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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자몽하다, 수박하다, 포도하다 라는 말이 있다고? 탐험대원 '다온'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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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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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방송 화면 캡처.

 재 방영 중인 KBS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우리말 ‘자몽하다’의 뜻을 유추하는 장면이 나오자 해당 용어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까지 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자몽하다’를 딱 들으면 과일 이름을 붙인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화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큼하면서도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내는 과일인 자몽을 떠오르게 하는 ‘자몽하다’는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두 단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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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하다’는 과일 이름이 아닌 형용사로 ‘스스로 자(自)’와 ‘어리석을 몽(夢)’이 결합된 한자어이다. ‘졸릴 때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과일과 해당 단어의 뜻에서 유사한 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생소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단어 ‘자몽하다’가 큰 인기를 얻자 이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글에서는 과일 이름 혹은 채소 이름과 소리가 같은 단어들이 접미사 ‘-하다’와 함께 만들어 내는 단어들을 살펴보려 한다. 시원한 과일을 먹으며 가볍게 얻어 갈 수 있는 우리말의 새로운 세계를 함께 느껴보며, 익숙한 소리에 낯선 의미가 담긴 단어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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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가장 먼저 살펴볼 과일은 여름철 과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박’이다. 수박과 접미사 ‘-하다’가 합쳐진 ‘수박하다’는 무슨 의미일까? ‘수박하다’는 ‘가둘 수(囚)’와 ‘묶을 박(縛)’이 결합된 한자어이며 ‘붙잡아 묶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비슷한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포도하다’는 ‘도망갈 포(逋)’와 ‘도망갈 도(逃)’가 결합된 한자어인 경우에는 ‘(사람이) 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다’라는 의미를 갖지만, ‘잡을 포(捕)’와 ‘도둑 도(盜)’가 결합된 한자어인 경우에는 ‘도둑을 잡다’는 의미를 갖게 되어 앞의 단어와 상반된 뜻을 갖는다. ‘수박하다’라는 단어와 ‘포도하다’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를 가진 단어를 함께 연결하여 ‘경찰이 포도한 사람을 수박했다’와 같은 재미있는 예문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외에도 ‘배하다’는 ‘절 배(拜)’와 접미사 ‘-하다’가 결합되어 ‘조정에서 벼슬을 주어 임명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편, ‘감하다’는 ‘감’이 ‘거울 감(鑑)’인 경우는 ‘어른이 살펴보다’의 의미를, ‘헤아릴 감(勘)’인 경우는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여 다스리다’의 의미를, ‘덜 감(減)’으로 쓰일 때는 ‘물체의 길이나 넓이, 부피 따위가 본디보다 작아지다’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감’이 가진 의미에 따라서 ‘감하다’는 여러 상황에서 쓰일 수 있다.

‘사과하다’ 역시 우리가 익숙하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위의 단어들과 연관 지어서 ‘과일 이름’과 같은 소리를 가진 단어에 접미사 ‘-하다’가 결합된 동사의 한 예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사과한다는 의미에서 ‘사과합니다’라는 말 대신에 과일인 ‘사과’를 건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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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펴봤던 단어들 대다수가 한자어였다면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단어들도 살펴볼 수 있다. 바로 ‘망고하다’와 ‘매실매실하다’가 그 예이다. 먼저 ‘망고하다’는 ‘연을 날릴 때에 얼레의 줄을 남김없이 전부 풀어주다’, ‘살림을 전부 떨게 되다’, ‘어떤 것이 마지막이 되어 끝판에 이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어떤 일이 다 끝나서 그 일로부터 자유롭게 된 상황에서 ‘망고 땡’이고 표현하는데 이때 ‘망고’가 바로 그 ‘망고’다. 이 외에도 ‘매실매실하다’는 ‘사람이 되바라지고 반드러워 얄밉다’라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이다.   

과일 이름뿐만 아니다. 사실은 ‘오이, 대추, 무’와 같은 채소 이름과 접미다 ‘-하다’가 결합되어 ‘오이하다, 대추하다, 무하다’와 같은 우리말도 존재한다. 이 외에도 또 다른 과일 혹은 채소와 같은 소리,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들은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모든 단어들은 과일 혹은 채소의 이름과 동음이의어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데 동음이의어 관계에 놓인 한 쪽, 즉 과일 혹은 채소의 이름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진 쪽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단어의 소리를 듣고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 혹은 야채의 이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어의 뒤에 숨어 있는 더 많은 단어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였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자몽하다’ 덕분에 ‘수박하다, 포도하다, 배하다, 감하다, 오이하다, 대추하다, 무하다’ 등등 더 많은 숨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친구들 뒤에 더 많은 친구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리고 또 다른 숨은 친구들은 없을까 궁금해졌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신기한 매력을 가진 우리말. 올 여름, 여름이 선물한 과일을 먹으며 가족과 함께 우리말 피서를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다온(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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