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한 날! 上 내 오랜 친구 알란(Alan)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7.05

올해는 웬 비가 이리도 오는지 봄에 새로 사다 심은 꽃들은 물 한 번 주지 않았는데 쑥쑥 잘도 큰다. 뒷마당에 세워 놓은 우량계를 봤더니 1주일 동안 비가 2인치나 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다 토요일이 되자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 찾아왔다. 뉴욕시에 사는 친구 알란(Alan)이 놀러온다고 해 집 청소를 했다.

알란은 뉴욕시에 있는 한 대학의 로스쿨 교수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다들 나와 로스쿨 동창이거나 변호사 일을 하다 알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알란과 나는 친한 사이인데 워낙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낸 탓에 언제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둘 다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한다. 로스쿨 동창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변호사 일 때문에 알게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알란은 오보에를 연주하는 연주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전에 내가 한동안 속해 있던 음악 모임에서 알게 된 사이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어디 파티에 갔다 만나 서로 취미와 직업이 비슷하다 보니 친해졌을 수도 있다.

좌우간 이런 알란이 학회 때문에 금요일에 시라큐스에 왔다. 공항에서 그를 태워 호텔에 내려줬다. 토요일 오후에 학회 끝나면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 하루 묵으며 일요일에 우리 집에서 1시간쯤 가면 있는 몬테주마 야생 보호지역(Montezuma Wildlife Refuge)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알란이 오랫동안 한번 구경하고 싶던 곳이라고 했다.

사람이 온다면 먹을 것 걱정부터 하는 나를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늘 내가 가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뭐 먹간(뭐 먹을래)?” 하고 평안도 말로 묻곤 하셨다. 알란과 먹을 저녁거리로 무엇이 좋을지 살펴보러 토요일마다 서는 파머스 마켓 장에 나갔다. 알란은 내가 만드는 갈비찜의 팬이다. 내가 갈비찜을 만들거나 아니면 다른 비슷한 한국 음식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었겠지만, 워낙 한 주간 정신없이 바빠 갈비찜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로즈1.jpg

 

시금치냐, 마늘종이냐

이 시기 시라큐스에는 갖은 제철 과일과 야채가 풍성하다. 나의 단골 브랜든(Brandon)이 무공해 시금치를 가지고 나왔는지 찾아갔다. 브랜든은 금요일에 야채를 수확해 토요일에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무척 싱싱하다. 특히 그의 시금치는 내가 가장 즐기는 야채이다. 물론 토요일에 사오면 주말이 가기 전에 다 먹어 치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때 금방 먹지 못해도 냉장고에서 1주일 넘게 싱싱하게 있다. 갓 수확한 시금치 안에는 스스로의 양분이 많아 보존도 더 오래 할 수 있다.

역시나 마켓에는 브랜든의 싱싱하고 새파란 시금치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늘종도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마늘종은 마늘의 꽃대이다. 우리가 먹는 마늘은 뿌리이다. 이 꽃대를 잘라주지 않고 꽃이 피게 놔두면 뿌리의 양분을 모두 빼앗아 마늘이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꽃대가 올라오면 꽃이 피기 전에 잘라서 먹는 것이다. 꽃대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올라오고 끝이기 때문에 마늘종 시즌은 매우 짧다. 이번 주에 사지 않으면 다음 주에는 없을 수도 있다. 있다 해도 마늘종이 억세질 수 있다.

시금치와 마늘종 사이에서 고민하다 둘 다 사가지고 왔다. 마늘종과 마늘을 올리브기름에 볶다 거기에 삶은 카넬리니빈(Canellini Beans, 흰강낭콩) 통조림을 하나 뜯어 넣고 스파게티와 시금치를 넣은 뒤 그 위에 페코리노로마노(Pecorino Romano) 치즈를 뿌려 저녁으로 해먹기로 했다.

