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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모든 죽은 영혼들을 위하여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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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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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위키백과 이미지 캡쳐본.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남 작곡가 라벨은 1875년에 태어나 1937년에 죽은 후기 인상주의 초기, 현대음악의 선두주자입니다. 인터넷에서 라벨(Ravel)을 찾아보시면 항상 정장을 입고 빗질을 잘한 미남 배우 알 파치노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알 파치노가 늙고 살이 많이 쪘지만, 영화 ‘대부’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카리스마가 강하게 느껴지면서 정말 멋있습니다. 작곡가 라벨도 그렇게 멋집니다. 성격은 아주 예민했어요. 예술가의 전형적인 기질이 보입니다. 옷을 대충 입고 나가는 법도 없고 미남 미녀들을 좋아했습니다.
 
라벨의 고향은 피레네 산맥 근처였어요. 스페인하고 프랑스 국경이니까 남프랑스 출신이죠. 그래서 정서가 양가적이에요. 프랑스와 스페인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라벨은 관현악의 대가라고 알려졌지만 원래는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입니다. 오늘은 그의 피아노 곡 중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소개하겠습니다. 1900년에 출판된 곡인데 지금은 관현악 곡으로도 편곡돼서 많이 연주됩니다.
 
이 곡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보고 라벨이 영감을 받아 만든 곡입니다. 라벨은 이 곡에 대해 ‘옛날 스페인 궁전에서 춤을 추었을 어느 어린 왕녀를 위한 기억’이라고 설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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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
 
벨라스케스는 탁월한 그림 실력과 왕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펠리페 4세의 총애를 받던 궁정의 초상화 화가였습니다. 1650년대에 벨라스케스의 능력은 절정에 달해 ‘펠리페 4세 일가(시녀들)’ 라는 걸작을 그려냈는데, 이 작품은 스페인 여행을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구조와 원근법적 체계에도 해박했던 벨라스케스는 특유의 세심한 터치로 왕녀 마가레타의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그림 속에는 화가의 작업실에서 시녀들을 거느린 어린 마가레타 공주가 보이고, 아버지 펠리페 4세와 어머니 마리아나 여왕의 모습이 거울 속에 보입니다. 펠리페 4세의 딸인 왕녀 마가레타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외삼촌격인 사촌 레오폴드 1세 로마 황제와 근친혼을 하게 되고, 스페인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살게 됩니다. 결혼 전 멀리 로마에 있는 레오폴드 1세에게 마가레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왕녀의 그림은 꼭 필요했지요. 그녀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7년의 짧은 결혼 생활을 끝으로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왕인 펠리페 4세와 아주 친밀한 관계였던 벨라스케스가 마치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듯한 마음으로 그녀의 슬픈 감정까지 잘 포착해 그린 명화입니다. 왕녀라지만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에서 너무 일찍 찾아온 죽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22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으니 말입니다.
 
스페인의 왕녀 그림도 그렇고 제목에 붙인 ‘파반느’라는 춤 장르도 그렇고, 곡에서 역시 라벨의 이국적인 스페인의 정서가 보입니다. 24살의 청년이 작곡한 곡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서정적인 멜로디와 우수(憂愁)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엠마누엘 샤브리에 (Alexis Emmanuel Chabrier 1841년 ~ 1894)스승 가브리엘 포레 (Gabriel Faure, 1845~ 1924)를 떠올리게 합니다. 멜로디는 샤브리에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제목을 결정하는 데는 스승의 역할이 컸을 겁니다.
 
파리음악원의 스승이었던 포레 역시 ‘파반느’나 ‘엘레지(비가,悲歌)’ 라는 제목으로 곡을 발표했었습니다. 아무튼 누구의 영향이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는 제목부터가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같은 제목의 소설도 생각나게 하고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곡으로 아는 사람보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파반느’는 궁정에서 추던 아주 느린 풍의 춤곡인데, 그림의 주인공인 왕녀가 생전에 췄을 그런 장면이 상상이 되네요. 곡의 처음부터 아주 고풍스런 분위기가 느껴지고, 3부 형식으로 처음과 끝의 멜로디가 반복됩니다. 원곡은 피아노 독주용 곡이지만 라벨 본인이 후에 관현악곡으로도 편곡합니다. 피아노든 관현악곡이든 어떻게 들어도 모두 애절한 감성이 한껏 표현되는 감각적인 곡이고요, 클래식인 줄 모르고 들으면 영화음악이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이런 감각적인 멜로디의 사용이 라벨의 음악을 자주 비교되는 드뷔시의 그것보다 좀 더 대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이 음악은 소설 속에서도 흘렀습니다. 바로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원제는 노르웨이 숲이죠. 이 책은 1989년에 세상에 나왔는데, 주인공 와타나베가 풀어 쓰는 대학시절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 성장소설입니다. 고등학교 때 절친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 이렇게 셋이서 '삼총사'였고, 졸업 전에 기즈키가 자살하게 됩니다. 와타나베는 '친구의 친구' 그러니까 나오코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 음악도 나오코의 장례식에서 흐릅니다. 시대의 배경은 1987년 시점에 주인공이 18년 전의 이야기를 회상하듯 풀어갑니다. 즉, 1969년쯤의 도쿄가 중심이죠.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나오는 대목은, 요양원에 같이 있던 레이코 여사와 와타나베가 함께 나오코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입니다.
/ 그리고 그녀는 기타용으로 편곡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드뷔시의 <월광>을 정중하고 아름답게 연주했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는 왠지 애잔합니다. 죽었기에 잊혀져 가는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슬픔이지요. 마가레타 왕녀도, 영국의 아름다운 왕녀 다이애나도 고종의 외동딸이었던 덕혜옹주도, 슈베르트 작품의 ‘죽음과 소녀’ 에서도 하루키 소설 속 나오코도 모든 죽은 이들에게 안식의 음악을 띄웁니다.
 
유투브 검색어-라벨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1. 라벨 자신이 연주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 스티아토슬라브 리히터 연주
 
3. 관현악 편곡 버전
조현영 피아니스트, 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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