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한 날! 下 몬테주마 야생동물 보호구역, 피츠포드 빌리지 아이스크림...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7.05

차를 몰고 몬테주마로 들어가자 나와 알란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차 창문을 열었다. 날씨가 더웠지만 몬테주마에는 시원한 바람이 상쾌한 공기를 타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에어컨도 끄고, 라디오도 껐다. 새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붉은어깨검정새(Red-Winged Blackbird)가 여러 마리 내 차 창 앞으로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마시(습지)나 스왐프(늪지)의 풀숲에 알을 낳는 새이다. 손바닥만 크기에 온몸이 까만데 날개에 빨간 줄이 마치 페인트칠을 해놓은 듯 선명해서 붉은어깨검정새라 부른다.

KakaoTalk_20190705_161008135.jpg

어린 시절 자주 보던 제비가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서울에도 제비가 늘 찾아왔다. 그들은 붉은어깨검정새보다도 훨씬 더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제비는 날아가는 속도가 시속 60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매우 빨리 나는 새이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날 때면 제비들이 고속도로 바닥에 바싹 붙어 날아오다 차 바로 앞에서 수직으로 상승해 멀리 날아가곤 했다. 나는 늘 제비가 차에 치어 죽을까 봐 겁이 났지만 그들은 한 번도 내 눈 앞에서 차에 부딪혀 죽은 적이 없다. 그때는 안전벨트가 있어도 아무도 착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고속도로에서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앞좌석에 앉아 제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몬테주마의 전 지역이 모두 대중에 공개된 것은 아니고 극히 일부만 차로 돌아보고 나가거나 산책로를 따라 걸을 수 있다. 차로 도는 코스는 딱 하나인데 습지 주위로 빙 둘러 5킬로미터 정도 된다. 앞에 산이나 언덕이 없는 평지에 나무도 별로 없이 수풀뿐이라 저 멀리 고속도로에 차 지나가는 것이 다 보인다.

습지 둘레 즉 원주가 5킬로미터 정도이니 대충 2πr=5000이라고 놓고 이항시켜 계산을 해보았다. 지름이 1.7킬로미터 정도 된다. 워낙 해본 지 오래 된 일이라 계산이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거리가 그렇게 틀릴 것 같지 않다. 몬테주마 자동차 코스로 들어서서 2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빤히 보이는 눈앞에 인간문명 세계가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어찌 보면 습지와 풀밭만 있는 싱거운 곳이 몬테주마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들어가던 순간부터 감동이 북받쳐 올랐다. 사막과도 같은 인간문명 세계 바로 옆에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마시가 펼쳐진다.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오아시스 같은 곳. 몬테주마는 그런 곳이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고고씽!

자동차 코스에는 군데군데 차를 세워 놓고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을 만한 곳이 여러 곳 있다. 차에서 내리니 웬 큰 새 한 마리가 황망히 도망가고, 작은 새 두 마리가 큰 새를 마구 쪼아대며 쫓아가고 있었다. 큰 새가 남의 둥지를 엿보다 새끼 키우는 작은 새 부부에게 들킨 것이 분명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모두를 용감하게 만드나보다. 평소에 큰 새 앞에서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기 바쁜 작은 새들이 부모가 되면 돌변한다.

풀숲 넘어 늪에는 큰 왜가리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었다. 왜가리도 종류가 여럿 있는데 내가 조류에 관해 그리 박식하지 못해 잘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헤런(Great Blue Heron)이 아닐까 했다. 알란에게 물었으나 맨해튼 도시 촌놈이 알리 만무했다.

KakaoTalk_20190705_161007980.jpg

몬테주마 마시의 자동차 코스가 고속도로와 맞닿는 북쪽 자락에 웬만한 집보다 큰 미국의 상징 새 흰머리독수리 상이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늘 보게 되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몬테주마에 온 사람들은 모두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차에서 한 번 더 내려 사진을 찍었다. 다시 차로 돌아가다 늘 먹을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내가 알란에게 물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면 피츠포드 낙농장(Pittsford Farms and Dairy)이라고 아이스크림 유명한 집이 있는데 거기 가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갈까?”

순간 알란의 눈이 빛났다. 독수리 상에서 조금 더 운전을 하고 가 몬테주마 자동차 코스 끝에 다다르면 차들은 되돌아 갈 수 없이 보호구역 밖으로 빠져 나가게 되어 있다. 그간 포장되지 않은 길을 천천히 운전하며 유유자적 경치를 구경했는데, 나의 운전이 점점 빨라졌다. 몬테주마를 빠져나와 아이스크림을 향해 돌격했다.

