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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160년 된 사랑이야기 <라 트라비아타> 上 쿠퍼스 타운의 글리머글래스 페스티벌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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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02

집에서 1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하고 가면 아름다운 시골 마을 쿠퍼스타운(Cooperstown)이 있다. 우리나라 양동마을만큼은 아니라도 건물 하나하나가 사적이고 마을 전체가 사적이라 할 만한 곳이다. 올해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쿠퍼스타운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글리머글래스 페스티벌(Glimmerglass Festival)이라는 오페라 축제에 가기로 했다.

과거 로스쿨 다니던 시절 나의 하숙집 주인아저씨가 주동이 되어 온 동네 사람들이 글리머글래스에 매년 가곤 했다. 학교 졸업하고 서울의 로펌에 근무할 때도 여름에 시라큐스에 들르게 되면 함께 글리머글래스에 가곤 했다. 10년 전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동네 사람끼리 모여 글리머글래스에 가는 것도 흐지부지되었다. 나도 다시 시라큐스로 돌아왔지만, 나의 아버지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던 주인아저씨 생각에 그간 발길을 뚝 끊었다.  

올해 나의 친구 짐(Jim), 세스(Seth), 캐시(Cathy), 스티브(Steve)와 함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보러 가기로 한 건, 나로서는 꽤 힘든 결심이었다.

내 주위에 짐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대여섯 명 있는데, 그중 이 짐은 오래된 친구에 속한다. 캐시와 스티브는 부부이고, 세스는 나도 처음 만났다. 짐이 요즘 열애 중인 남자 친구다. 짐은 자신이 누군가와 연애를 하면 꼭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고, 그들과 자신의 새 애인이 모두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나와 캐시와 스티브는 아직도 짐이 사귀다 헤어진 몇몇과 페이스북 친구이다.

 

개척시대, 마지막 모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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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모히칸>의 한 장면.

쿠퍼스타운은 윌리엄 쿠퍼(William Cooper)라는 사람이 1785년에 40㎢ 정도의 땅을 사 세운 마을이다. 오치고(Otsego)라는 남북으로 7마일 정도 가늘고 길게 뻗은 호수의 남쪽 자락에 있다. 쿠퍼의 아들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는 쿠퍼스타운이 배출한 걸출한 문학가이다. 그의 5권짜리 연작소설 《레더스타킹 이야기(The Leatherstocking Tales)》는 개척 시대를 그린 역사 소설의 진수로 꼽힌다.

백인의 자손이지만 원주민들의 손에 자란 내티 범포(Natty Bumppo)라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내티 범포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여러 이름 중 하나가 ‘레더스타킹’이다. '가죽 스타킹'이란 의미의 레더스타킹은 동물의 가죽으로 발목부터 정강이를 감싸는 일종의 각반(脚絆)이다. 그가 늘 정강이에 레더스타킹을 감고 다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연작소설 중 하나가 오래전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 Lewis) 주연의 영화로 만든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이다.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맡은 역이 내티 범포이고, 나중에 죽임을 당하는 그의 원주민 친구 웅카스(Uncas)가 영화 제목에 나오는 마지막 모히칸이다. 나는 대학교 영어 시간에 <라스트 모히칸>을 읽고 영화도 봤다. 대충 이런 곳이려니 짐작이나 하면서 읽고 봤었다. 시라큐스로 이사를 온 뒤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라스트 모히칸>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뉴욕주의 주도 알바니(Albany)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갑자기 낭떠러지처럼 경사가 가파른 길이 나온다. 한참을 끝도 없이 내려가다 보면 마치 착륙 준비를 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귀가 멍멍해진다. 그러다 평지에 다다르면 그곳이 모혹 계곡(Mohawk Valley)이다.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서도 절벽에서 전투나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밑은 천 길 낭떠러지이다. 내가 21세기에 차를 몰고 귀가 멍멍해지며 운전을 하고 지나가는 곳이 바로 그 영화에 나오는 곳이다.

우리는 흔히 개척 시대 백인과 원주민이 싸우는 것을 보면 서부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서부는 캘리포니아 어디쯤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라스트 모히칸>의 시대 배경인 1750년대 미국의 서부는 알바니 서쪽이었다. 모혹 계곡은 빙하기 얼음이 녹아 흘러가서 생긴 계곡이다. 그 계곡을 따라 모혹강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 그 강은 동쪽의 허드슨 강과 합류하고, 계속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그 모혹 계곡을 따라 이리운하가 들어서며 뉴욕의 경제적 성장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 모혹 계곡에 있는 마을 중 하나가 쿠퍼스타운이다.

