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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정부장의 독서일기
누군가의 인생 책을 알게 되면 조용히 찾아 읽고 상대의 마음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금융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편집자다. 책 읽는 게 일이자 즐거움인데 책 못지않게 사람도 좋아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읽어두면 좋을 책을 소개한다.
미중 전쟁은 피할 수 있는가 2500년 전의 징비록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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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22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 당장 무슨 찬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세에 내내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일본인들이 열심히 연구했다는 류성룡의 <징비록>이 아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서문이다.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의 발문은 위에 인용한 서문과 상당히 비슷하긴 하다. 류성룡은 조선을 지휘하는 고위 관료였고, 투키디데스 아테네를 위해 전장에 나간 장수였다. 둘은 모두 전쟁 도중에 직위 해제되었지만, 개인의 통한이 아니라 시대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전쟁사를 써내려갔다.

사실 그리스 역사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헤로도토스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전쟁을 기록한 <역사>는 그를 ‘역사의 아버지’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 세대 후배격인 투키디데스는 ‘역사학의 아버지’란다. 그로부터 기록을 넘어 사건의 구조를 바라보는 통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명언도 그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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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의회 앞의 투키디데스 상. ⓒ셔터스톡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두 주요 도시국가를 초토화시켰던 전쟁이다. 패권자인 스파르타에 대항하여 신흥세력 아테네가 동맹국들과 연합해 도전했다. 이에 대해 투키디데스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미중 무역전쟁 뉴스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용어다.

기원전 8세기에 쓴, 최초의 그리스 문학인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의 발발 원인을 무엇이라 묘사했던가? “그리스의 아름다운 왕비 헬레나가 바다 건너 트로이(지금의 터키)로 납치당했기 때문일세.” 이로부터 사백 년이 흐른 뒤에야, 투키디데스는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문득 떠오르는 부끄러운 기억은,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은 오스트리아 대공 암살 사건이라고 자동인형처럼 되뇌었던 중고생 시절이다. 그때는 역사 과목을 싫어했는데 맥락 없는 암기 과목인 줄 오해해서 재미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잘 번역된 역사서를 읽으면서 그 진가를 알게 되었다. 역사학의 조상님인 투키디데스의 통찰은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간 경제 갈등으로 시끄러운 오늘날의 세상을 파악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구조를 읽을 수 있는가
국제관계 파악은 우리 시대의 “교양”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 교수는 패권국 미국과 신흥세력 중국의 대결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분석했다. 지난 5백년간 16번의 국가 간 대결이 있었고, 12번이나 전쟁으로 치달았다. 그 내용을 담은 책 <예정된 전쟁(원제: Destined for War)>은 제목부터 얼마쯤 공포를 자아낸다. 앨리슨 교수는 국제정치 분야의 최고의 석학인 한편, 레이건과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보를 지내는 등 지금도 미국 외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그의 책을 통해 미국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다.
 
<예정된 전쟁>은 5백 쪽으로 만만치 않은 두께인데,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지혜를 전하려는 저자의 진심이 가득하다. 이야기처럼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15세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해양 쟁패에서 시작해, 17세기 중엽부터 영국이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며 치른 전쟁들, 19세기 중반에 독일과 일본이 신흥세력으로 도전장을 내밀며 빚은 충돌까지, 특정 개인과 집단의 심리나 비정상을 논하기 전에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놓여 있었다.

