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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못된 주인에게 구속당하며 사는 것보단 이게 나아요" 열두 살 서현이가 그린 '야생으로 탈출한 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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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03

 

“못된 주인에게 구속당하고 사는 것보다 야생이 훨씬 나아요.”

열두 살 서현이가 야생에 서 있는 두 마리의 개를 그린 다음 나에게 외치듯이 한 말이다. 제목은 바로 ‘야생으로 탈출한 개들’.

그림은 너무도 매혹적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평범한 듯하다. 두 마리의 개가 있고, 풀밭과 물이 있는 배경이 있을 뿐인 것이라 그렇다. 개라는 소재도 그렇고, 풀밭과 물 배경도 그렇고 흔한 주제와 소재 아니던가? 그런데도 어딘가 남다르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뭐지? 이 묘한 매력은?’

강하게 접착제에 붙은 것처럼 눈이 그림에서 떨어지질 않는데, 딱 꼬집어서 답이 안 나왔다.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니 일단, 연필로 그린 개와 짙푸른 색의 수채화 배경의 대비가 눈을 끄는 걸 느꼈다. 그리고 정말 계속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개 뒤로 넓게 펼쳐진 깊은 남색 물이었다. 단순한 구도와 함께 그 물의 색은 너무도 강해서 아동화임에도 성인 화가가 그린 것처럼 어떤 힘과 깊이가 느껴지게 하고 있다. 단순하게 하고자 하는 말만 하려는 그림이랄까! 끝도 알 수 없는 깊고 짙푸른 물은 정말 이 그림에서 묘한 매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색이 없이 연필로만 그려진 두 마리의 개의 대비와 함께 말이다.

궁금해졌다. 보통 아이들이 물을 그릴 땐, 이렇게 짙은 색으로 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색을 칠한 거냐고 물어보니 ‘야생’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했단다.

“야생?”

“네. 이 개들은 자유를 찾아 탈출한 거예요. 그래서 야생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제가 그냥 맑은 색으로 물을 칠하고 나무를 그리면 사람들이 예쁜 자연공원을 그린 줄 알 거 아녜요. 그런데 이렇게 진한 색으로 물을 칠하면 깊은 물처럼 보일 테니까요. 이렇게 깊은 물은 야생에만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 물에 시선을 두게 하려고, 일부러 아이는 야생임에도 나무도 한 그루 안 그렸다. 오로지 긴 잡풀들만 무성하고 깊은 물색만이 그득하다.

“그럼, 개들을 연필로만 그린 것도 이유가 있는 거니?”

“네. 개를 연필로 그려야 색으로 칠한 야생의 자연 느낌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요.”

이렇게까지 야생을 강조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저는 길에서 목줄을 하고 다니는 개들을 보면 불쌍해요. 인간도 동물이고, 개들도 동물인데, 왜 개들은 인간에게 구속당해서 목줄에 매여 다녀야 하나요?”

이런 생각을 늘 하고 있던 아이가, 이 그림을 그리기 며칠 전 TV를 봤단다. 그 방송에서 어미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사람들이 맘대로 새끼들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분양하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났단다. 인간들이 너무 못된 주인이라고 생각했고, 개들을 탈출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려진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연필로 개들을 그렸음에도 목줄에 메인, 그동안 구속된 삶을 살았던 개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목줄만큼은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하고 강조했다.

노란색 줄을 맨 개는 리트리버이고, 파란색 줄을 맨 개는 진돗개이다. 이 둘은 줄을 끊고 나와 자유를 찾아 여기 야생까지 왔다. 저 깊은 물이 있는 이렇게 깊은 야생까지 말이다. 아이답게 순수하게 그려진 약간은 미숙한 개들(소묘를 배운 적이 없는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연필로 열심히 그린)의 표현과 어른만큼 대담하게 칠해진 짙푸른 자연의 대비와 조화가 이 그림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순수한데 무게감이 있다. 그 묘한 조화는 시각적인 이유만으로도 눈길을 사잡기에 충분하다.

그림 안에는 아이의 동물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그리고 어리지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개념인지 인지하고 있음을 짧고 굵게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개를 키워보지 않은 아이에게 목줄이 너무 부정적인 개념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듯해서, 그건 길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개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라는 걸 이해시켰다. 물론 개를 학대하는 나쁜 주인들도 버젓이 있는 것은 인정했지만 말이다.

“구속당하고 사는 것보다 야생이 훨씬 나아요.”

이 그림은 결코 평범한 그림이 아니었다. 평범한 듯함 속에 감춰진 것은 이런 간절한 메시지였다. 그 간절한 마음이 시각적 표현으로까지 이어져 이 그림을 남다르게 만들게 되었다.

야생은 너무 무섭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아이가 외치듯이 던진 말에 이어, 아이는 말한다.

“그래서 야생에서 늑대처럼 야생으로 살 거예요. 행복하게!”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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