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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센트럴 뉴욕에 봄 오는 소리 下 피에르 푸르니에와 파르메산 치즈, 풍기파스타…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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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가 되면 내가 가장 기다리던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겨울에 눈이 와도 웬만하면 거르지 않고 눈 쌓인 길을 뚫고 가는 곳이 영어로 Famers’ Market이다. ‘농부들의 장’이라는 뜻인데 인근 농장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겨울 장은 여러 건물을 모두 폐쇄하고 딱 두 개 동의 건물에 단열 벽을 내리고 장사를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쇠고기, 닭고기, 계란 등을 가져오는 웬디(Wendy), 커피를 볶아 가져오는 앤드류(Andrew), 맥주를 담가 가져오는 살(Saul), 아프리카 기니만(Gulf of Guinea)에 있는 가나 출신으로 그곳 전통의 땅콩강정(Peanut Brittle)을 만들어 가져오는 앤디(Andy), 갖가지 파스타를 파는 존(John) 등 1년 내내 부스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만 오기 때문에 손님도 별로 없고 스산하다. 그래도 나는 매주 가서 신선한 계란과 커피, 땅콩과자 등을 사가지고 와서 1주일을 지낸다.

하지만 5월 첫째 토요일이 되면 단열 벽을 모두 열고 뻥 뚫린 공간에서 여름장을 시작한다. 화훼농장들이 트럭에 봄꽃들을 가득 싣고 와 여기저기 부스를 차려 장바닥은 활기를 띤다.

이번 5월 첫째 토요일 나는 서울에서 돌아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또다시 서울 행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나의 단골 꽃집들인 마크(Mark)와 레베카(Rebecca)에게 겨울 동안 잘 지냈는지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아침 일찍 장으로 향했다.

 

에디를 추모하여 심은 샤스타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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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농장에서 꽃을 가져다 파는 사람들은 많지만 마크와 레베카 두 집에서 꽃을 주로 사는 이유는 둘 다 1년생 꽃보다는 다년생 꽃을 가져다 팔기 때문이다. 나는 한 해 피고 죽어버리는 꽃은 보람도 없고, 왠지 슬퍼서 별로 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레베카는 원래 남편인 에디(Eddie)와 농장을 경영하고 장에도 늘 같이 오곤 했다. 헌데 작년 봄 몇 개월 만에 처음 봤더니 에디는 오지 않고 레베카만 왔다. 에디는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레베카는 잠시 망설이다 겨울 사이 죽었다고 했다. 에디는 췌장암 환자였다.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선고를 받고 8년을 살았는데 자기는 10년을 넘겼다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더니 작년 늦여름부터 기운이 없어보였다. 그래도 겨울 사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은 몰랐다.

에디를 기억하며 우리 집 뒷마당에 레베카가 겨울 동안 남편 간호하며 온실에서 키운 샤스타데이지(Shasta Daisy)를 사다 심었다. 레베카에게 올해도 그 샤스타데이지의 새순이 나오고 있다고 말해줬다. 레베카는 고맙다고 하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도 나의 눈도 촉촉해졌다.

반면 중국인 아내가 키운 꽃들을 장에 내다 파는 마크는 떠벌이다.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 “헤이” 하며 고함을 쳤다. 나도 달려가 반갑게 악수를 했다. “내일 서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고 그냥 인사 하러 왔다”고 했더니 자기 보러 일부러 왔냐고 하며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었다. 둘이 서서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마크 사진만 한 장 따로 찍고 서울 다녀와서 보자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지구 종말이 와도 파스타는 먹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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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담가 파는 살은 자신이 직접 호프를 여러 종류 재배해 그것으로 맥주를 만든다. 5월 첫째 토요일쯤 되면 호프의 새순을 판다. 우리는 봄이 되면 두릅나무의 새순을 꺾어 입맛 없는 봄날에 별미로 먹는다. 호프의 새순도 봄 별미이다. 두릅의 순이 굵어지고 가시가 돋으며 쇠면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다음 봄을 기다려야 하듯 호프도 지금 먹지 않으면 내년에나 먹을 수 있다. 맛은 두릅처럼 강한 향은 없지만 무 같은 맛이 약간 나고 맥주를 만드는 호프이다 보니 끝 맛이 쌉쌀하다. 서울 다녀오면 호프 순은 이미 다 쇠 버리고 없을 것이다. 호프 순을 딱 한 단만 샀다.

