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디테일이 살아있네! 아이의 눈으로 본 성묘하는 날 10세 백강우가 그린 '추석'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9.10

그림이란 게 눈으로 보기도 하지만 책처럼 읽게 되는 ‘읽는 그림’도 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소개하는 그림이 그렇다. 숨은 그림처럼 하나하나 찾아 읽는 즐거움이 있는 그림, 바로 10세 백강우가 그린 두 개의 ‘추석’이다.

첫 번째 그림은 성묘하러 가는 길을 표현했다. 아이는 평소 세상에 대한 관찰력이 꼼꼼해서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평상시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어 그린다. 겨우 10살 아이의 관찰과 표현이 놀라워서 눈을 크게 뜨고 보게 된다.

각각의 묘지 앞에는 성묘하러 온 가족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절하는 모습의 묘사가 뛰어나다. 엉덩이를 약간 내밀고 무릎을 꿇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보이는 게 정확히 우리가 절할 때의 동작이다. 어쩌면 이렇게 어린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묘사력이 좋은지. 사람들의 엉덩이 하나, 발바닥 하나가 다 사랑스럽다. 

가족마다 절하는 법도 약간씩 다르다. 똑같이 다 엎드려 있거나 술을 따르는 의식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가족은 꽃을 바치고 있고, 절 대신 기도만 올리고 있는 가족도 있다. 성묘 온 가족 구성원도 다 다르게 그렸다. 대머리 아저씨에서부터 어린아이, 한복인 듯한 펑퍼짐한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담담히 절을 올리고 있지만, 그림 오른쪽에 기도하는 가족 중 아이 한 명의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섬세한 상황 설정을 넣기도 했다.

성묘하는 사람들 옆으로는 높은 산길을 따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등산 스틱을 짚고 모자를 쓰고 산을 오르고 있다. 성묘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도 단순하게 성묘하는 하나의 상황만 설명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등산하는 사람까지 그려 놓음으로써 전체 풍경이 풍부하고 더 사실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또한, 아직 성묘를 안 온 듯한 묘지도 보이고, 이미 누가 다녀간 뒤라 꽃들만 묘비에 있는 묘지도 있다. 이렇게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묘하는 사람들의 풍경 아래 귀퉁이에는 이와 대비되게, 자동차를 그려 넣었는데, 성묘하러 올라가는 차, 또는 마치고 내려가는 차의 모습이다. 이 그림의 훌륭함이 바로 이런 것이다.

보통 성묘하는 모습을 그려보라 하면 아이들의 상당수는 묘지 하나에 가족들이 절하는 모습 덩그러니 그려 놓는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렇게 다양한 성묘의 풍경을 섬세하게 많은 이야기 속에 그려 놓으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주제는 정확하고 힘있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세기 화가의 관찰력을 10살 소년 그림에서 읽다 

3.jpg

4.jpg

위: 아이들의 놀이(1560)
아래: 농부의 결혼식(1528~1569)

 

이런 식으로 그 시대의 풍경을 참으로 섬세하게 표현해서 그림을 볼 때, 책을 읽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린 대표적 화가가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Peter bruegel이다. 이 화가는 ‘아이들의 놀이’ ‘눈 속의 사냥꾼’ ‘농부들의 결혼 연회’ 등 일반 사람들의 평범한 풍경들을 기록하듯 그린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림마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 시대의 풍경을 다큐 영화 보듯이 생생히 볼 수 있는 역사화를 그렸다. 이 화가의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애정,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그림으로 풀어내는 열정을 10세 강우의 그림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는 것이다. 

2.jpg
10세 백강우 작 '추석'

성묘 그림 외에 또 하나의 추석 그림이 있다. 추석 음식준비를 하는 모습인데, 마룻바닥에 앉아서 전기 프라이팬을 놓고 전을 부치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특히 프라이팬의 전기선이 멀티탭에 연결되어서 어지럽게 선이 바닥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추석 음식 장만하느라 정신없는 풍경을 나타내는 데 크게 한몫을 하고 있다. 센스있는 표현이다. 

게다가 냉장고 문도 열린 채로 있어서 정신 없는 상황을 더 강조하고 있다. 아이들은 음식 만드는 걸 하나라도 먼저 집어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특히 그림 제일 앞의 아주 어린 아이는 키가 안 닿아서 쉽게 잡히지 않는 음식을 까치발 하고 두 팔을 뻗어 먹으려는 모습이 현실감 그대로이다. 까치발을 한 게 사실 그림에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윗몸의 동작만 보더라도 그 모습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오른쪽에는 높은 곳의 물건을 꺼내느라 의자를 두 개를 포개어 그 위에 올라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모습도 있고, 다양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아이가 이 모든 광경을 사진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 단지 기억으로 그렸다는 건, 평소 얼마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관찰을 잘하고 있는가가 드러나서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림을 워낙 잘 그리는 아이라 묘사력이 좋은 것에 대한 칭찬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전체적인 어울림 속에 재미있게 읽게 한다는 것이 이 아이의 그림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한다. 묘사력만 좋고 기술만 좋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 이야기꾼 같은 면모 말이다.

그림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추석을 모르는 외국인도 우리의 명절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고, 그리고 추석을 아는 사람도 다시 한번 추석 풍경을 보게 되면서 그 공감되는 부분에 박장대소를 하게 되는 그림이 바로 이 추석 그림일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정보를 전달해주면서도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 되고 있다.

아이가 묘사한 표현들, 상황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며 새삼 아이가 평소에 얼마나 세상에 대해 애정을 갖고 관찰을 하였나 하는 게 느껴진다. 브뤼겔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 역시 꼼꼼히 추석을, 세상을 기록하듯이 하나하나 그려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 어린아이도 그림 하나를 그리는데 이만큼의 열정과 집중을 하며 행복하게 그렸는데, 우리는 무엇인가에 푹 빠지며 열정적으로 하는 일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아이가 많은 상황과 동작을 기억으로만 그릴 정도로 애정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어른인 우리가 흐린 눈으로 마른 풀처럼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긍정과 열정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이 ‘읽는 그림’에서 배우게 된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사랑과 열정을 갖는다면, 우리의 삶이 더 풍부해지리라, 추석의 풍요로움처럼!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