집에 와보니 브랜든이 어찌나 마늘종을 많이 담아 줬는지 파스타를 30인분은 해먹을 듯했다. 저녁에 먹을 것만 조금 남기고 나머지는 마늘종 장아찌를 담갔다.

 

시칠리아식 파스타, 따라해 보았습니다

알란도 나처럼 국수 귀신이 붙은 사람이라 아주 잘 먹었다. 마늘과 마늘종을 볶다 콩을 넣고 파스타 삶은 물을 두 국자쯤 부은 후 설익은 스파게티를 그 안에 넣고 계속 삶다가 시금치를 마지막에 넣었다. 서빙하기 직전에 날 시금치를 한 움큼 더 넣고 접시에 담았더니 익은 시금치에 사각거리는 시금치가 더해 내가 맛을 봐도 참 맛이 있었다.

사실 이 음식은 내가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남부 이탈리아 특히 시칠리아 지방에서는 이렇게 종종 먹는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탈리아인들도 그린즈 앤드 빈즈(Greens and Beans)라고 해서 콩과 야채를 함께 요리해 그냥 먹기도 하고 파스타와 섞어 먹기도 한다. 야채는 꼭 시금치가 아니고 그날 장에 가서 가장 싱싱한 야채를 사다 사용한다.

토마토는 원래 유럽에서 자라지 않는 식물이다.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정복자)가 토마토를 남미 특히 페루에서 유럽으로 가져다 심었는데 이탈리아의 기후와 토양이 토마토와 찰떡궁합이라 이탈리아 하면 토마토 생각부터 나게 되었다. 이탈리아 산마르자노(San Marzano) 지방에서 나는 토마토는 껍질이 얇고 씨가 적어 토마토소스를 만드는데 최고의 토마토로 꼽힌다. 토마토가 이탈리아에 전래된 것을 1500년대 정도로 추정한다. 그 이전에 파스타는 토마토 없이 먹었다. 그린즈 앤드 빈즈 파스타가 토마토를 사용하는 소스보다 훨씬 더 오래된 레시피가 아닐까 한다. 파스타를 샤도네이 와인과 곁들여 먹고 그것도 모자라 웨그만즈 수퍼마켓에서 사온 디저트까지 먹고 잔뜩 부른 배를 달래며 일찍 잤다.

로즈2.jpg

 

손든파크의 로즈가든

다음날 몬테주마로 가기 전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정도 가는 곳에 있는 손든파크(Thornden Park)라는 공원에 들러 장미 구경을 했다. 손든파크는 원래 19세기 오스트롬(Ostrom)이란 사람이 소유한 농장이었다. 그래서 공원 정문 앞을 지나가는 길 이름도 오스트롬 애비뉴이다. 오스트롬이 이 농장을 시라큐스에서 소금 광산업으로 큰 부자가 된 하스킨스(Haskins)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것을 다시 20세기 초 시라큐스시가 사들여 공원으로 만들었다. 1960년대 시 재정 상태가 나빠지면서 공원이 더러워지고, 범죄와 매춘의 소굴이 되었다. 설상가상 공원에 자라던 느릅나무에 병이 돌아 나무들이 죽어 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공원 주변 이웃들이 나서 공원에 느릅나무 대신 단풍나무를 심고 공원을 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시가 공원 예산을 늘려 공원을 단장하면서 이제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손든파크의 명물은 로즈가든이다. 1924년에 공원 입구에 크게 장미 꽃밭을 만들었다. 6월은 시라큐스의 장미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다. 매년 6월에 하루 날을 잡아 장미 축제를 여는데 알란과 내가 손든파크를 찾아간 날은 그 장미 축제 4일 뒤였다. 장미가 절정에 달한 시기에 공원을 방문한 것이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3000여 그루의 갖가지 장미들이 만발한 공원에 들어서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손든파크의 장미 꽃밭은 가운데 큰 정자가 하나 있고 사방으로 장미 밭이 방사선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드론으로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마치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이 장미들은 시라큐스 장미협회(Syracuse Rose Society)의 자원봉사자들이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가꾼다. 장미는 생각보다 강인한 식물이다. 뿌리만 살아남아 시라큐스의 혹한을 견뎌내고 봄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새싹을 틔운다. 하지만 일단 생장을 시작하는 봄부터 동면에 드는 늦가을까지는 끊임없는 관심과 정성을 요구하는 매우 도도한 식물이기도 하다. 양지바른 곳을 선호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물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줘야 한다. 거름도 자주 줘야 한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이파리만 나오고 그냥 멀뚱멀뚱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 피고 진 꽃을 일일이 뜯어주지 않으면 피다 말고 파업에 들어가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