쿠퍼스타운은 미국 동부와 중서부를 잇는 큰 고속도로인 I-90번 도로에서 40~50분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지만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에 야구 명예의 전당(The Baseball Hall of Fame)이 있기 때문이다.

 

야구보다는 테니스

쿠퍼스타운에 가서 호텔에 체크인을 하거나 식당에 앉아있으면 직원들이 지나가는 말로 "명예의 전당 오셨나보죠?” 하고 묻는다. 그냥 늘 "네”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명예의 전당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청소년기 나는 외계인처럼 살았다. 내 친구들은 모두 야구에 미쳐 프로야구 선수들의 타율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그 대신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혼자 테니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수업이 재미없을 때는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되어 존 매켄로를 꺾고 윔블던 우승을 해 성질이 못되어먹은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상상을 했다.

테니스 생중계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이미 몇 달 전에 끝난 유명 선수들의 경기 녹화 테이프를 헐값에 수입해다가 매주 일요일 한 세트 씩 보여줬다. 그 당시 KBS에 목소리가 아주 좋고 잘 생긴 아나운서 한 분이 있었다. 근래에 돌아가신 이창호라는 아나운서다. 그분과 대우중공업 테니스 팀의 김성배 감독이 방송을 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마치 주말극 기다리듯 기다리며 봤다. 방송 끝에 짤막하게 보여 주는 다음 세트 예고편은 혹시 승부를 예상할 수 있을까 해서 더욱 열심히 봤다.

나는 지금도 테니스 광팬이다. 이제 마땅한 파트너가 없어 잘 치지는 않지만, 어느 대회 누가 몇 번 우승했는지는 다 꿰차고 있다. 이창호 선생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인터넷에 애도의 댓글도 남겼다. 야구는 아직도 별로 관심이 없다. 누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야구 중계를 보고 있으면, 채널을 바꾸자고 하든지 아니면 내가 자리를 옮긴다. 이런 사람이니 내가 20년 쿠퍼스타운을 드나들면서도 여태 야구 명예의 전당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여름 오페라 축제로 시작한 글리머글래스 폐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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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오치고 호수.

글리머글래스는 쿠퍼스타운 시내에 있지 않고, 오치고 호수를 따라 북쪽으로 7마일 정도 올라가야 있다. 근처 오치고 호수는 글리머글래스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글리머글래스라는 이름은 《레더스타킹 이야기》에서 오치고 호수를 일컫는 이름이다. 오치고 호수에 반사된 햇빛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붙은 이름이다.

글리머글래스 폐스티벌은 1975년 글리머글래스 오페라 페스티벌이라는 여름 오페라 축제로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쿠퍼스타운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푸치니의 《라보엠》 단 한편을 4회 공연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이름을 글리머글래스 페스티벌로 바꾸고 4개의 오페라를 2달간 돌아가며 공연할 뿐만 아니라 교도소 오페라 공연,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사회 저명인사들의 강연 시리즈, 개인 독창회 시리즈, 신인 발굴과 트레이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오페라 공연을 하는 메인 극장인 앨리스 부시 오페라 극장(Alice Busch Opera Theater)은 1987년에 지었다. 약 900석의 아담한 극장과 부속건물 피크닉 장소 등이 있다. 이곳은 젊고 실력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이다.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오페라 가수들 중 이곳에서 데뷔를 한 사람들이 몇 있다. 젊은 성악가들에게 앨리스 부시처럼 자그마하고 음향이 좋은 극장에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은 그들의 미완의 목소리를 보호하기에 매우 좋다. 

앨리스 부시 극장은 설계 당시부터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큰 목표 중 하나였다. 건물도 튀지 않고 소박하다. 내부에는 에어컨이나 히터가 없고 집채 만 한 선풍기만 몇 개 있다. 그나마 공연 시작하면 모두 끈다. 그 대신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 벽이 방충망으로 둘러쳐져 맞바람이 친다.

공연 시작 직전에 방음벽이 아코디언처럼 펼쳐져 벽이 된다. 휴식시간에는 다시 방음벽을 열어 맞바람으로 극장 안을 시키도록 한다. 아무래도 공연 중 홀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복장은 반바지, 반소매가 주류다. 극장 측도 이를 권장한다. 단 신발 없이 맨발로 들어온다거나 웃통을 벗고 들어오는 것은 금한다고 안내문에 쓰여 있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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