미국인 중에도 중국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지, 저자는 중국이 5천 년의 문명을 품은 나라이며 근래 1백 년 동안만 잠시 세를 잃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문명의 충돌이자 세계 최강자 자리를 두고 겨루는 자존심의 대결이다. 미국은 대통령제라는 정치체제 특성상 단기에 승부를 내려하지만, 중국의 유일한 지배 세력인 공산당은 천천히 판세를 중국에 유리하게 조정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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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현실은 냉정하고 엄혹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냉전이 끝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체제로 살아남은 것 같았다. 자유 무역을 통해 국가 간에 교류하고,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한결 가까워진 지구촌. 중국이 부상하기 전까지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 간의 쟁투를 논하는 ‘지정학’이란, 시대 흐름에 뒤처진 밀리터리광의 허언으로 보이기도 했다. “한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라는 문구가 지겨울 지경이었다.
<예정된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70년간의 평화가 예외였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던 미국. 그 대외 정책을 마련한 근간에는 국력은 곧 국방력이라고 외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1909 대통령 재임)이 있었다. 강한 국가와 군대를 전면에 내건 중국의 시진핑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투키디데스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될지 모른다. 앨리슨 교수는 과거에는 정치가 역사에서 배우려했는데 지금은 단지 지나간 일로만 여긴다며 안타까워한다. 그가 주장하는 ‘응용역사학’은 미소 냉전이 마무리된 이후 기억에서 멀어진 지정학을 닮았다. 다시 전 세계가 이토록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힘의 논리에 노출될지 누가 알았을까? 혼란한 때일수록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눈이 있어야 한다. 내부 사정이야 어떨지 몰라도, ‘비즈니스’ 못잖게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국제관계에서는 명분만 따질 일이 아니다. 

 

손자는 싸움을 피하라고 했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가

<예정된 전쟁>은 총 4부 중 마지막 부에서 전쟁을 피하는 방법으로 ‘열두 개의 열쇠’를 제안한다. <손자병법>이 떠오른다. 싸움에 이기려고 읽기 시작했다가 싸우지 않는 법을 배우게 하는 책 아닌가. 손자는 국가 경영을 자문하는 참모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가급적 충돌을 피하라고 권한다. 민생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지혜는 빛이 바라지 않는다. 미국 아마존에서도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판매 순위가 훨씬 높다.

앨리슨 교수가 말하는, 전쟁을 피하는 열쇠 중 가장 마지막은 ‘국내 상황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이다. “경제 성과는 국력의 토대가 되며, 유능한 통치자는 국가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성공적으로 자원을 동원한다. 이 두 가지를 굳건하게 지지하는 토대는 시민들의 단합된 마음이다.” 손자도 말했던 것처럼, 강력한 국력만큼 전쟁 발발 자체를 억지하는 요소가 또 있을까? 

 

한국은 누구의 동맹인가?

2019년 초여름에 한국을 찾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북한이라는 요소 때문에 한국이 미중 전쟁의 격전지가 될 수 있다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기사의 제목은 꽤 자극적이다. "북의 ICBM 실험 못 막으면 '제2의 한국전' 터진다."

여든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는 트위터에서도 활발하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본인의 스승인 헨리 키신저(국제문제 전략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와 찍은 다정한 단체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 만남의 주제는 AI가 문명에 미칠 영향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국가 전략가들은 AI를 두고 과연 어떤 미래와 그 부작용을 논의했을까?

이런 메시지도 있었다. 미국이 아시아 곳곳에서 터지는 문제들-홍콩, 북한의 미사일 문제, 한일 갈등-에서 ‘미국 우선 고립주의’를 추구한다면 국제 사회에서의 몰락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셈이라는 에드워드 웡(Edward Wong, 미 저널리스트)의 글을 리트윗 하면서, 미국은 이 세력 경쟁의 시대에 누가 동맹인지 잘 헤아려보라고 충고했다.

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시대는 명분이나 신념 따위는 단숨에 내던져 버리는 ‘왕좌의 게임’ 속 겨울로 들어가는 것인가. Winter is Coming. 개인들이란, 그 목소리란 참으로 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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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예정된 전쟁>, 그레이엄 앨리슨, 세종서적
<손자병법>, 김원중, 휴머니스트
그레이엄 앨리슨 트위터  https://twitter.com/grahamtallison
그레이엄 앨리슨 방한 인터뷰 https://news.joins.com/article/23490357

 

 

정소연 세종서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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