장미가 파란 이파리만 내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사람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다. 반대로 장미가 손든파크의 로즈가든처럼 한가득 피어 있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정성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로즈가든의 만개한 장미를 보자니 시라큐스 장미협회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참으로 놀랍다.

몬테즈마1.jpg

몬테주마 야생 보호지역

손든파크의 로즈가든을 떠나 몬테주마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 정도였다. 일요일이었지만, 시간이 일러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몬테주마 야생 보호지역은 40제곱킬러미터의 습지이다. 영어로 습지는 스왐프(Swamp) 혹은 마시(Marsh)라고 하는데 몬테주마는 나무들이 많이 사는 스왐프보다는 풀 종류가 주로 사는 마시이다.

몬테주마가 있는 곳은 핑거레이크스(Fingerlakes)라는 지역이다. 핑거는 손가락이고 레이크는 호수이다. 손가락처럼 길고 가는 호수가 여러 개 있는 지역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업스테이트 뉴욕은 빙하기 동안 얼음이 산처럼 뒤덮고 있던 곳이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흘러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물줄기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간 곳은 계곡이 되었고, 그 물줄기들은 모여 강이 되어 계속 흘러갔다. 하지만 수만 년 육중한 얼음에 짓눌려 지반이 내려앉은 곳은 구덩이가 되어 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호수가 되었다.

핑거레이크스도 그렇게 생긴 호수들이다. 그리고 호수 주변으로 호수의 물이 스며들어 늘 축축하게 젖어 있는 마시(marsh,습지)가 생겼다. 이것이 몬테주마 마시이다. 마시는 생태계 보호와 복원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몬테주마 마시만 해도 비버, 여우 등 포유류와 왜가리, 오리, 거위 등 조류의 낙원이다. 또한 왕나비(Monarch Butterfly)가 매년 날아드는 곳이다.

왕나비는 뉴욕주와 캐나다 등지에 찾아와 여름을 지내며 번식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4~6주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왕나비가 멕시코에서부터 2~3개월에 걸쳐 날아온다는 것이다. 오는 도중 알을 낳고 이전 세대는 죽는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며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에 도착한다. 북쪽에 도착한 세대는 또 알을 낳고 죽기를 반복하는데 마지막으로 태어난 세대는 완전히 체질이 다른 나비가 태어난다.

이들은 8개월을 살며 캐나다와 미국 북동부에서 멕시코까지 두 달에 걸쳐 날아가는 것도 모자라 그곳에서도 죽지 않고 겨울을 나며 산다. 그리고 봄에 텍사스 근처로 올라와 알을 낳고 죽는다. 또다시 알을 낳고 죽으며 북으로, 북으로 향하는 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왕나비는 서식지 파괴로 인해 그 개체수가 점점 줄어든다. 나도 왕나비 보호 운동에 참여한답시고 마당에 왕나비 애벌레의 식량인 밀크위드(Milkweed)를 심어놓아 우리 집 마당에도 늘 왕나비가 많이 온다. 하지만 그건 보호라고 할 만한 수준도 못되는 것이다. 몬테주마 서식지는 왕나비 개체 수 보존에 수훈갑이라 할 수 있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