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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160년 된 사랑이야기 <라 트라비아타>中 인생사, 신파 속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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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05

《라 트라비아타》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오페라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오페라이다. 세 손가락 중에서도 엄지손가락으로 꼽지 않을까 한다. 내용은 솔직히 말해 흔하디흔한 사랑이야기, 신파이다. 그래도 신파만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도 없다. 감정이입이 잘된다. 지혜는 상투적인 말 클리셰(Cliche) 속에 숨어 있고, 인생사는 신파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나는 이제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배우들이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것이 유행하면서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어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끔 이상한 바람이 불면 종영한지 3~4년, 때로는 5~6년 지난 한 드라마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고, 주말 동안에 그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몰아 볼 때가 있다. 이렇게 몰아 보는 것을 영어로 빈지워칭(Binge Watching)이라고 한다. Binge는 ‘폭식(하다)’이라는 뜻이다.

 

<별에서 온 그대>를 보다 눈물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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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빈지워칭도 한동안 뜸했는데 얼마 전에 또 뒷북을 쳤다. 지난 2014년에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이다. 이번에는 주말에 몰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석 달간 방영한 드라마를 1주일 만에 책거리를 했으니 빈지워칭이라 할 만 하다. 외계인이 광해군 시대의 조선으로 왔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다. 막상 보니 공상과학 신파였다.

도민준이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것만 빼고 기본 뼈대는 그냥 신파극이다. 도민준을 외계인에서 비자가 만료되어 숨어 지내다 중병에 걸려 돌아가야 하는 외국인으로 살짝 바꿔도 초능력만 빼고 나머지 이야기는 얼추 들어맞는다. 울고, 웃고, 시한부 삶에 심지어 목숨까지 거는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그 신파를 상당히 몰입해서 봤다.

한 10회 정도 봤을 때였다. 낮에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운전을 하면서 ‘다음 회에서는 도민준이 외계인이라는 것을 천송이가 알게 될까?’라고 궁금해하기까지 했다. 도민준이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던 날, 아니 돌아가는 장면을 보던 날 참 많이도 울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그렇게 꺼이꺼이 울어본 것이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두일의 죽음 이후 처음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수건으로 닦다 주체할 수가 없어 나중에는 수건을 그냥 턱 밑에 바치고 있었다. 일일이 닦기는 귀찮아도 잘못해서 자판에 눈물이 들어가면 컴퓨터가 망가질지도 모르니까. 신파의 위력을 제대로 체험했다. 

‘트라비아타’는 부유한 남성에게 몸을 맡기는 타락한 여자라는 뜻이다.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트라비아타로서 어느 남작에 기대어 풍족한 삶을 살던 비올레타가 마당에 나무를 심으면 거기에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줄 아는 고생 모르고 자란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파리 외곽으로 나가 비올레타의 재산을 팔아 마련한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알프레도와 비올레타 모두 지구인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보던 오페라,《라 트라비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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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사랑의 난제는 고향 행성이 어디냐가 아니라 알프레도의 유력한 가문이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죠르지오 제르몽이 비올레타를 찾아와 “네가 우리 아들이랑 계속 같이 살면 내 딸이 시집을 못 간다”고 이별을 종용한다. 계속 거부하던 비올레타는 결국 백기투항 한다. 마치 도민준이 겨울 낚시터에서 천송이를 일부러 매몰차게 밀어내듯 알프레도에게 “네가 싫증났다”고 거짓 편지를 남기고 파리로 돌아간다. 이에 상처받은 알프레도는 파리로 그녀를 따라가 파티가 한창인 곳에서 그녀를 모욕 준다.

비올레타는 그 후 결핵으로 알프레도만을 그리며 쓸쓸히 죽어간다. 이를 안 제르몽이 죄책감에 아들 알프레도에게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고백한다.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돌아오지만 병석에 누운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와 재회의 기쁨을 잠시 나누다 곧 숨을 거둔다.

영화 <프리티우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보며 마지막에 울던 오페라가 <라 트라비아타>이다. 거리의 여인으로서 단지 부유한 남성에 의해 고용되어 그의 전용기를 함께 타고 오페라를 보러 온 것뿐인데, 점점 그 남자에게 빠져드는 자신의 심정이 투영되었던 것일까? 그녀도 신파의 위력에 무릎을 꿇었다.

신파는 이야기가 빤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우리 주변에 한 번쯤 있었던 이야기를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빤하다는 신파 이야기를 오늘도 울고불고 해 가며 본다. 세월이 흘러 공상과학과 특수효과가 가미 되어도 사람들은 울고불고 하며 그 신파를 또 본다.

