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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별빛 아래 사는 사람들 여덟살 제나리안이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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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8

그림의 시작은 오로라 같은 밤하늘을 그리는 것이었다.

나이 많은 언니가 수채화 물감을 이용해 다양한 색을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번지게 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걸 지켜보던 아이가 “저도 저거 가르쳐주세요” 했다. 조금 어려울 듯했지만, 워낙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라 한번 시범을 보여주니 금방 따라 한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물감을 골랐다. 짙은 남색과 보라색, 주황색이 번지며 서로 어울거리더니, 물에 젖은 도화지는 금새 신비로운 기운으로 물결을 이루었다. 

신비로운 바탕을 보곤 아이는 별 밤을 떠올렸다. 화려한 밤하늘에 금색 별들이 잔뜩 흩뿌려진 별 밤 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황금색을 중심으로 노란색과 흰색을 더해 붓으로 물감을 뿌리기 시작했고, 도화지는 눈부신 별빛이 더해져 그야말로 눈부신 밤하늘이 되었다.

 

"별을 보기 위해 마을을 이룬 사람들이에요"

그다음 아이는 붓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 하늘 아래 도화지의 반을 차지할 만큼 넓게 땅을 그렸다. 땅의 색도 화려하다. 에머랄드색, 황금색, 남보라색 등이 지층처럼 구불대며 땅을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황금색 땅의 층이 가장 두껍다. 마지막으로 검정 도화지에 아주 작은 집들을 색연필로 그린 뒤, 그걸 오려서 땅의 젤 윗부분에 붙여놓았다. 반짝이 종이도 집 모양으로 잘라 검정 집들 옆에 나란히 붙여놓으니, 별 밤 아래 집들이 예쁘게 늘어서 있는 마을이 되었다. 하늘도, 별들도, 그리고 마을도 눈부시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별을 보기 위해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땅이 넓어도 아래에는 집을 놓으면 안돼요. 사람들이 별을 봐야 행복한데, 땅 아래쪽은 별이랑 멀어서 잘 안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젤 위에 별이랑 가깝게 이렇게 한 줄로 세운 거예요. 별이랑 가장 가까이 있어야 별을 볼 수 있잖아요!”

그림을 다 그린 뒤 아이가 내게 한 말은 그림보다도 더 눈부셨다.

“그런데 별을 보다가도 가끔 심심해지면, 집에서 나와 땅 아래로 내려와요. 여기 아래 황금색 있는데가요, 황금 굴이거든요. 그 굴로 별을 보던 사람이 내려와서 굴을 캐서 동그랗게 빚어서 밖으로 내놓아요. 그럼 그것이 밤사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또 하나의 별이 돼요.”

아이는 이 말을 증명하듯이 아주 작은 금색 구슬을 황금 굴이 시작되는 지점에 한 개 붙여놓았다. 하늘에도 그 구슬들은 물감으로 만든 별들 옆에 붙어 있었다. 하늘의 황금 구슬들은 단지 별의 표현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붙여놓은 것인 줄 알았다. 얼핏 보면 잘 보이지도 않은 땅의 황금 구슬 한 개는 실수로 붙여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동굴 밖으로 빚어낸 구슬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슬 한 개를 땅 가운데(가운데 큰 검정 집 아래쪽) 붙이고 그 구슬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것을 표현하려고 작은 금색 구슬들을 밤하늘에 여기저기 붙여 놓았던 것이다.

별을 보기 위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고, 그러다가 별 보기가 심심해질 때면 아래로 내려와 황금 굴을 파서 밖으로 내놓아서 그것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기 기다리는 사람들. 어쩌면 이리도 빛나는 생각을 이 어린 꼬마가 할 수 있을까? 동화 같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여러 아름다운 색을 번지게 하는 기법 하나로부터 출발해 상상해 낸 것이다.

“이 마을엔 그럼 누가 살고있어?”
“선생님요!”
“나?”
“네! 그리고 제 친구들요.(그리곤 친구들 이름을 나열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랑 저도 같이 살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젤 가운데 이 큰 집에 살아요. 왜냐면요,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예요. 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살고 있어요. 아름다운 거 그리는 사람들요.”

순간, 순수한 눈부심의 아름다움이 오로라처럼, 별빛처럼 아이와 나의 주위를 에워싸며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그림을 보며 별빛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모두 갖고 있는 별빛을 말이다. 우리 안의 황금 동굴을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별빛이다. 그리고 별빛 같은 우리는 우리 안의 황금 동굴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때때로 스스로 별을 빚어 하늘에 띄운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의 별빛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 별빛은 무엇일까? 우리가 빚어내는 별은 어떤 별인가?

이렇게 찬란한 황금 동굴을 각자 안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혼탁함 때문에 혹시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별도 못 빚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본다. 만일 그렇다면 빨리 그 뿌염을 닦아내고 별을 빚을 수 있는 황금 동굴로 들어가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얼른얼른 닦아내보자. 

스스로가 별빛인 우리들이 우리 안에서 또 빚어내는 별들을 하늘에 띄워야 한다. 우리도 빛나고 하늘의 별도 빛나며 그렇게 빛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오늘 밤도 내일 밤도 우리가 띄운 별들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찬란하게!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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