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어느 피아니스트의 소회,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7.11
사진=셔터스톡
피아노를 참 좋아했습니다. (마치 그 남자를 참 좋아했었다, 처럼 들리네요)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크든 작든 슬럼프를 거칩니다. 슬럼프를 심하게 겪는 사람은 급기야 악기를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주의 실력과 상관없이, 무대에 섰던 사람들은 무대를 잊지 못합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간에 무척 그리워해요.
죽고 못 사는 애인이랑 헤어졌을 때보다 더 심하게 아픔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사랑했기에 다시는 우연으로라도 마주치지 말자고 하는 연인 같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동안 여러 복잡한 이유로 피아노를 멀리 했습니다.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그렇게 피아노에 매몰찰 줄이야. 무수하게 쌓여있던 그랜드 피아노 위의 악보들. 집안 책장의 2/3를 채우고 있는 악보들 위로 먼지가 켜켜이 쌓였습니다.
싫은 사람 옆에 가는 게 죽도록 괴로운 일인 것처럼 피아노 앞에서 악보를 꺼내 연습하는 일이 그렇게 괴롭고 싫었습니다. 날마다 10시간 가까이 피아노 연습을 했던 몇 년 전이 모두 거짓말 같습니다.
 
사람도 목소리로 기억하는 저인지라, 악기 소리에 매우 민감합니다. 심지어는 타인에 대한 좋고 싫음이 목소리로도 결정됩니다. (사는 데 별로 도움 안 되는 기준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유독 듣기 힘든 악기가 있는데. 피아노는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전 정말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맞습니다. 피아노를 처음 시작한 이유도 그 소리가 좋아서였습니다.
 
맑은 소리, 고운 소리 ** 피아노!
그렇게 저는 그 광고에 빠져 피아노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졸랐고, 얼마 지나 피아노는 저희 집에 가족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래 냉담했던 성당에 다시 나갑니다. 갑자기 성당에서 우연히 들은 피아노 솔로 한 곡이 제 가슴을 후벼 파더군요. 전문 연주자의 터치는 아니었지만, 제 마음을 관통하는 피아노 선율에 한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피아노에 다가갔습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제일 먼저 고른 악보는 바흐였습니다. 제가 무인도에 가면 가져갈 단 하나의 음악! 골드베르크 변주곡 악보입니다. 피아노 앞에 다시 앉기가 힘들었는데. 막상 바흐의 악보를 보니 손가락이 슬슬 돌아갑니다.

피아니스트들은 손가락 번호가 없는 이 악보를 보고 각자 자기에게 맞는 핑거링을 찾아 연주합니다. 정답이 없는 삶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듯이.
연습하는 좋은 느낌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전 다시 연습을 해보기로 조심스레 다짐합니다.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들은 사람은 없는 곡 들으면 절대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서양음악의 아버지 바흐 선생의 위대한 명작. 바흐 작품번호 BWV. 988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원래 제목은 <2단의 손건반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변주>입니다. 쳄발로라는 악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 쳄발로는 피아노의 전신악기로 발현악기입니다.
 
피아노는 해머라는 장치가 현을 때려서 내는 타현악기인데 반해 발현악기인 쳄발로는 잭(Jack)이라는 깃털 달린 촉이 현을 튕기면서 소리가 납니다. 강약 조절이 되지 않아 단을 구별하여 음색의 차별화를 뒀습니다. 페달이 없고 규모는 피아노보다 작으며 소리가 울림이 크지는 않으나 독특한 음색 때문에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있어요.
 
바흐는 굉장히 수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30개를 무작위로 나열한 것이 아니고 나름 규칙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작품의 구조를 ‘주제(아리아)-30개의 변주-주제(아리아)’라는 3개의 틀로 구성했습니다. 아리아를 뺀 30개의 변주는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수학적 논리를 통해 서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우선 첫 곡이자 마지막곡인 아리아는 수미쌍관을 이루며 곡의 처음과 끝을 장식합니다. 

아리아는 사라방드(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 풍으로 되어 있으며, 주제는 1725년 바흐가 작곡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의 2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베이스 라인(왼손)을 이루는 파사칼리아(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변주곡) 스타일의 주제가 이후 각각의 여러 변주에서 모습을 바꾸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작품을 종횡으로 꿰매고 있습니다. 곡의 첫 문을 여는 도입부이자 중심적 주제, 그리고 완결된 마무리를 짓는 가장 중요한 악구가 바로 이 아리아입니다.
 
18세기 작품이지만 21세기 재즈 뮤지션들이 아주 사랑하는 음악. 기괴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굴렌 굴드가 연주해서 명반을 낳았기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아닌 굴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전곡 연주는 70분 정도 되는데 듣다가 졸아도 대세에 전혀 지장 없는 곡. 주제가 계속 변주로 비슷비슷하게 연주되어 중간부터 들어도 됩니다. 클래식 매니아들 앞에서 “저 골드베르크 변주곡 좋아합니다.!”라고 한 마디만하면 단박에 게임 오버! 단 한 문장으로 그들과 쉽게 융화될 수 있는 마법 같은 곡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가슴 뛰는 사람처럼 오랜만에 눌러봐도 너무 좋은 피아노.
그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는 지금, 제 눈에는 눈물이 글썽입니다.

땡큐 바흐!
 

 
출처 | 유튜브
피아노 | 안드라스 쉬프
조현영 피아니스트, 아트앤소울 대표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