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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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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찍어 천상계의 조화를 풀어낸 천문학자 上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년 12월 27일 ~ 1630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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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2
그림 신로아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지동설)은 1543년 그의 책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를 통하여 알려졌다. 그렇지만 당시 그의 지동설은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해로부터 28년 뒤에 태어난 요하네스 케플러는 태양계 행성들의 운동에 관해 부인할 수 없는 3개의 법칙을 발견하여 불완전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확고한 진리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케플러의 업적은 당대 최고의 천문 관측학자였던 티코 브라헤의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덴마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12세부터 코펜하겐 대학 등에서 공부했으며, 16세부터는 천문 관측을 시작했다. 그는 1572년 카시오페이아자리 근처에서 신성(新星)1)을 발견하고 《신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한 후 1574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덴마크의 국왕이었던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는 티코에게 스웨덴 영토에 가까운 벤 섬(Ven island)을 하사해 천문대를 짓도록 지원했다. 티코는 벤 섬의 중앙부에 천문대 우라니보르(Uraniborg)와 지하 관측소 스째른보르(Stjernborg)를 건설한 후 사분의, 육분의, 적도의, 아밀러리, 엘리데이드2)등 다양한 관측 장비를 이용해 정교한 관측을 하였고 방대한 분량의 천문 자료를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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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니보르 천문대(좌)와 스째른보르 지하 관측소. 출처: 키티 퍼거슨 《티코와 케플러》오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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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분의, 아밀러리, 대형 적도의(왼쪽부터). 출처: 키티 퍼거슨 《티코와 케플러》오상. 2004

1)신성(新星, Nova) :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별. 신성은 별의 폭발에 의해서 밝기가 수만 배로 증가했다가 점차 어두워진다.

2) 사분의 :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원을 사등분한 각도기 
  육분의 : 원을 육등분한 각도기
  아밀러리(amilary) : 천체의 상대적 위치를 측정하는 도구. 지평선 기준으로 측정한 천체의 위치를
                           천구 적도 또는 황도 기준으로 변환할 수 있는 도구
  엘리데이드(alidade) : 클로버 모양의 가늠쇠가 달린 천체 관측 장비

 

티코 브라헤는 행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고, ‘티코 시스템’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신만의 태양계 운동 이론을 만들었다. 지구를 제외한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회전하고, 태양은 지구를 회전하는 형태의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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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12월 27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부근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바일 시의 시장이었고, 아버지 하인리히는 계약직 용병이었다. 케플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는 잔인하고 부도덕하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수다스러우며 호전적이고 밝지 못하며, 할아버지는 방탕한 사람이었고, 할머니는 증오에 가득 찬 거짓말쟁이였다. 케플러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어린 동생과 함께 친척집에 맡겨졌다. 그의 부모는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났다가 1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부모가 집을 비운 시기에 케플러는 천연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고 시력 장애마저 생겼다. 어린 동생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고뭉치로 성장하다가 아버지가 그를 팔아버리겠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십대 초반에 도망친 후 떠돌이 인생을 산 것으로 전해진다.

16세기는 종교개혁이 일어나 구교인 가톨릭과 개신교인 루터교, 칼뱅교 등의 여러 세력이 대립하며 혼란한 때였다. 루터교도였던 케플러의 가족은 1576년 레온베르로 이사하였고 케플러는 그곳에서 독일어 학교를 다녔는데, 그곳의 선생님들은 똑똑한 케플러를 라틴어 학교로 전학시켰다. 그렇지만 8~10세 때는 부모의 지시로 학업을 중단하고 힘든 농사일을 해야 했다. 1584년에는 아델베르 중등 신학교 입학 허가를 받아 공부했고, 2년 후에는 말브론(Malulbronn) 고등 신학교에 진학하여 2년 동안 공부했다. 그 무렵 케플러의 아버지 하인리히는 용병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났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가출하여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케플러는 1587년 10월에 튀빙겐 대학에 등록했고, 이듬해 졸업시험에 응시하여 학사 자격을 먼저 획득한 후 신학부에서 2년 동안 공부하는 특이한 학업과정을 거쳤다. 천문학 담당 교사 미카엘 매스틀린(Michael Mästlin)은 일반 학생들에게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가르쳤지만, 케플러에게는 특별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소개하고 가르쳐 주었으며 평생 스승의 역할을 했다.

