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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이재인의 투유 그림 에세이
유쾌함과 유익함의 교집합에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크리에이터. 책, 빵, 그리고 여행을 사랑하며 그에 대한 글과 그림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8. 해리포터 덕후가 다녀온 마제스틱 카페 & 렐루 서점 포르투갈 그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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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6
2019.05.16~06.12
무계획, 그러나 비장한 포르투갈 여행기

드디어 다녀왔다. 포르투를 방문하는 해리포터 덕후라면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e)와 렐루 서점(Livraria Lello)에. 마제스틱 카페는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의 일부를 작업했다 알려진 포르투의 오래된 카페이며 렐루 서점은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의 모티프가 있다 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10대 시절의 최소 1할은 해리포터와 함께였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해리포터 덕후다. 전 시리즈의 카세트테이프가 다 늘어나 재생이 안될 때까지 듣고 또 들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오디오북을 구매해 블루투스 스피커로 잠이 오지 않거나 심심할 때마다 틀어놓곤 했다. 물론 책이나 영화도 수십 번씩 봤다. 

그런 내가 포르투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기대했던 장소가 이 두 곳인 것은 당연하다. SNS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인증샷들을 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가고 말 거야!"라며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다. 그런데 프로젝트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포르투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겨우 다녀올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어땠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역시 좋았겠지?"
"음... 좋긴 좋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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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스틱 카페 : 조앤 K. 롤링은 이곳에서 어떤 글을 썼을까

 

마제스틱 카페는 '포르투의 명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산타 카라리나 거리의 초입에 있다. 이 거리엔 다양한 옷가게, 음식점, 카페 등이 모여 있다. 서울이라면 '조금 붐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사람보다 가로수가 많은 듯한 포르투에서 이 정도면 명동이라 부를 만하다.

 

 

구글맵을 볼 필요도 없이 카페를 단 번에 찾았다. 유일하게 긴 줄이 서 있는 곳이다. 이 줄은 포르투갈을 제외한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3주간 방문한 포르투의 다른 곳들과 달리 여기는 떠들썩하고 어수선했다. 영어와 프랑스어와 중국어가 큰 소리로 오가는 것을 30분 간 듣고 있으려니 벌써부터 피로가 조금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상아색 대리석과 나무 뼈대가 어우러진 외관을 보고 있자 카페 안이 기대가 됐다.

 

 

 

검은색 슈트에 금색 테의 안경을 끼고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키가 큰 남자 직원이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카페 내부는 매우 넓었지만 사람들로 꽉 차 어떤 구조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와 H는 테트리스 하듯 딱 하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구경할 새 없이 이마에 땀이 맺힌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커피가 5유로인데 실화냐."
1유로, 비싸면 2유로 주고 사 먹던 커피가 무려 5유로였다. 이 돈이면 에그타르트가 다섯 개, 크루아상이 10개였다. 과연 이름값 하는 곳이었다. 고민하다 대표 메뉴라는 프렌치토스트(6유로)와 그나마 저렴한 버거 세트(16유로)를 주문했다. 직원들은 주문받느라, 계산하느라, 새 손님 자리 배정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주문 후에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마제스틱 카페는 1921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거의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석고 바른 높은 천장, 양 벽에 설치한 화려한 나무 프레임의 거울, 보기 좋게 바랜 물결 모양의 나무 조각들이 그동안의 시간을 곱게 간직하고 있다. 

구석 자리에서 종종 냅킨에 뭔가를 메모했다던 조앤 K. 롤링은 이 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호그스미드의 '쓰리 브룸 스틱스(Three Broomsticks)'나 '호그스 헤드(Hog's Head)' 등의 상점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호그와트의 연회장을 꾸밀만한 조각상들의 모양을 고민했을까.

 

 

음식이 나왔다. 버거는 그렇다 치고, 프렌치토스트는 참...
"외로워 보이지 않냐."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토스트 하나가 접시 위에 덩그러니 있는 모습은 방금 전까지의 기분 좋은 상상을 잊게 만들었다. 맛은 있었다. 바게트는 마멀레이드 소스에 절여져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했다. 그렇지만 이 음식이 에그타르트 6개 값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버거는 뒤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난했다. 우리는 줄 서 있던 시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 식사를 했다. 카페 밖의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는 줄을 보며 여유롭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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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루 서점 : 지금까지 포르투에 이런 인파는 없었다

 

렐루 서점은 마제스틱 카페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이므로 두 곳은 하루에 묶어서 가기 좋다. 순서는 상관없지만 렐루 서점은 오후 5시 전까지는 옆 가게, 아니 옆의 옆 가게까지 다 가릴 정도로 줄을 선다는 것을 참고하자. 이를 몰랐던 나와 H는 한창 사람 많을 때인 오후 1시부터 40분 간 줄을 섰다.

