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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맞춤법 오류와 비문투성이 탐험대원 '다온'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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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2

 

대통령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위의 문장을 살펴보자. 이 문장에서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아마 올바른 맞춤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가 아니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가 올바른 문장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나올 법한 위와 같은 맞춤법 오류는 단순히 어느 사이트에 나와 있는 비문이 아닌 대한민국 헌법에 쓰여 있는 헌법 조항 중 하나이다. 한 나라의 최고법을 정리한 책에 위와 같은 맞춤법 오류가 있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여러 조항들 중에서 비문에 속하는 것은 한두 개에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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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관련하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국립국어원에 의뢰해 현행 헌법의 문법, 표현, 표기 적절성을 검토한 결과 전체 137개 조항 중 111개 조항에서 오류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단 26개의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이 모두 맞춤법에 어긋나는 비문이라는 의미이다. 부적절한 문장 구조, 과도한 피동, 부적절한 조사나 어미의 사용 외에도 뜻이 분명하지 않거나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우, 어렵거나 불필요한 한자어를 사용한 경우, 부자연스럽거나 번역 투의 말투를 사용한 경우 등 헌법에 나타나는 비문을 여러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1) 헌법 제52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2) 헌법 제674부자연스럽거나 번역 투 문장 사용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대표적으로 위에 제시한 두 문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1번 문장은 피동 표현이 어색하다.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는 문장보다는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해야 한다로 고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2번 문장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 번역 투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어서 표현 면에서의 개선이 요구된다.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라는 표현보다는 대통령 후보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여러 헌법 조항이 국한문이 혼용되어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글 전용 원칙을 규정한 국어기본법등과 불일치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 어떤 사람들은 헌법에 문법적인 오류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여태까지 별 문제 없이 사용해 왔다의미도 달라지지 않는 띄어쓰기 때문에 개헌 필요성은 없다고 여길 수 있다. 헌법 조항들에 나타나는 오류들을 굳이 다 고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헌법 문법적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헌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평소 당신이 정말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은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된 사건을 다룬 글을 발표했다.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당신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런데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당신은 그러므로 저는 이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반듯이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와 같은 문장을 보게 된다. 당신은 이러한 비문을 읽으며 당황할 것이며 앞서 제시되었던 그의 논리정연한 논거들을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듯 사소한 글 하나에서의 맞춤법 오류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한 국가의 기초가 되는 헌법에서 다수의 맞춤법 오류가 검출된다는 것은 결국 헌법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오류를 발견했는데도 고치지 않는 행위는 결국 또 다른 오류들을 만든다. 몇몇 사람들은 헌법 조항을 전문가밖에 보지 않으며 의미상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에 오류들을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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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질문은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한 학생의 궁금증이다. ‘헌법 조문이 틀렸을 것 같진 않지만과 같이 헌법은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신뢰가 가는 대상이다. 그래서 그 조문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위의 질문처럼 자신의 의문을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그들은 헌법에 쓰인 조문대로 맞춤법을 외우게 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오류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법과 정치라는 과목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만큼, 헌법 조문들을 직접 확인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다. 필자 또한 수능을 보기 위해 헌법 조항들을 몇 번이고 찾아보곤 했다.

   맞춤법은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국가 통치의 기본원리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으로 작용해야 하는 헌법이 이렇게 오류투성이라면 헌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가치를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

 

다온(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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