 수 있는 걸까?’ 천국의 또 다른 인간사가 지상과 똑같다면 다시 그 힘든 일들은 반복될 텐데요. 천국도 별반 다를 게 없을지 모르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천국은 진짜 환상에서만 있을지 모르잖아요. 생각과 달리, 천국은 이승과 사는 모습이 매 한 가지일 것 같아요.”

그래서 사후세계의 시작이 현실 세계에서 매번 쉽게 보는 놀이터 모습으로 시작된 거라 한다.

“그러니, 현실 세계에서 힘들다고 죽으면 안 돼요. 죽는 게 해결이 아니에요. 최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어떤 어려움이나 슬픔이 와도 여기서 문제를 해결하며 이겨내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해요.”

이 말을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춘기가 막 시작된 아이의 고민이 드러나면서도 동시에 건강한 해결책이 맑게 담긴 이 그림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아이가 본인의 생각과 고민, 그리고 그 끝에서 내린 나름의 해답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본인의 삶의 태도를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그림의 상징을 하나하나 따라 읽어가는 타자에게도 아이의 건강한 긍정의 힘이 전달되고, 진지한 죽음에 대한 고민에 공감되어 마음을 울린다.

그런데 이 그림은 내용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참 아름답다. 눈에 띄는 화려한 색채나 시선을 압도하는 구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그림이 그렇게 세련됨으로 치장될 때만 미술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원석 같은 아름다움이 그 순수함 때문에 더 좋을 때도 있다. 보석을 간직한 채, 아직은 정제된 보석이 아닌 순수한 원석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 기교 없이 그린 순수한 그림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나이도, 기교도 아닌,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러모로 이 그림은 그래서 참 좋은 그림이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