호프 순을 사는 순간 갖가지 버섯을 넣은 풍기 파스타(Funghi Pasta)를 만들어 거기에 오븐에 넣어 구은 호프 순을 먹기 좋게 썰어 섞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섯을 사야 했다. ‘곰팡이의 열매(Fruit of the Fungi)’라는 이름의 버섯 농장은 무공해 재배한 버섯을 금요일에 따서 토요일에 장에 가져온다. 농장주인 KC와 직원 제시(Jesse)가 번갈아 장에 물건을 가져오는데 그날은 제시가 버섯을 가지고 조금 늦게 도착해 부스를 차리는 중이었다. 그들의 표고버섯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데 어찌나 싱싱한지 기둥도 함께 조리해 먹어도 질기지 않고 맛있다.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그리고 영어로는 Lion’s Mane 즉 ‘사자의 갈기’라는 버섯을 샀다. ‘사자의 갈기 버섯’은 우리말로 찾아보니 노루궁뎅이버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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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에 존의 파스타 부스에 들러 파파르델레(Pappardelle)를 1파운드 샀다. 파파르델레 파스타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유래한 파스타로 파스타 중 가장 넓적한 파스타이다. 파파르델레는 주로 밀가루와 물로 만드는 스파게티와 달리 계란을 넣어 반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봄 인사나 하겠다고 장에 왔건만 서둘러 장을 떠날 때는 장바구니가 그득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내일 서울로 떠나야 해도 오늘 저녁밥은 해 먹어야 하는 법.

 

파르메산 치즈와 피에르 푸르니에, 풍기파스타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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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에 파스타에 넣어 먹을 파르메산 치즈를 사기 위해 그리스 식료품점 타노스(Thano’s)에 들렀다. 타노스는 그리스에서 온 이민 1세 디미트리오스가 운영하다 지금은 이민 1.5세대인 그의 딸 쑬라(Sula)가 물려받아 하고 있다.

쑬라는 늘 영화 《나의 빅 팻 그릭 웨딩》의 여주인공 툴라(Tula)를 예로 들며 자신을 “툴라 쑬라”라고 소개를 해서 모두 그녀의 이름을 쉽게 기억한다. 쑬라는 파르메산 치즈 두 가지를 얇게 저며 맛을 보라고 줬다. 하나는 1파운드에 9달러이고 다른 하나는 20달러라고 했다. 둘 다 맛이 있었는데 20달러짜리가 좀 더 숙성되어 사각사각하고 끝에 약간 아린 맛이 있어 매우 좋았다. 내가 왜 20년간 파르메산 치즈만큼은 타노스를 고집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치즈였다. 좀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으면 됐다고 20달러 주고 1파운드를 샀다. 파르메산 치즈 한 번 사면 냉동실에 얼려 놓고 한국과 미국을 오갈 때 들고 다니며 요긴하게 먹으니 별로 억울할 것은 없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맛있는 파르메산 치즈를 덩어리째 구하기도 쉽지 않고, 있어도 훨씬 더 비싸니 말이다. 

나는 몇 십 년을 태평양을 건너 한국과 미국을 오고갔지만, 아직도 서울만 간다면 가슴이 설렌다. 비행기 안에서는 열 몇 시간을 밥 먹는 시간 빼고 거의 자면서 가니 도착하면 허리가 아픈 것 빼고는 남보다 수월하게 여행을 한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싫어하는 것이 짐 싸는 일이다. 마음먹고 싸면 30분 정도면 쌀 수 있는 짐을 하루 종일 싼다. 이번에도 짐 가방 꺼내 놓고 장에 다녀오고, 옷 한 벌 가방에 넣고 집 대청소 시작하고 이런 식이었다. 장에 다녀와 빨래하고, 대청소 하고, 짐 조금 싸다 말고 이번에는 풍기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와인을 잔에 따르고,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을 켰다. 하이든의 협주곡을 듣는 것은 나의 음식 만들 때의 습관이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첼리스트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urnier)의 연주로 골랐다. 피에르 푸르니에는 내가 좀 더 일찍 태어나지 못 한 것을 안타까워하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다. 너무 늦게 태어나 그의 연주를 한 번도 라이브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그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 그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

내가 만드는 파스타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왜냐하면 내가 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마토소스도 별로이고 크림소스는 더 별로이다. 삶은 파스타를 올리브기름에 볶다 파르메산 치즈와 후춧가루를 넣은 것이 제일 맛이 있다. 물론 나는 국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니 소스가 많다고 파스타를 사양하는 일은 없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때는 소스를 넣어도 매우 적게 넣는다. 나의 이웃인 모리스 아저씨는 늘 파스타 다 먹고 접시에 남은 소스 빵으로 빡빡 긁어먹는 재미도 크다며 소스 좀 풍성하게 넣어 달라고 한다. 손님이 오면 파스타를 비벼 접시에 담고 소스를 따로 그릇에 담아내어 원하는 사람들은 더 부어 먹도록 한다.