 

피츠포드 빌리지의 바닐라 아이스크림

시라큐스에서 1시간 20분 정도, 몬테주마에서는 40분 정도 가면 피츠포드(Town of Pittsford)라는 곳이 있다. 행정구역상 시(City)가 아닌 타운(Town)이다. 시보다는 조금 작은 규모라는 뜻이다. 그 안에 행정구역상 빌리지가 하나 있다. 피츠포드 빌리지(Village of Pitssford)이다. 201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피츠포드 빌리지의 주민이 2000명도 되지 않는다.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가 길다. 1687년 프랑스군과 캐나다 식민지군이 이곳에 살던 세네카 부족의 원주민들을 공격해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세네카 부족이 영국 편에 섰다는 것이 이유다. 마치 조선이 청나라와 가까워진다고 깡패들을 시켜 대궐에 난입해 왕비를 살해한 일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위이다. 그 야만적 침략행위 이후에도 계속 영국인, 프랑스인, 원주민 등이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

18세기 말엽 이 지역이 노스필드(Town of Northfield)라는 이름으로 처음 독립된 마을이 되었다. 후에 우리의 이장쯤 되는 타운 수퍼바이저(Town Supervisor) 케일렙 홉킨스(Caleb Hopkins) 대령이 자신의 고향인 버몬트주의 피츠포드를 따 이름을 피츠포드로 개칭했다. 피츠포드 빌리지 안에 피츠포드 낙농장이 있다.

피츠포드1.jpg

피츠포드 낙농장에 들어서면 커피와 함께 자신들이 생산한 유제품과 직접 구운 과자를 파는 카페가 있다. 피츠포드 낙농장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 카페의 역사를 알 수 있다. 현재 카페로 사용하는 곳은 1814년 사무엘 힌드레스(Samuel Hindreth)라는 사람이 지은 자신의 집이다. 1860년대 자비스 로드(Jarvis Lord)라는 사람이 집을 사고 주변 농장 세 개를 구입했다. 1888년 로드가 헐리(Hawley) 일가에게 농장과 집을 팔고 헐리 일가가 낙농장을 시작해 오늘날까지 주인만 몇 차례 바뀌고 계속 낙농장으로 있다.

알란은 아몬드가 잔뜩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나도 뭔가 와작와작 씹히는 아이스크림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래도 그냥 바닐라를 시켰다. 모든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베이스에 바닐라만 넣은 것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다른 여러 맛이 들어가지 않아 풍부한 유지방의 향을 느끼기에는 그 어떤 아이스크림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좋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유명한 피츠포드 낙농장의 고품격 유지방 향을 맡으려고 바닐라를 주문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밖으로 나가 앉았다. 아이스크림은 살짝 녹아야 유지방 향이 더욱 풍부하게 난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빨리 녹으라고 더운 실외에 나가 앉기로 했다. 맛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 대학 때 피자를 배달 시켜 식지 않게 먹으려고 그 더운 텍사스 여름에 에어컨을 끄고 피자 상자를 꼭꼭 닫아가며 한 조각씩 꺼내 먹은 적도 있다.

피츠7.jpg

나이들수록 기본을 찾는 이유

말랑해진 아이스크림을 한입 물고 미장공이 벽에 시멘트 칠을 하듯 아이스크림을 입천장에 대고 혀로 이리저리 밀었다.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나의 체온을 만나 폭포처럼 녹아내렸다. ‘, 이 찌~인한 유지방 냄새!’ 하며 미소를 지었다.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봐 따봉소리도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나이가 드니까 점점 이렇게 기본적인 것이 좋아진다. 커리어에 미쳐 일만 하던 사람들이 죽어갈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사로 승진하려 애쓰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서 읽었다. 나이가 들고 주변에 하나 둘 세상을 떠나니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초콜릿 맛, 커피 맛, 딸기 맛을 찾는 사이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점점 기본이 소중해진다. 가족과 친구가 더 소중해지고, 아이스크림도 바닐라가 좋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상추 없이, 쌈장 없이 그냥 고기만 소금 찍어 오직 고기 맛을 느끼며 먹고, 쌈장 없이 상추만 따로 한 입 베어 무는 것이 맛있다. 소스 없이 먹는 음식처럼 소스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을 뒤로 하고 다시 카페로 들어가 다른 제품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첫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실 때는 늘 헤비크림을 넣어 마신다. 우리가 마시는 우유는 균질화(Homogenize)하여 유지방이 우유와 한데 섞여 있다. 하지만 이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개발한 공법이고, 우유를 짜면 우유와 유지방이 분리되어 유지방만 우유 위에 둥둥 뜬다. 헤비크림은 우유의 지방을 건져 모은 것으로 한국에서 파는 생크림 혹은 휘핑크림과 비슷한 것인데 한국 제품보다 더 진하고 걸쭉하다.