1853년에 초연한 신파극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이제 알프레도가 반바지를 입고 수영장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160년 동안 이야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야기를 사람들은 오늘도 울고불고 하며 본다. 그 어느 시대 상황과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신파이다. 신파는 세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만국 공용어니까.

 

신파, 세대를 초월하는 만국공용어

하지만 신파가 아무리 만국 공용어라 해도 마냥 똑같은 사랑 이야기만 진부하게 읊어대면 진력이 난다. 오히려 비슷한 내용이기에 매번 새로운 장치와 연출로 새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별에서 온 그대>는 신파극의 줄거리에 <어린왕자>의 분위기도 나고, 일본 만화의 냄새도 나고, 오드리 니페네거(Audrey Niffenegger)의 <시간여행자의 아내(The Time Traveler’s Wife)>의 모티브도 보인다. 여기에 훌륭한 배우들의 화려한 개인기와 현란한 특수효과라는 참신함이 만나 조화를 이뤘기 때문에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오페라도 몇 백 년 똑같은 노래만 주야장창 불러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음악, 같은 이야기 안에서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글리머글래스의 《라 트라비아타》는 훌륭했다. 첫 장면부터 파격이었다. 주로 파리의 근사한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있는 비올레타를 그리는 설정을 죽어가는 그녀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것으로 바꿨다. 화려한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의 비참한 최후를 암시하는 시작부분 오케스트라 연주와 매우 잘 어울렸다. 

글리머글래스는 이미 신선한 연출로 전 세계 오페라계의 트렌드를 바꿔놓은 전력이 있다.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이 작곡한 《타우리우스의 이피게니아(Iphigénie en Tauride)》를 공연할 때였다. 고대 그리스의 전사 오레스테(Oreste)와 필라데(Pylade)가 부상을 당한 채 적국에 잡혀와 감옥에서 서로의 우정을 다지며 위로하는 대목이 있다.

가사와 음악은 1779년 초연 때와 똑 같았지만 연출은 완전히 달랐다. 근육질의 두 남자 주역가수가 목욕 수건 두르듯 삼베 천 조각만 달랑 두르고 서로의 상처를 매만지며 물로 씻어 주는 호모에로틱(Homoerotic)한 광경을 연출했다.

함께 관람하러 갔던 우리 동네 아저씨 한 분은 자신이 늘 봐 왔던 오페라와 너무나 다른 이 광경에 분을 삭이지 못해 휴식 시간에 “Ridiculous, ridiculous(말도 안 돼, 말도 안 돼)”라고 툴툴 거리고 부인은 옆에서 “아이, 그 아이캔디들(Eye candy. 눈에 보기에 즐거운 아름다운 것 혹은 사람 특히 젊은 남자나 여자) 몸매 죽여주더라” 하며 남편을 약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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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남자들 간의 우정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주 없을 법한 이야기도 아니고, 음악과 가사를 바꾼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장면의 과장 없는 세트와 연출이 음악과 매우 잘 어울렸다. 대 호평이었다. 주역가수들의 노래도 훌륭했지만 200년 넘은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은 연출 때문이었다. 그 뒤로 오페라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 전에는 60대의 파바로티가 부동자세로 서서 20대 전사를 연기해도 노래만 잘 부르면 그것으로 만사형통이었다. 하지만 글리머글래스의 《타우리우스의 이피게니아》 이후 캐릭터에 맞는 모습의 가수를 찾아 가수가 날렵하게 칼싸움을 하며 노래하는 현실성 있는 극을 만들고자 하는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그로 인해 목소리가 몸매에 희생당해 보여 주기만 하고 들리는 것은 밍밍한 오페라 공연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니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수가 자신이 맡은 역할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오페라의 대 변혁을 불러온 《타우리우스의 이피게니아》의 연출자는 현재 글리머글래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프란체스카 잠벨로(Francesca Zambello)다. 이번 《라 트라비아타》도 그녀의 작품이다. 명불허전이다. 주역가수들도 훌륭했다. 나는 수없이 《라 트라비아타》를 봤지만, 아직도 보면서 울컥 할 때가 있다.

오페라 끝 무렵 모든 진실을 안 알프레도가 돌아왔지만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약해진 비올레타가 이렇게 외친다.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세요. 알프레도가 돌아왔어요. 난 이제 다시 살고 싶어졌어요.” 이 대목에 이르면 늘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이번 공연에서는 젊은 가수들의 열연에 그만 목이 메여 욱 하는 정도가 아니라 빵 터졌다. 하도 훌쩍거리니까 옆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휴지를 주셨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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