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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열여덟 한이가 어린 시절에 남긴 이면지 그림들 숨길 수 없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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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6
배한이 作

한이는 일러스트 작가를 꿈꾸는 여고생이다. 그 꿈답게 한이가 그리는 그림들은 참으로 예쁘고 따뜻하며 순수하다. 이런 친구가 어린이 시절 그렸던 그림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 년 중 사랑에 대하여, 감사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오월의 어느 날, 한이는 나의 궁금증에 답하며 어릴 적 그림들을 잔뜩 가져다가 보여주었다. 이면지 가득 그려낸 연필 그림들은 무척이나 많았는데, 그럼에도 모든 그림에는 한가지 공통된 이야기가 흘러갔다. 바로 ‘따뜻한 마음’이었다. 이 친구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따뜻하고 행복한 그림들로 이면지들은 물결을 이루었다. 

그중 하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엄마가 딸의 머리를 쓰담으며 미소를 띤 채 뭔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딸과 엄마는 온화한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고, 그 옆 좌우로 출연한 조연 같은 캐릭터들의 약간 장난 어린 동작들은 이 그림을 더욱 사랑스럽고 생기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커다란 나무의 형태를 만드는 왼쪽 위의 나뭇잎 형태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나무기둥, 그리고 다시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나무뿌리에 이르기까지, 전체 나무 형태의 선이 커다란 하트의 반쪽 같다.

아이가 의도하고 이렇게 그려 넣지는 않았겠지만, 중심에 있는 두 인물의 사랑의 따뜻함과 함께 그 둘을 담고 있는 배경이 나무가 아니라, 사실은 따뜻한 하트 반쪽 같다. 그리고 그 하트 중심부의 비어있는 공간은 이 인물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공간으로 느껴진다. 예쁜 연핑크 하트를 이야기 그림으로 풀어내라 하면 이것이 정답인 듯한 그런 그림이다. 보는 순간, 그림 속 등장 인물들의 부드러운 미소가 보는 사람에게도 베이게 하는 따뜻함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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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배한이의 어린 시절 作

 

또 하나의 그림이 있다. 우는 아이를 엄마가 포근히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그림이다. 평범한 일상이다. TV가 왼쪽으로 보이고 오른쪽 구석엔 소파가 보인다. 집에서 엄마가 아이를 다독이고 있는, 어느 집이고 한번쯤 있을 법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정서는 아이의 슬픔이 아니다. 엄마의 사랑이다. 엄마의 눈 감고 있는 따뜻한 표정 속에서 우리는 아이가 곧 마음을 위로받고 슬픈 감정을 털어내리라 기대할 수 있다. 아니, 확신할 수 있다. 엄마의 이해심 많은 표정은 아이를 감싸 안은 두 팔의 부드러움의 정도까지 전달해준다.

이 두 팔은 위의 그림에서의 나무 모양 하트 반쪽 같다. 하트 같은 나무의 선과 그 안의 빈 공간이 이 엄마의 두 팔이 되어 아이를 감싸 안아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늘 그렇게, 나무처럼 든든하게 아이 옆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나무처럼 든든하지만 오월의 바람처럼 부드럽고, 굵고 긴 뿌리를 지니고 있어서 아이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준다. 그 속에서 아이는 정서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이 된 한이가 바로 이렇게 자랐을 것이란 믿음은 바로 이 메모리 칩같은 그림들의 단상을 통해 갖게 된다.

이렇게 그림은 때론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면지 뒤에 끄적거린 그림들이 어쩌면 제일 정직하고 제일 고백적이고, 그래서 우리를 더 공감하게 하는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10살 된 아이의 그림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통해 또 하나 느끼는 것은 행복과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렇게 일상에서의 소소한 눈 마주침, 안아줌,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미소짓는 여유라는 것. 이것이 오늘 오월의 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사랑의 마음이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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