영어 슬랭으로 커피를 (Joe)’라고 한다. 모닝커피도 모닝조(Morning Joe)’라고 한다. 아침 6시에 시작하는 미국 케이블뉴스 시사프로그램 중에 전 하원의원이었던 조 스카보로우(Joe Scarborough)가 진행하는 모닝조(Morning Joe)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이름과 아침 커피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제목이다. 매일 아침 나는 모닝조에 피츠포드의 헤비크림을 넣어 마시며 모닝조를 시청한다.

 

저렴하게 즐기는 나만의 사치, 모닝커피

아침 커피는 내가 가장 저렴하게 즐기는 사치이다. 커피 마시며 시사 프로그램 30분 정도 보는 것이 또 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주는 활력소이다. 그래서 원두나 기계도 내가 까다롭게 고른다. 헤비크림은 늘 피츠포드 낙농장의 것을 고집한다.

헤비크림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자란 동네 소의 신선한 젖을 받아 소량으로 만들어 인근에만 공급하는 유제품은 유지방의 향이 격이 다르다. 피츠포드의 생크림을 그냥 한 숟가락 먹어 보면 끝에 달달한 맛이 남는다. 다른 생크림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맛이다.

피츠포드 낙농장은 규모가 크지 않은 농장이라 겨울에는 젖이 잘 나오지 않아 헤비크림이 시라큐스까지 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옆 동네를 뒤져서라도 웬만하면 피츠포드의 크림을 사다 아침마다 커피에 넣어 마신다. 한번은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나가 눈이 쌓인 시라큐스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미친 듯 헤비크림을 찾아 헤매고 다닌 적도 있다. 기왕 피츠포드를 방문한 김에 헤비크림도 한 병 샀다. 앞으로 당분간 걱정 없이 커피에도 넣어 마시고, 요즘 제철인 딸기에도 뿌려 먹을 수 있겠다.

피츠포드 빌리지는 1825년부터 이리운하가 지나가던 곳이다. 20세기 초 운하를 더 깊고 넓게 개조해 현재는 시민들이 요트를 띄운다. 또 운하 주변에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미국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San Antonion)라는 도시에는 샌안토니오강 주변으로 리버워크(Riverwalk)라는 공원이 있고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그곳에 가면 리버워크에 있는 식당에서 텍스멕스(Tex-Mex, 텍사스 식 멕시코 음식)를 사 먹는 것이 중요한 관광 코스이다.

피츠8.jpg

피츠포드도 비슷한 분위기이다. 우리의 청계천과도 비슷한데 식당이 물가에 인접해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피츠포드 낙농장을 나와 운하가 있는 공원으로 갔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 식당 중 하나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싶었으나 알란도 나도 여의주만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해치운 직후라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게다가 피츠포드 생크림이 상할까 봐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점심은 생략하고 사진만 몇 장 찍고 집으로 향했다.

 

된장과 와인, 그리고 우정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알란이 뉴욕을 제대로 본 느낌이다라고 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알란도 로스쿨 다니러 동부로 와 맨해튼에서 직장 잡고 살았기 때문에 업스테이트 뉴욕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맨해튼만 보고 뉴욕을 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뉴욕주 맨 남쪽 끝에 붙은 조그만 맨해튼을 벗어나면 뉴욕주는 광활한 자연이 살아 숨쉬고, 목장과 밭이 지천에 널려 있는 풍경으로 바뀐다.

집에 오니 아이스크림이 다 꺼져 배가 고팠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조금 쉬다 알란을 공항으로 데려다 줬다.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는 유붕자원방래는 공자가 멀리서 학문을 논하고자 찾아온 이들을 반기며 한 말이다. 법학 교수와 변호사가 만나 하루 반 동안 학문 이야기는 거의 없이 대화의 70퍼센트가 먹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고 즐거웠다.

알란을 공항에 떨궈주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결국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친구가 있는 것, ‘유붕(有朋)’이 재산이다. 그래서 난 한국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몇 시간 운전하고 가서 얼굴이라도 꼭 보고 온다. 시라큐스로 온다면 우리 집에 재우고 먹이며 하루를 함께 지낸다. 된장과 사람은 오래될수록 맛이 난다. “Like fine wine, friendship gets better with age.” 우정은 훌륭한 와인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맛이 든다. 된장과 와인과 우정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지. 그게 행복이니까.

    

 

 

 

이철재 미국 변호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