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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혈액순환 이론을 처음 주장한 의학자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 4. 1 ~ 1657.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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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03
그림 신로아

혈관을 따라 혈액이 온 몸을 순환하는 과정은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혈액은 산소와 양분을 신체의 각 기관에 공급하고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회수하여 처리한다. 혈액이 이동하는 힘의 원천은 심장에 있다.

심장은 0.8초에 한 번씩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그로 인해 생기는 압력의 변화가 혈액을 이동시킨다. 심장의 동맥 혈관을 따라 나온 혈액은 전신의 모세혈관으로 퍼졌다가 정맥 혈관을 통해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간다.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혈압을 체크하고 운동하며 때로는 혈액 순환 약을 복용하기도 하면서 건강관리에 힘쓴다. 정맥 주사나 수혈 같은 치료도 혈액의 순환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혈액이 전신을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수긍되기 시작한 것은 윌리엄 하비에 의해서다. 그는 1578년 영국의 작은 어촌(포크스턴)에서 토머스 하비(Thomas Harvey)와 부인 요안 호크(Joan Hawke)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캔터베리의 킹스 스쿨(King's school)을 졸업하고 16세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가 의학부 교양 과정을 마친 그는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유럽의 의학은 갈레노스(Claudius Galenus)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혈액은 간에서 생성되어 손이나 발과 같은 말단부에서 소멸되며, 심장의 좌심실과 우심실을 구분하는 벽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있어서 혈액이 드나든다. 이는 사실과 다른 것이지만, 1400년 동안이나 굳건한 이론으로 서양 의학을 지배하고 있었다.

파도바 대학의 의학자들은 갈레노스의 이론을 수정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선봉장은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였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23세에 파도바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543년 상세한 인체 해부도를 실은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출간하여 해부학의 새 장을 열었다.

베살리우스의 동료 교수였던 레알도 콜롬보(Realdo Colombo, 1516~1559)는 심장 판막을 연구하고 혈액 폐순환(심장에서 양쪽 폐로 혈액이 이동하는 순환)을 주장했으며, 그들의 제자인 파브리치우스(Hieronymus Fabricius, 1537~1619)는 정맥 판막1)을 발견하고 혈액 흐름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 그렇지만 그들은 갈레노스의 의학 이론을 존중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갈레노스의 이론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관찰 결과를 해석하고자 했다.

1) 판막 :정맥 혈관을 흐르는 피가 한쪽 방향(분지에서 줄기 쪽으로)으로 흐르도록 하는 밸브 장치로 동맥에는 판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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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살리우스 ≪De Humani Corporis Fabrica;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에 실린 인체 뼈와 정맥도. 출처: 베르살리우스 ≪사람 몸의 구조≫ 그림씨. 2016

파도바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윌리엄 하비는 영국으로 돌아와 국왕 제임스 1세(James Ι)의 주치의였던 랜슬럿 브라운(Lancelot Browne) 경의 딸 엘리자베스(Elizabeth)와 1604년에 결혼하였다. 이후 작은 병원을 열고 의료 활동을 하던 하비는 1607년에 왕립의사학회 정회원이 되었고, 1609년 성 바르톨로메오 병원(St. Bartholomew’s Hospital)의 의사가 되어 36년 동안 봉직했다. 1615년에는 왕립의사회의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럼리 강좌(Lumleian lecture)의 강사를 맡아 해부학을 강의했고, 1618년에는 제임스 1세의 특별 주치의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하비는 의료 활동과 연구 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두꺼비, 개구리, 뱀, 물고기, 게, 새우, 달팽이, 갑각류 등의 생체 해부와 관찰을 통해 ‘동물의 혈액은 전신을 순환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1628)≫에 실렸다.

그의 혈액 순환 이론은 생생한 관찰과 정량적 계산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살아 있는 투명한 새우의 심장 박동을 관찰하거나 성숙한 달걀의 껍데기를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미지근한 물에 담가서 알을 관찰하는 방법은 심장 박동과 혈액의 흐름의 알아내는 데 효율적인 관찰 연구 방법이었다. 그는 심장의 1회 박동에 의해 방출되는 혈액의 양을 추산하고 일정한 시간 동안 심장 박동 횟수를 곱하여, 유통되는 혈액의 총량을 계산했다. 그 결과로 얻어진 혈액량은 사람이 하루에 섭취하는 음식량으로는 생성할 수 없는 값이었다. 혈액의 유통량이 생성량보다 크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비는 혈액은 소멸하지 않고 신체를 순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팔뚝 결찰사 실험(팔뚝을 실로 묶어 혈액의 흐름을 관찰하는 실험)을 통해 정맥을 흐르는 피의 방향이 기존의 갈레노스 이론과는 반대라는 사실도 밝혔다. 이는 혈액이 신체 말단부로 흘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 쪽을 향하여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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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의 결찰사 실험. 그림 출처 : wikimedia.org