케플러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으나 그라츠 신학교의 요청에 의해 튀빙겐 대학이 그를 추천함으로써 수학교사로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라츠(Graz: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지역 수학자로 임명되어 천문력과 점성학 예언 연감을 제작하는 직무를 맡게 되었다. 케플러는 1595년 점성력을 제작하면서 혹한, 전쟁, 농민 봉기 등을 예언했는데 신기하게도 전부 적중하여 상여금을 받고 연봉도 올랐으며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1597년 4월 케플러는 7세 딸이 있는 미망인 바르바라 뮐러(Barbara Müller)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 무렵에 케플러는 우주의 기하학적인 배열에 대해 철학적인 접근을 하다가 플라톤의 완전 입체와 연관되는 신비로운 현상을 알아내고 《우주의 신비, Mysterium Cosmographicum》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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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완전 입체란 변의 길이가 같은 면으로 구성된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의 5개를 말한다. 케플러는 책의 서문에서 ‘지구의 공전 궤도에 정십이면체를 외접시키면 이를 둘러싸고 있는 원이 화성의 공전 궤도가 되고, 화성의 공전 궤도에 정사면체를 외접시키면 이를 둘러싸고 있는 원이 목성의 공전 궤도가 되며, 목성의 공전 궤도에 정육면체를 외접시키면 이를 둘러싸고 있는 원이 토성의 공전 궤도가 된다. 또한 지구의 공전 궤도 안으로 정이십면체를 내접시키면 이를 둘러싸는 원이 금성의 공전 궤도가 되고, 금성의 공전 궤도 안으로 정팔면체를 내접시키면 수성의 공전 궤도가 된다’라고 설명하였고, 스승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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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주의 신비≫ 키티 퍼거슨 ≪티코와 케플러≫ 재인용

 

다면체 이론은 태양을 중심점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으므로 케플러의 책을 읽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는 이를 지지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지동설)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어떠시냐?’라는 취지의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썩 내키지 않았는지 답장하지 않고 오랜 세월을 침묵했다.

한편, 덴마크에서는 성인이 된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 1577~1648)가 1596년 8월에 정식으로 왕위 대관식을 가졌다. 선대왕 프레데릭 2세는 이미 8년 전에 사망했지만, 왕위 계승자인 크리스티안 4세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동안 추밀원이 정국을 운영해 왔던 터였다. 왕위에 오른 크리스티안 4세는 티코 브라헤의 영지 일부를 박탈하고 우라니보르 천문대의 소유권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티코는 점성술사로 오랜 기간 왕실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마치 왕과 동격이 된 듯 거만하게 굴었던 터라 새로 즉위한 왕의 호의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티코 브라헤는 21년 동안 거주하던 벤 섬을 포기하고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왕궁이 바라보이는 자신의 저택에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왕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철거 지시가 떨어져서 다시 짐을 싸야만 했다. 

결국 티코 브라헤는 함부르크 변방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신 천체 운동론》을 집필한 후 일꾼들을 시켜 프라하의 세력가들에게 일일이 책을 전달했다. 신성로마제국3)의 황제 루돌프 2세에게 자신의 가치를 알려서 프라하로 입성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의 계획은 성공하였고 루돌프 2세의 호출을 받아 프라하로 이동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수학자는 우르수스(Ursus)로 과거에 티코의 천문대에 머물면서 티코의 자료를 훔쳐 ‘티코 시스템’을 자신의 이론인 양 책을 냈고 티코에 대해 저질스런 인신공격4)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는 티코가 프라하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반도주했다.

3) 신성로마제국 : 926~1896년 독일 제국의 명칭

4) 티코는 십대 초반에 팔촌 형제와 결투하다가 코의 일부가 잘렸기 때문에 코 모양을 본뜬 금속 보형물을 붙이고 살았는데, 우르수스는 이를 두고 ‘티코는 얼굴에 구멍이 세 개라서 이중성을 식별할 수 있다’라고 자신의 책에다 썼다.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는 지저로우(Jizerou) 강 근처의 베나트키(Benatky) 성을 티코에게 하사하고 세습 영지와 연금 지급도 약속했다. 1600년 티코는 자신의 천문대로 케플러를 초대하는 편지를 보냈다. 케플러는 프라하로 이동하여 티코를 만났고 처음에는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티코는 케플러를 의심하고 경계하여 오랫동안 천문 관측 자료의 일부만을 보도록 통제했다. 결국 케플러의 실력을 인정한 티코는 그를 루돌프 2세에게 소개하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황제의 이름을 딴 ‘루돌프 표5)’를 만들기로 하고 그 편집 작업을 케플러에게 맡긴 것이다.

5) 루돌프 표 : 관측자의 위도와 경도에 따라서 그 위치가 다르게 보이는 천체들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할 수 있고 행성들의 운행 경로를 예측하여 미래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는 표.

황제는 케플러에게 급여 지급을 약속했고, 티코는 자신의 관측 자료를 모두 케플러의 손에 맡겼다. 그때부터 티코는 사교 파티에 자주 참석했다. 케플러의 기록에 의하면, 티코는 1601년 10월 한 귀족의 만찬에서 술을 마시고 예의를 차리느라 소변을 너무 오래 참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방광이 터진 듯 소변을 볼 수 없었고 열흘 동안 고열과 정신착란을 겪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티코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루돌프 2세는 케플러를 제국의 수학자로 임명했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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