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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온난화를 걱정하는 아이의 사려 깊은 마음 여덟 살 병준이가 그린 펭귄과 북극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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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14
8세 김병준 作 '펭귄과 북극곰 가족'

 더위에 몸만 지치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 지치고 늘어지는 계절이다. 시원한 곳에서 모든 일에 대한 스트레스나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럴 땐 무조건 시원한 게 제일. 마침 눈에 딱 들어온 그림이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그림, 남극의 펭귄과 북극의 흰 곰이 빙하 위에 있는, 김병준 어린이가 여덟 살 때 그린 ‘펭귄과 북극곰 가족’이다.

이 그림은 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그림에서 찬 바람이 나오는 것 같다. 우선, 색이 그렇다. 추운 곳을 설명하느라 파란색을 많이 썼는데, 하늘색이나 바다 색깔도 그 종류가 많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하늘색이라 하더라도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색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색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쉽게 답을 하기가 어렵다. 색이 가진 여러 뉘앙스 중에 무엇을 꼭 집어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하늘색은 시원한 하늘색이다. 색만 봐도 더위가 가시는 느낌. 빙하의 어두운 부분을 표현한 파랑은 하늘을 더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게다가 군데군데 하얀색 빙하가 있어 세 가지 색의 조화만으로 편안하다.

게다가 여덟 살 아이가 삐뚤삐뚤 그려낸 펭귄 무리는 사랑스럽다.  아이의 순수함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림을 바라보게 만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펭귄은 몸통에 검은색을 칠하지 않고 선으로만 표현했다. 그림 전체가 주는 푸른빛의 시원함이 방해받지 않고 유지될 뿐만 아니라, 삐뚤삐뚤한 선이 그대로 드러나 아이 그림만이 주는 귀여움이 도드라진다.

만약 펭귄을 기술적으로 잘 그려냈다면 이 그림의 매력이 오히려 반감되었을 것. 가끔 어른들이 아이 그림의 표현이 미숙하다며 세련되게 그리도록 훈련하는데, 물론 그게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나이에 맞는 표현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한 표현의 특권이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다운 표현이 살아있는 그림만큼 아이 그림의 힘이 느껴지는 건 없을 테니까.

펭귄과 달리, 북극곰은 제법 사실적으로 잘 그려냈다. 차가운 핑크 톤이 감도는 색을 칠했는데, 이유는 빙하가 하얀색이라 곰을 똑같이 하얗게 칠하면 잘 안 보일 것 같아서란다. 센스쟁이다. 핑크 역시 따뜻한 핑크가 아니라 연보라 느낌이 감도는 즉, 파랑을 약간 머금고 있는 색이라, 전체적으로 차가운 색채에 연결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하나 발견한 게 있어서 아이에게 물었다. 우연인지, 북극곰 엄마의 표정이 살짝 걱정이 비친다. 보통의 아이들은 웃는 얼굴을 잘 그려 넣는다. 무표정한 표정의 이유를 물어봤더니, 아이는 "유치원에서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북극곰도 포함되어 있어 놀라고 슬펐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릴 때 사실 슬픈 마음으로 그린 거라고 한다. 빙하가 계속 녹고 있어서 북극곰이 그 광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모습이다.그러면서 “보세요! 여기에 크고 넓은 빙하가 없잖아요. 다 작은 조각들만 떠다니잖아요” 한다.

온난화 현상으로 빙하가 자꾸 녹고 작은 얼음 조각만 떠다니는 걸 표현하느라 일부러 큰 빙하를 안 그린 거란다. 곰은 덩치가 커서 넓은 땅이 필요한데, 새끼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예전에 북극곰이 새끼 몇 마리를 데리고 아주 작은 빙하 위에서 견디고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 기억으로 새끼들도 엄마 곰 옆에 같이 그려 넣은 거다.

이 이야기는 그림을 그린 뒤 한 참 시간이 지난 뒤에 나에게 해주었다. 자기가 펭귄 색을 왜 안 칠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이 그림을 슬픈 마음으로 그린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반면, 펭귄들은 그렇게 걱정 어린 표정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펭귄들은 덩치가 작아서 북극곰만큼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펭귄도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무리는 큰 땅이 필요하니 곧 알게 될 거라 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이 여름, 감상하면 좋을 시원한 아이 그림으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깊은 사연과 아이의 염려가 녹아있는지는 몰랐다. 역시 아이 그림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이와 그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림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아이가 어떤 생각을 평소에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의 마음을 더 깊게 읽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림으로 나누는 소통의 기쁨 말이다.

아! 그런데 왜 북극 사는 곰과 남극 사는 펭귄이 같이 있는 걸까?

"아! 그땐 그걸 몰랐어요. 추운데 사는 애들이니까 그냥 같이 사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

 

▶이 이야기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톡'을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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