고무줄을 이용하여 적당한 세기로 팔뚝을 묶으면 심장 쪽으로 향하는 정맥혈의 흐름이 차단되기 때문에 팔뚝 아래쪽의 정맥 혈관이 부풀어 오르게 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고무줄을 세게 잡아당겨 팔뚝을 질끈 동여매면 정맥이 부풀지 않고 오히려 아래쪽의 손이 창백해진다. 그 까닭은 정맥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자리한 동맥혈의 흐름도 차단되기 때문이다. 하비는 부풀어 오른 정맥 혈관의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눌러 흐름을 차단한 뒤에 정맥의 피를 짜내듯이 훑어 밀어 올리고 눌렀던 손가락을 떼면 피가 아래쪽에서 위쪽 방향으로 빠르게 채워진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하비의 관찰과 실험은 누구나 손쉽게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었고 해석과 이론은 타당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적이고 냉소적이었던 당시의 의사들은 하비의 이론을 쉽사리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왕립의사회 회원 중에는 ‘동맥이 두터운 이유는 생명의 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고, 심장은 맥박을 자극하는 미덕(美德)을 가지고 있으며, 근육은 자유 의지(意志)를 가지고 있으므로 심장이 의지와 상관없이 뛰는 것은 모순이다’라며 비과학적인 논문을 발표한 사람도 있었다. -이와 같은 논란은 하비가 사망하고 30년이 흐른 뒤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마르첼로 말피기(Marcello Malpighi)가 현미경을 이용하여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모세혈관을 발견함으로써 종식되었다.-

1642년 8월,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 1642~1651)이 발발했다.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패하고 민생을 도외시하며 의회의 결정도 무시하는 잉글랜드 왕가에 대한 반감으로 터진 내전이었다. 내전은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이끄는 의회파의 승리로 끝이 났고 찰스 1세는 1649년 1월 대역죄로 참수되었다. 왕당파였던 윌리엄 하비도 직장을 잃고 가택에 보관하던 연구 문서가 불타는 고초를 겪었지만 용케 위기를 넘기고 연구 활동을 지속했다.

1649년에는 혈액 순환이 빠르면 내분비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비판 논문에 대한 반박 자료로 ≪혈액 순환에 관한 두 가지 실험≫을 발표했으며, 1651년에는 병아리 부화 과정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동물의 발생에 관한 연구≫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그해 하비는 자신의 재산을 왕립의사회에 기부하여 의사회 건물과 도서관을 짓고 연례 강연의 경비에 쓰이도록 했다. 그의 기부로 시작된 왕립의사회 연례 강연(하베이언 연설, Harveian Oration)은 1656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비는 통풍과 신장결석,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다가 1657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하비가 주장한 인체 혈액 순환의 과정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보다 상세하게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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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네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우심방, 우심실, 좌심방, 좌심실이 그것이다. 혈액은 온 몸을 돌며 양분을 공급하고 ①상대정맥과 하대정맥을 통해 ②우심방으로 복귀한다. 상대정맥은 혈액이 상체(머리, 팔) 부위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통로이고, 하대정맥은 하체(복부, 다리) 부위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통로이다.

우심방으로 들어온 혈액은 우심방의 수축에 의해 ③우심실로 이동한다.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는 방실판막(房室瓣膜, 삼첨판;三尖瓣)1)이 있어서 혈액을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제어한다. 우심실이 수축하면 반달판막(반월판;半月瓣)2)이 열리고 우심실의 혈액이 ④폐동맥으로 이동한다. 폐동맥을 통해 폐로 이동한 혈액은 이산화 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흡수하여 정화된 후 네 개의 ⑤폐정맥을 통해 ⑥좌심방으로 들어온다.

좌심방이 수축하면 방실판막(이첨판;二尖瓣)이 열리고 혈액이 ⑦좌심실로 이동한다. 좌심실은 온몸으로 혈액을 내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 강한 힘으로 수축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좌심실 근육의 두께는 우심실보다 훨씬 두껍다. 좌심실이 수축하면 반달판막이 열리면서 ⑧대동맥을 통해 혈액이 방출된 후 온몸을 순환하게 된다.

1)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있는 방실판막은 3개의 고깔모자(三尖;삼첨)가 맞물린 형태여서 삼첨판(三尖瓣)이라 부르고,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의 방실판막은 2개의 첨판으로 되어 있어서 이첨판(二尖瓣)이라고 한다.
2) 반달판막: 우심실에서 폐동맥으로 나가는 길목과,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반달 모양의 판막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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