풍기 파스타도 크림소스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단 버터는 약간 넣는다. 버섯의 맛을 풍부하게 해주고 버섯이 노릇노릇하게 익도록 돕기 때문이다. 버터는 유지방과 유고형분(Mild Solid)으로 이루어졌는데 유고형분이 낮은 열에서도 잘 탄다. 그래서 전문적인 업소에서는 버터를 약한 불에 녹여 유고형분을 가라앉힌 후 위에 있는 맑은 지방만 덜어내 조리에 사용한다. 이를 정화된 버터(Clarified Butter)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팬을 달굴 때 올리브기름과 버터를 함께 넣으면 잘 타지 않는다.

따라놓은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파르메산 치즈도 조금 잘라 같이 먹었다.  

 

나만의 비밀스러운 파스타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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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파스타 요리들은 대부분 무척 간단하다. 우선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넣고 끓을 때 파스타를 넣는다. 이탈리아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이 늘 하는 말이 파스타 삶는 물은 바닷물 맛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소금을 팍팍 넣고 국수를 삶으라는 말이다. 파스타를 삶는 동안 팬에 올리브기름과 버터를 넣고 달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놓은 버섯을 넣고 볶는다. 버섯은 팬에 넣자마자 소금을 넣으면 수분이 한꺼번에 빠져나와 질척해진다. 한참 볶아 수분을 많이 증발시키고 버섯이 노릇하게 익으면 그때 소금을 넣고 조금 더 볶다 파스타 삶은 물을 아주 약간, 쥐 눈물만큼만 넣는다.

파스타 삶은 물은 평양냉면 집에서 주는 면수처럼 풀기가 있어 소스와 국수 그밖에 부재료들이 서로 겉돌지 않게 해준다. 파스타를 너무 풀어지지 않게 삶아 건진 뒤 버섯이 있는 팬에 넣고 같이 1~2분정도 볶아준다. 불을 끄고 파르메산 치즈를 그레이터에 갈아 위에 뿌리고 올리브기름을 약간 넣어 마구 저어 모든 재료가 골고루 섞이게 한다. 여기에 후추를 조금 뿌리고 올리브기름과 소금을 뿌려 오븐에 구워낸 호프 순을 먹기 좋게 썰어 그 위에 얹으면 다 된 것이다.

참고로 파르메산 치즈를 덩어리로 사면 가장자리는 숙성 과정에서 치즈가 딱딱하게 굳어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치즈가 말라 굳은 것이라 그 안에 파르메산 치즈의 맛이 농축되어 있다. 이것을 버리지 말고 얼려두었다가 수프 끓일 때 한 덩어리씩 넣고 푹 같이 고아 주면 수프의 풍미를 배가할 수 있다. 수프가 완성된 뒤 씹다 만 검처럼 축 늘어진 파르메산 치즈 덩어리를 냄비에서 건져 질근질근 씹어 먹는 것은 주방에서 조리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버섯과 치즈 사이로 향긋하게 퍼지는 깔깔한 호프 순을 씹으며 오랜만에 창문을 열었다. 아마 지난겨울 문을 모두 닫은 후 처음인 듯했다. 프루니에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은 이미 끝났고, 버섯 볶는 소리도 사라졌고, 조용해진 집안에 송버드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마치 악보를 다 알고 있듯이 부르는 노래. 창밖에는 나뭇잎들이 연녹색으로 돋아나고, 목련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가녀린 이파리와 아리따운 꽃망울은 어떻게 저렇게 두꺼운 나뭇가지를 뚫고 나올까?’ 하고 생각했다. 그게 봄의 힘이다. 아, this, too, shall pass. 그 지리했던 겨울도 가고 센트럴 뉴욕에도 봄이 오는구나.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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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정경욱   ( 2019-05-24 ) 찬성 : 2 반대 : 0
올리브기름과 버터를 함께. 잘 배우고 갑니다. 살 -> Salvatore or Salv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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