 

 

렐루 서점은 마제스틱 카페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80년대부터 서점 운영을 하던 렐루 형제가 지금의 자리에서 렐루 서점을 오픈한 건 1906년이라고 한다. 무려 113년 간 포르투의 역사와 함께한 것이다. 한 세기를 견딘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관리가 잘 된 외관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눈부시지 않으면서도 밝은 색의 파사드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의 틀로 찍어낸 듯한 무늬가 있다. 연한 회색 바탕에 분홍색, 하늘색, 귤색 등의 문양이 곳곳에 찍혀 있는 모습은 동화에 나오는 아기자기한 성(城)을 떠오르게 했다.

 

 

 

내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고풍스러운 목재 인테리어가 시야에 가득 찼다. 은은한 주홍빛 조명이 웅장한 분위기 조성에 한 몫했다. 중앙엔 그 유명한 <해리포터>의 '움직이는 계단'의 모티프가 된 구불구불한 크림슨 색 층계가 있다. 네빌 롱바텀이 자주 길을 잃고 헤매던, 신입생들이 배정받은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감탄하며 건너던 바로 그 계단. 


"Excuse me. Can I go first?(=괜찮다면 먼저 지나가도 될까요?)"
아, 맞다. 여긴 인구 밀도 최고의 관광지였지. 키가 큰 갈색 머리 외국인 커플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난간 쪽으로 비켜섰다. 한 곳에 우뚝 서서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다. 3주 간 느리고 여유 있는 '포르투식 삶'에 익숙해진 나는 이 곳의 페이스가 낯설었다.

렐루 서점은 5유로의 입장료가 있다. 책을 사면 5유로만큼 할인해준다.  유럽에서 쓰는 언어 중 영어와 유치원생 수준의 프랑스어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살만한 책은 많지 않았다. 가까스로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페르난도 페소아의 영어 산문집을 찾았다. 계산대에서 서점 출입구까지 걸어가며 한 손엔 휴대폰을, 한 손엔 책이 든 종이 쇼핑백을 쥔, 나와 같은 모습의 방문객을 열 명도 넘게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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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기대가 부른 실망, 그러나 후회는 없다

포르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두 곳을 다녀왔다.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그 위로 해리포터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두 관광 포인트에. 몇 십장의 화려한 사진이 남았다. 그런데 그날 밤 사진 정리를 하며 약간의 허탈함이 느껴졌다. 방문 전에 너무 큰 기대를 한 내 탓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니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고 나 역시도 포르투의 역사나 건축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한 명의 관광객일 뿐인데 대체 무엇에, 어째서 섭섭함이 느껴지는 걸까.

 

그날 밤, 어김없이 히베리아 광장에 갔다


그건 아마 지난 3주 간 포르투의 다정함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네는 동네 주민, 어디서 왔냐며 말을 붙이는 카페 직원, 식사 후 맛있게 먹었냐며 상냥하게 질문하는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식당 매니저. 다정한 건 사람만이 아니다. 히베리아 광장 한 복판에 앉아 공상을 하고 있노라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토실토실한 길고양이들, 끊이지 않는 기타 연주, 언제나처럼 내리쬐는 강한 햇빛과 선선한 강바람. 

그래서 사담 없이, 눈 맞춤 없이 매뉴얼대로 일하는 직원들과 마주하는 게, 두 눈 대신 휴대폰 액정에 순간을 담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고 섭섭했던 것이다. 

Q. 시간을 돌린다면 가지 않을 건지.
A. 네? 아뇨. 저는 이 실망감과 섭섭함도 싫지 않은데요. 

이번 여행에서 달고 사는 책이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백번 공감 가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실망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랴. 

이 날의 경험을 통해 내가 포르투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은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됐다. 이 또한 여행의 일부이며, 경험하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했을 소중한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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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이재인 일러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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